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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가 생사림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쫓으려 했지만 진이 설치되어 있었던지라 종적을 놓쳤습니다.”
흑백쌍용이 상만천에게 부복하며 보고했다. 상만천이 슬쩍 용추를 보더니 추태감 뒤에 부복하고 있는 팔번 중 감번(坎幡)과 간번(艮幡)을 보았다. 네 명이나 투입하고도 백도를 놓쳤다는 게 말이 되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흑백쌍용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용추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백도에 대해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요한 시기에 네 명이나 투입한 것인데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생사림....!’
그와 동시에 용추의 뇌리에 생사림이란 단어가 박혀 들었다. 그랬다. 함곡이 만약의 변수를 생각해 대비해 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리고 최악의 위기가 닥치면 모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이미 거센 불길을 내뿜던 운무소축은 기둥 몇 개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곳저곳에서 아직 연기를 피어올리고는 있지만 시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운무소축은 운중보 내에서 생사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생사림과 연결되는 쥐구멍을 파두었을 것이고, 그들은 생사림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이미 운중보에 들어오기 전 운중보를 조사할 때부터 생사림이 마음에 걸려 준비하고 있었다.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리고 수로를 이용해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가장 은신하기 좋은 곳이 생사림이었다.
‘결국 자네 역시 생사림으로 결정을 했군.... 진식(陣式)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허나 낙관하지는 말게. 나 역시 진식에서는 자네에게 뒤질 생각이 없으니 말이네.’
용추는 계속 마음속으로 함곡과 대화하고 있었다. 용추의 상대는 오직 함곡 뿐이었다. 상만천의 야망이나 추태감의 야욕....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이 모든 것은 용추에게 두 번째의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우선적이고 흥미로운 일은 자신과 함곡과의 승부였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오히려 생사림에서 승부를 결하는 것이 잘 된 일인지 몰랐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계속 시달리며, 함곡의 치밀하고 예기치 못한 잔수에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정면 승부하는 쪽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진식이라면 함곡에게 뒤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이미 생사림에 설치된 진식에 대해서는 도해(圖解)까지 가지고 있다. ‘그 자’가 넘긴 도해가 올바른 것인지는 자신도 확신할 수 없지만 내용으로 보아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제 직접 생사림으로 들어가 보면 알 일이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 모릅니다.”
용추가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며 상만천과 추태감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떡였다. 상황은 용추가 말하는 의미를 충분히 알아듣게 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보주야.....”
상만천이 추태감을 힐끗 보며 용추에게 말했다.
“아직까지 제자들과 운중각에 있는 건가? 도대체 그 사람 속을 알 수가 없군.”
정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운중보의 대소사에 손을 놓고 있다지만 운무소축이 파괴되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 터였다. 그런데도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왠지 보주의 존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또한 움직임이 없음으로 해서 더욱 불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치 태풍이 몰아오기 직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움직였다면 보고가 들어왔을 것입니다.”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는 용추도 마찬가지였다. 보주의 존재는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보주가 움직인다면 누가 막을 수 있을 텐가?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보주가 움직이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합니다. 아무리 보주라도 혼자서는 어쩌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그 때였다.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 개의 인영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네 명이었는데 천과와 손번, 그리고 이군이었다. 같이 움직였던 철기문의 옥씨 형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추태감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오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들은 용추의 부탁으로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고 추태감을 노릴 터였다. 자신의 형을 죽인 이상 그냥 넘어갈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용추나 상만천에게 있어서 그들은 매우 필요한 존재였다.
“그 연놈들은 우리가 들이닥치기 전에 사라졌소.”
천과가 용추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추태감이 검미를 치켜 올리며 짜증스런 목소리를 발했다.
“놓쳤단 말이야?”
“속하들이 궁수유 거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천과가 고개를 숙였다. 잘못이야 없지만 그래도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삼합회의 불여우를 없애지 못하고, 위험스런 남궁정이란 인물은 반드시 죽여야 할 연놈들이었다. 명령이 아니라 형제와 같은 인후의 복수를 위해서도 반드시 죽여야 할 자들이었다.
“종적도 놓치고... 에잉..... 쯧”
그것을 모를 추태감도 아니었지만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삼합회의 인물 중 세 남녀를 제외하고 모두 없앤 것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성과는 있는 셈이었다.
이제 거의 모여들고 있었다. 화산과 소림의 인물들이 모습을 나타내주면 좋으련만, 용추는 자하진인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 자는 너무나 약아빠져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좌등과 손을 섞지 않을 것이었다. 그 쪽은 함곡과 더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좌등을 붙잡아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제 지공만 도착하면 거의 올 사람들은 모두 온 셈이었다.
용추가 오른 팔을 들어 허공에 두세 번 흔들자 운무소축의 주위를 감시하던 오위가 교두들이나 무당의 인물들과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곳곳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것은 시신을 확인하거나, 놈들이 빠져나갔다면 그 통로를 조사하라는 신호였고 이미 용추는 거기에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생사림으로 연결되는 것일 테고, 이미 그 통로에는 모종의 조치가 취해져 자신들이 이용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헌데 그 때였다. 멀리서 여자의 뾰쪽한 비명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아...악....!”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분명 비명소리가 틀림없었다. 용추를 비롯해 모든 인물들의 시선이 비명이 들려온 생사림 쪽으로 돌려졌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터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허나 용추는 그 비명을 지른 계집이 누군지 얼핏 짐작하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은 아마 당화나 홍교란 계집의 비명이 분명할 터였다. 다만 왜 생사림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년들 역시 생사림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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