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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 9일의 여행을 함께한 동행자들
7박 9일의 여행을 함께한 동행자들 ⓒ 허선행
동유럽, 그 낯선 땅으로 7박 9일 여행의 시작이다.

이 여행은 새로운 동행자들이 합류하여 설렘은 더 했다. 본래 여자들끼리 만나는 모임이었는데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으로 발전되었고, 이번 여행에는 일흔여섯의 적지 않은 연세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간 분과 대학생 딸 둘을 데리고 간 분이 있어 모두 열일곱의 동행자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의 출발, '설렘'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릇인가보다. 식구들과 잠시 이별을 하면서도 가벼운 흥분으로 설 잠을 자는 것을 보면 말이다. 며칠 전부터 싸놓은 커다란 여행 가방에 애완견은 몇 번이고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댄다. 그것이 표정인지는 몰라도 애완견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지만, 그것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내 설렘을 누를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설렘 반 걱정 반인데, 여행 출발일 아침은 야속하기만 하다. 말 그대로 '장대비'가 사납게 쏟아져 겁부터 난다. 일기예보에는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만 장마의 본때를 보여주고 아예 끝을 내려나 보다. 비는 내렸지만 정한 장소로 일행이 모여 순조롭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평소와는 다른 편한 복장에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즐거움으로 밝은 표정이 된 우리 열일곱 명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1시간 30분이라는 비행시간이 어찌 생각하면 버거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시간 맞춰 내놓는 간식과 두 끼니 먹느라 즐거웠고, 좋아하는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고 나니 어느새 프라하 도착이란다.

늘 느끼는 거지만 승무원의 깔끔한 복장과 매너도 비행기 안에서 지루하지 않게 하는 데 한몫했다. 인터넷을 통해 보아 와서 익숙한 유럽의 붉은 지붕과 초록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내려다보니 꼭 이웃집에 마실 온 기분이다. 입국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권을 제시하니 그것으로 금방 끝이란다.

쉴 틈도 없이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로 옮겨 탔다. 3시간동안 이동하여 하룻밤 묵을 숙소를 간단다. 다음날 둘러볼 곳의 중간지점인 브르노(Brno)라는 곳이다. 부르노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무지개를 만났다. 몇 년 만에 보는 무지개를 이곳에서 보다니 이번 여행이 왠지 상서로울 것 같은 예감에 한껏 기분이 좋아져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무지개는 가로로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세로로 보여 서 있는 무지개라고 했더니 누군가 '비아그라 무지개'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비가 그친 직후라서 그런지 빛깔 고운 무지개였다.

역시 시차 적응은 어렵다!

7시간의 시차 때문일까? 자정이 넘어서 잤는데 깨어 보니 새벽 3시 30분,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밖은 벌써 훤하다. 영화 <백야>가 생각났다. 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실력 때문에 반쯤 알아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일찌감치 씻고 밖에나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7시에요. 일어나세요"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8시 10분까지 모이라고 해서 아침산책이나 할까 했더니, 나만 시간을 잘못 알고 못 나간 줄 알고 놀랐다. 놀란 나머지 눈 화장을 하던 내 손이 미끄러지며 아이라인이 삐뚤 빼뚤. 하마터면 일행에서 낙오될 뻔했다며 급하게 짐 정리를 하고 나니, 그분이 가져 온 핸드폰에 있는 시각으로 잘못 알았단다.

아마 나와 같이 시차적응이 안 돼 잠을 못 자는 분이 대부분인가보다. 오전 7시부터 식사를 하라고 해서 시간 맞춰 식당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이들이 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인이다. 부지런한 한국인! 그중에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도 보였는데 부러웠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땐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마음껏 데리고 못 갔기 때문이다.

어디 나만 그러했겠는가? 아마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기껏해야 놀이공원 정도 데리고 가거나 바닷가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을 터.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고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인지 초등학생이나 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까지 온 분들도 있었다.

여행 중에 음식이 안 맞아 고생했다는 지인의 말을 듣긴 했었지만 나는 걱정 안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빵, 치즈, 시리얼, 과일 등을 좋아하는 내 식성이기에 소시지나 베이컨이 첨가된 이곳 아침 식사는 내게는 금상첨화인 것이다. 멜론이며 수박, 사과, 토마토, 또 이름 모를 과일 들과 맛난 케이크 덕분에 아침부터 과식했다. 뜨거운 커피 한 잔까지 마시니 더없이 행복한 아침.

다른 분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새벽부터 아침준비로 분주하게 보내는 것에서 벗어나니 이제야 온전한 내 아침시간이 된 것 같아 행복했다. 그래 행복이 뭐 별거일까. 내가 꼭 챙겨주고 준비해 줘야만 했던 아침을 남편이 가져다주는 예쁜 음식을 함께 먹으니 평소와 다른 행복감을 느낀다. 평소에는 서로 돕고 동등하다고 인정하는 우리 부부다.

하지만 아침 식사 준비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기 때문에 아침 준비 안 해서 좋고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호텔식사. 내 입맛에 맞춰 가져다주는 남편 덕에 이런 호텔식이라면 기대된다. 욕심쟁이가 따로 없다. 한시라도 떠나면 안 될 줄 알았던 집 걱정은 잠시 접어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설렘으로 시작한 여행의 시작은 행복한 아침이었다. 그런데 이미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식사를 하러 내려온 일행분도 있었다. 식사가 안 맞는 분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공연히 내가 더 걱정된다. 아무튼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우리 일행 덕분에 단체사진도 찍었다.

유료화장실도 단체할인이 있네

마음씨 좋게 생긴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일주일 동안 데리고 다닐 분이란다. 그분은 영어가 안 돼 비록 손짓 발짓으로 하지만 서로 커뮤니케이션에는 별문제가 없다. 만국의 공통어인 보디랭귀지 덕분이다. 어디서나 통하는 만인의 언어 미소와 함께 말이다. 크라카오로 이동하는 네 시간 반 동안 밖의 풍경은 고즈넉한 시골풍경 그대로였다.

가끔 커다랗고 익살스럽게 생긴 마스코트와 함께 끝도 없이 펼쳐진 키 작은 해바라기와 수확한 밀밭 끝자락에 녹색의 나무와 빨간 지붕에 흰색 벽. 난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것처럼 제법 익숙해진 바깥풍경에 내 몸을 맡기며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체코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국경은 이름만 국경이지 뭐 별반 다를 게 없다. 여권을 거두어 가더니 얼굴과 한 번 대조해 보고 도장을 찍어 건네주는 것이 국경을 넘는 절차란다. 우린 한 민족이면서도 금강산을 갈 때 깨나 복잡한 절차를 밟았던 생각이 나 비교됐다. 우리의 버스기사는 폴란드인이라 그런지 자기 나라에 왔다고 더욱 환한 표정이 되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네와 다를 게 없나 보다.

가이드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화장실을 가는데 한 사람이 0.5유로를 내야 하는 게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국경에서 쉬는 틈에 더 참을 수 없다며 모두들 화장실에 갔다. 유료 화장실도 낯선 풍경이기는 하지만, 화장실에도 단체할인이 있단다. 인심 한 번 사납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나마 단체요금으로 10유로를 냈다. 정말 우리가 낯선 땅, 유럽에 오긴 왔나 보다.

덧붙이는 글 | * 7월 24일부터 8월 1일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가슴으로 만난 곳 아우슈비츠'입니다.


#프라하#체코#동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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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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