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사태가 될 뻔해서 다행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시사저널 사태와 다른 것인지도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방영 예정일(7월25일~27일)로부터 3주가 흘렀습니다. 이번 주 들어서야 EBS 사장이 방영은 한다, 는 원칙을 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 방영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방영을 위해 얼마나 프로그램을 도려내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태의 개요를 알려드립니다.
EBS 프로그램 <다큐 여자>(7월25일 수요일)가 방영 2시간 전에, 방영 보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요일 7시 경 상황입니다. 이 프로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흘 동안 9시20분부터 방영될 예정이었습니다.
전 시사저널 여기자들의 사연을 다룬 <다큐 여자> '굿바이! <시사저널>-희망을 보다' 편이 방영된다는 소식은 여러 곳에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예고편까지 나간 프로그램이 불방되었건만 방송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금요일에 가서야 시청자 게시판에 방영이 다음 주로 미뤄졌다는 알림 글이 떴는데, 그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인데 또 꿩 구어먹은 소식입니다.
시사기자단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왜 방영이 되지 않느냐는 문의 전화에 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금 방송이 불방된 후 주말.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맡았던 안은주 전 시사저널 기자는, EBS 방송국으로 녹음을 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EBS에서 방영 보류 판정을 받은 <다큐 다큐>가 수술대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삼성 기사가 빠졌다는 대목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도려냈습니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이름도 통째로 제거되었습니다. 서울문화사 심상기 회장과 금창태 사장의 이름이 나오는 대목도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심의를 넣었습니다. 방영 하루 전인 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류.
'삼성' 빼고 '이학수'도 빼고... 대수술 받은 <다큐 여자>
기자들이 왜 길거리로 뛰쳐나왔는지, 그토록 <시사저널>로 돌아가고 싶어했다면서 왜 회사를 제 발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프로그램이 방송에 부적합하다고 했습니다.
안은주 기자의 말입니다.
"(첫 주 방영이 보류되었을 때) 누가 방영 보류 판정을 내렸는지, 정확한 이유조차도 파악되지 않았다. EBS 공정방송위원회가 파악하려 동분서주했으나 EBS 내에서 방송 연기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결정은 내려졌다.
다음 날 저녁에서야 대강의 사유가 파악되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 시사적 이슈에 천착한 작품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집단이 아닌 개인에 집중하라,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넣지 마라는 EBS의 주문대로 다시 편집되었다.
편집된 원고를 보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지난 번 것보다 재미가 없네요. 김 빠진 맥주같아요'라고 투덜거렸다. 김민정 피디도 인정하면서도 속상해하고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본 편집에서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여기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사태 이후에도 꼬박 반년동안 취재 일선을 지키며 회사와 대화하려 안간힘을 썼던 기자들은 사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식 농성장에는 사주 대신 회사 사람들이 나타나 행패를 부렸고, 그들의 행패를 보면서 결국 <시사저널>과는 이별할 수밖에 없겠다고 절감하게 되었다.
그토록 <시사저널>을 사랑한다면서 제 발로 <시사저널>을 걸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빠져서는 안되는데, 새로 편집된 작품에서는 이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그러나 새로 편집된 프로그램도 또 제동이 걸렸다. 이번에는 너무 편파적이라는 것이었다. 김민정 피디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EBS 소속의 피디가 아닌 외주 제작사의 프로듀서였으므로.
방송 연기 또는 불가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그녀는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할 수도, 결정 사유를 직접 들을 수도 없었고, 자기가 왜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결론은 퍽 간단합니다.
가파른 사건 속의 인물은, 이른바 휴먼 다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파른 사건과 그 인물이 구별되지 않을 때, 그 인물을 결코 ‘휴먼한’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삼을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왜 굳이 ‘휴먼’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겠습니까.
<다큐 여자>의 김민정 PD는 그 ‘당연한’ 규범을 모른 채 새 규범에 도전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도 방송국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도 없는 처지에 말이지요.
<다큐 여자> 불방과 '시사저널 사태'
시사기자단이 이 사태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금창태 사장이 나은 점도 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뺏노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EBS 사태 초기, 도무지 누가, 뭘, 왜 결정했는지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결정을 내린 주체는 선명하지 않았으나, 결정은 확실했습니다. 그나마 금창태 사장이 낫습니다.
둘째, 타격이 두려우면 뭉개라. <다큐 여자>는 외주 프로그램입니다. EBS 내부에서 이 사안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있는 이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아니라 EBS의 내부 담당자입니다. 이 담당자가 바뀌어 일이 더 꼬인 셈인데, ‘굿바이! <시사저널>-희망을 보다’ 편을 기획한 EBS 해당팀장은 오히려 경위서를 써야 했습니다.
새 담당자는 사태 초기에 난감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EBS 공정방송위가 팔을 걷어부치고 경위 파악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태 파악은 지체되었고, EBS 노조로서도 개입할 경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심의실에서 보류 판정이 나왔는데, 명확히 누가 그런 판단을 한 것인지 좀체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론! 관계자들이 뭉개주면 일은 손쉽게 엉킬 수 있다. 시사저널 사태에서는, 아쉽게도 담당자인 편집국장이 그러질 못했습니다. EBS 사태가 <시사저널> 사태와 달리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데에는 이런 차이가 깔려 있습니다. 무척 단순하지요? 네, 단순합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이 사표만 안 던졌어도, 이렇게 가파른 사태가 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셋째. 불방 3주째. 프로그램의 재수술을 맡은 새로운 담당자께 아룁니다. EBS 공정방송위 위원장에 따르면, 이 프로에는 원래 합당한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EBS 고위층이 그걸 새로 발견한 까닭에 담당자가 또 바뀌었습니다. 재수술을 집도하게 된 김아무개 담당자님! EBS 프로듀서협의회 회장님이시라구요. 수정에는 덜어내는 것만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수술에 동참했던 안은주 기자에 따르면, 행동하는 아줌마 기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솜씨있는 재수술 기대합니다.
