“그거 들었나? 왜병이 쳐들어왔다는구먼.”
간신히 식당에 들어왔다는 서명을 하고 텁텁한 입에 이제 막 맑은 소고기국을 한 수저 들이킨 조유만에게 유생하나가 다짜고짜 화제를 늘어놓았다.
“왜병? 쳐들어 온다만다 소문이 많았는데 그래 어찌 되었다고 하는가?”
옆에서 다른 유생이 묻자 그 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부산진과 동래가 하루 이틀사이로 함락되었는데 그 일로 조정에서 아침부터 논의 중이라네. 곧 장수를 뽑아 경상도로 내려 보낸다고 하네.”
“허! 왜놈들이 겁이 없구먼! 옛 경오년에 삼포에 왜란이 크게 일어났지만 곧 무찔러 일이 번지지 않은 만큼 이번도 별일은 없지 않겠나?”
“그렇지가 않은 모양일세. 경오년 삼포 왜란은 왜병이 수백이었지만 이번에 들어온 왜병은 수만에 이르며 화약으로 쇳조각을 날리는 무기를 왜병들이 하나씩 들고 있어 화살로도 무찌르기 어렵다고 하네.”
“그거 큰일이구만! 결국 신립이나 이일 같은 큰 장수들을 한양으로 불러와야 하는 일이 아닌가!”
조유만은 유생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쟁이니 화살이니 하는 얘기는 조유만이 듣기에도 싫은 얘기였고 고향에 있는 부모의 안위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침 경전강독을 마친 후에도 유생들은 도처에서 글은 읽지 않고 왜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성들은 이미 도성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니 이거 나라가 어찌될 참인가?”
“궁리라니? 이때 한 몫 좀 벌려는 장사치들 외에는 벌써 짐 싸들고 가는 이들도 있다더라.”
“악용운근(岳聳雲根) 담공월영(潭空月影) 유무하처거(有無何處去) 무유하처래(無有何處來)란 참요가 임진년의 일이라며 떠도는 노래인데 이것이 뭘 말하는 것일꼬?”
조유만은 더 이상 책을 잡고 있을 기분이 나지 않아 점심 무렵에는 아예 성균관 밖을 나서 도성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그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박산흥이 활을 쏘러 자주 다니는 사정터로 행하고 있었다.
“아니 활쏘기라면 정색을 하는 샌님이 여긴 웬일인가?”
사정터에서 활은 쏘지 않고 다른 한량들과 더불어 삶은 돼지고기를 두고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던 박산흥은 반갑게 조유만을 맞이했다.
“마음이 심란해 밖으로 좀 나왔네만 아침의 일은 아직도 화가 풀린 게 아닐세.”
“그 일이라면 내가 백배 사죄하겠네. 그런 의미에서 이 잔 한번 받게나. 하하하”
“됐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을 걸세.”
조유만이 슬쩍 주위 다른 한량들의 눈치를 보니 그로서는 다행이도 간밤의 장난에 대해 박산흥이 떠들고 다닌 것 같이는 않아 보였다.
“왜놈들이 쳐들어 왔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성균관에서는 뭐라고들 하던가?”
그 말에 조유만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던 참이네. 내 부모가 다 부산에 있지 않은가.”
조유만의 아버지는 오래전 상소로 인해 한양에서 부산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이후 아예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오던 차였다. 그렇기에 조유만의 부모는 그가 한양으로 올라가게 된 일을 그리 기꺼워하지는 않았다.
“대과에 입격해 관직을 맡아보면 너도 내 심정을 알 것이니라.”
조유만은 한양으로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읊조린 아버지와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허! 이거 내 미쳐 그걸 생각 못했군. 그렇다면 사람을 사서 부산으로 내려 보내 소식을 알아보는 건 어떻겠나?”
박산흥이 호들갑스럽게 나서 한량들을 부추기자 다른 한량들이 조유만을 돕겠다고 나서며 몇몇은 부산으로 내려갈 사람을 물색하러 자리를 떴다. 박산흥은 막걸리를 죽 들이키며 조유만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괜찮을 걸세. 자네 부모님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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