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구하러 간 한량들이 돌아온 것은 조유만이 성균관의 저녁시간을 걱정하며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도성안의 어지러운 상황을 전했다.
“말도 말게 왜군이 벌써 밀양을 지났다는 소식이 파다해서 부산으로 내려갈 이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네. 조정에서 이일과 신립을 불러 들였는데 먼저 이일이 군관들을 데리고 병사를 모아 상주로 간다고 하네. 신립도 병사를 모으고 있는데 아마 내일 아침이면 우리 같은 한량들은 활을 매고 나가야할 것이네.”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조유만에게 박산흥은 차마 말도 걸지 못했다.
“모두들 힘써줘서 고맙네… 난 이만 성균관으로 가봐야 할 것 같으이.”
조유만은 힘없이 성균관으로 가 언제나 그랬듯이 식당으로가 서명을 한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저녁 경전에 참석한 후 책을 폈다. 하지만 책의 글귀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유만은 책을 덮고 일찌감치 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조차도 오지 않았다.
‘이래서 무슨 의미가 있으랴.’
밤새도록 뒤척인 조유만은 새벽에 잠에서 깨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조유만의 그런 멍한 행동은 아침 식사 때까지 이어져 숟가락에 떠놓은 국물을 손에 들고 있다가 옷에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거 이 사람 안색이 영 안 좋아 보이는구먼.”
옆에서 보던 조유만의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신립장군이 어명을 받았다고 하더군. 도성안의 무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한량, 서얼들까지 모두 긁어모아 내려 보낼 참이라 하네.”
“그러면 도성은 누가 지키나?”
“그 무슨 소리인가? 도성까지 왜적이 침입하겠는가? 여기서 내려간 이들과 삼도의 병사들이 합류하면 병세가 꽤 크네. 게다가 신립이 어떤 장수인가!”
유생들의 화제가 다시 전쟁으로 옮겨가자 조유만은 반도 먹지 않은 밥그릇을 두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침식사 후에는 아침경전 준비를 해야 했지만 조유만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뭐하나? 어서 가세.”
조유만은 친구들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혼자 자리에 남아 손에 쥐어진 책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뭔가를 결심한 조유만은 지필묵을 꺼내어 일필휘지로 글을 갈겨 놓은 뒤 성균관을 박차고 나섰다.
‘나 조유만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급히 성균관을 떠난다. 왜란을 만나 부모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 자식 된 도리로서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조유만은 책 몇 권과 간단한 행장을 꾸린 채 그 길로 박산흥이 자주 가는 사정터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아침임에도 수많은 한량들이 전통(箭筒 : 화살통)을 맨 채 서성이고 있었다. 모두들 조정의 명을 받고 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이보게!”
많은 사람들 중에 박산흥을 불러낸 조유만은 그의 어깨를 잡고 급히 부탁했다.
“나도 병졸로서 전장으로 달려갈 참이니 남는 활이 있거든 좀 주시게나.”
느닷없는 조유만의 등장에 박산흥은 적잖이 당황해 하며 따로 그를 불러내었다.
“아니 이보게. 닭 잡을 힘도 없는 자네가 무슨 전장으로 달려간단 말인가? 우리야 무과급제 없이 관직에 오를 기회라지만 자네는 과거를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은 자네에겐 맞지 않으니 어서 돌아가게.”
“아닐세. 전장을 거쳐 난 고향으로 가봐야겠네.”
“어허 이 사람이 … 자네가 전장으로 가게 된다하여도 어찌 함부로 군을 이탈해 따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잘못 생각한 걸세. 썩 돌아가게.”
“난 꼭 갈 것이네. 내가 언제 자네에게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것을 봤나? 꼭 좀 부탁하이.”
“어허… 이 사람 고집하고는 참.”
박산흥은 제차 조유만에게 따라 나서지 말 것을 권유했지만 조유만은 끝내 이를 따르지 않았다. 조유만은 결국 화살과 활 하나를 구해 조유만에게 안겨 주었다.
“이건 손질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어차피 자네야 시위도 못 당길 것이니 일단 챙기게나. 나 이거 참.”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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