넷째. 이런 풍파없이 조용히 수술이 끝난 예도 있습니다. EBS <지식채널e>라는, 영감 넘치고 세련된 프로그램 있지요? 예민한 시사저널 사태를 다루는 바람에 이 프로의 담당 프로듀서도 적지 않이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지난 7월31일(월) 방영 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도 방영 당일 몇 시간 전에 보류 판정을 받았거든요. 담당자, 개겼습니다. 이튿날 회사 관계자와 협의 거쳐 수정했고, 화요일에 방영되었습니다. 그 수정의 폭에 대해 토 달지 않겠습니다.
<다큐 여자> 더 이상 표류하지 말길...
<지식채널e>에 단 한번도 삼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자직 24명 가운데 17명이 징계를 받는 참담함 속에서도 기자들이 6개월이나 일선을 지키다가 파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도 유감을 품지 않습니다. 굳이 그 프로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려져 있을테니까요.
정말입니다. 하루 만에 합 겨루기가 끝나, 프로가 방영된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것은 EBS 내부 프로듀서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우리의 바람은 단 하나. 더 이상 <다큐 여자>가 표류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그 뿐입니다.
○ 신문에 난 제목보고 보려했는데, 왜 계속 방송이 미뤄지는지 모르겠네요. 빨리 보여주세요!!! (8월5일)
○ 어제 <지식채널e> 를 보면서.. 시사저널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EBS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큐 여자>는 공식적인 입장표명도 없이..그냥 넘어가고 있네요... 내부에서 뭔가 조정중이시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금방 꼭 다시 보여주실 것으로 믿고 기다리겠습니다(8월2일)
○ 어디로 갔나요? 행방불명인가요? 세 여기자의 삶을 조명한 다큐 방영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해명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거,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인거 아시나요? 아실 것 같은데.... 제가 해명을 듣지 못했을수도 있으니, 언제 방송하는지, 왜 약속한 날은 방송이 안되었는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8월2일)
○ EBS 평소에 자주 보진 않아도, 한번 보면 즐겨보고 있고, 참 괜찮은 방송국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_- 실망시키지 마세요. 오늘 토론카페도 볼건데. 애청자는 아니지만 한명의 시청자로서 당연히 방송예정 되었던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렸다는데 가만 있을 수는 없지요. 안 그런가요? :)
얼른 시사저널 여기자 이야기 방송해주세요. 네? 하다못해 강호동이 진행하는 <황금농장>인가 뭔가 하는 오락 프로그램도 저희는 아프간 사태 때문에 몇 차례 방송이 미뤄졌어요, 라고 신문에 보도 때리는데, EBS가 그러면 안돼요.
미뤄지거나 지연된 이유가 있다면 이런 이유로 지연되었고 언제 방송합니다, 라고 공지를 내놓는게 당연한 수순이죠. 그렇지 않나요? 이게 뭐 개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도 아니고. 그런거야 디제이가 감기 걸려서 하루 못하면 그냥 그렇다고 이해라도 해주지, 아니다 걔네들도 하루 전에 미리 이야기해요. 아니면 빵구난 다음 날 어제 제가 아팠어요, 라고 얘기해주거나. -_- 이건 뭐...
아무런 말없이 묵묵부답하시면 삼성의 힘! 이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지금으로서 추측 가능한 부분은 그거 뿐이니깐. 대한민국=삼성왕국. 의식있는 EBS 방송국 조차 잡혀있다면, 하긴 뭐 대한민국 대표정론지 시사저널도 그랬는데, 대한민국 언론은 그냥 죽었네 생각해야지. 말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믿습니다. EBS.
p.s. "이비에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러한 의견들이 서로 조화를 이뤄 통합할 수 있도록 이비에스가 그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모색의 중심에서 항상 '사람'을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이비에스는 어린이들의 꿈은 물론 다수의 희망, 소수의 바람까지 모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누면 더 커지는 세상, 이비에스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EBS 방송국 소개글 이던데. 이거 믿어도 되죠? (8월2일)
○아니 지난주부터 방영된다고 해서 잔뜩 기다렸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재방으로 처리하더니, 오늘도 방송이 되지 않는군요.
불과 몇시간 전에 보류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 예고편도 내보냈으면서 이건 완전 방송사고에요. 지난주 아무 설명이 없는 것도 화났는데, 오늘도 그렇군요. 아니 뭡니까. 갑자기 EBS에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증발해버렸나요? 더워서 그런가요?
불방인지 보류인지 모르지만, 이유를 밝혀 주세요. 두 주동안 신경 쓴 것 보상하세요. 최소한 해명마저 하지 않으면 정말 시청자 우롱하는 EBS 될 겁니다. 국민 세금으로 거기 운영되죠? 그러니 더 한심하고 또 한심하네요. (8월1일)
○ 아니 저 이번에는 그래도 하겠지 싶어 tv켰는데. 뭡니까?? 아 정말 ebs진짜 이건 아니죠.. 삼성의 힘이란. 하하.. 하.. (8월1일)
○ 7월 25일(수)~27일(금)까지 3일간 방송되기로 한 3부작 다큐멘터리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입니다. 오늘 9시 20분에 방송한다고 해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귀가를 했는데, 오늘도 방송이 되지 않는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포털이나 각종 사이트에 돌고 있는 예고편 동영상을 보고, 오늘 방송을 하리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텐데, 이에 대해서 한마디도 없이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 됩니까?
기다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겁니까? 방영을 할 수 없다면 방영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시청자도 뭔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매우 화가 나려 하고 있습니다. EBS의 조속한 해명과 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8월2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