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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인내심을 동원하여 지공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는 중이었다. 당화의 시신을 발견하고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비 오듯 흘렀지만 통곡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당화가 비밀통로에서 살해된 이상 이미 이 모든 것이 상대에게 발각되었다는 의미였다.
현무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함곡 일행은 운무소축으로 향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함곡일행을 따라 운무소축으로 가야 안전할 것이었다. 하지만 운무소축으로 가는 것도 문제였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지못해 선택을 했다.
이미 비밀통로가 발각된 이상 그곳을 이용하는 짓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몸을 노출시키고 나돌아 다니다가는 더욱 큰일이었다. 다른 방도도 없었고, 오히려 상대의 생각을 역으로 찔러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그녀는 아주 끈기 있게 조금씩 움직였다. 아무리 상대가 비밀통로를 알았다 해도 그녀만큼 잘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운무소축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가 운무소축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막혀 있음을 알았을 때 커다란 폭발음을 들었고, 그 충격의 진동을 몸으로 느껴야 했다.
몸으로 느끼는 만큼의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한 것일까? 그녀는 뇌리에 백도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백도에게 가는 것도 안전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은 생사림이었다. 그녀는 또 다시 끈기 있게 조금씩 움직였고 그녀는 생사림과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땀에 흠뻑 젖은 몸과 어지러운 머리 속을 정리하면서 백도가 가르쳐 준 안전한 생사림의 입구를 기억하려 애썼다.
생사림을 안전하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시각을 알아야 했다. 생사림에 설치된 진은 시각에 따라 변하는 절진이어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그녀가 가까스로 입구를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시커먼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앞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린 계집이 감탄할 정도로 잘 도망 다니는구나..."
말한 인물은 그녀가 지금까지 피해 다니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지공이었다. 헌데 결국에는 생사림 앞에서 만난 것이다. 몇 발자국만 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어찌 미천한 이 계집을 찾으셨사옵니까?"
그녀의 말투는 영락없이 비굴한 시비의 말투였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떠올렸다. 허나 이미 마음속에 당화를 죽인 자라는 생각에 자연스런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미세하나마 오히려 원독에 찬 눈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진 것을 지공이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살고는 싶은 모양이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당장이라도 죽여 당화의 원수를 갚고 싶었지만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저자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허나 말과 함께 그녀에게 성큼 다가서는 지공은 이미 그녀를 살려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양 소매를 떨치며 원독에 찬 목소리를 뱉었다.
"살아야지... 언젠가 네놈의 심장을 꺼내들 날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녀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소매에서 뿜어 나온 분홍색 가루가 갑자기 사방으로 퍼졌다. 그것은 그녀가 소매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미혼분(迷魂粉)이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가진 최후의 방어수단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녀는 재빨리 자신이 이미 보아둔 생사림의 입구로 몸을 날렸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성분을 알지 못할 가루를 뿌리자 처음에는 독분 인줄 알았다가 미혼분인 것을 금방 깨달은 지공이 잠시 주춤하면서 숨을 멈췄다. 그러다 그녀가 몸을 날리는 것을 보며 냉소를 날렸다.
"어리석은 계집...!"
그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가며 이미 생사림으로 들어선 그녀의 뒤를 향해 반월형의 기형병기를 날렸다. 그것은 쫘악 퍼지며 두개로 갈라서더니 홍교의 등과 다리를 노리며 날아갔다.
쇄애액----!
두 개의 기형반월도는 여지없이 홍교의 등과 허벅지를 그으며 피를 뿜어냈다. 어둠을 뚫고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악---!"
그녀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는 듯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마 진 속으로 이미 파고든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되돌아온 두 개의 기형병기를 받아들고는 묻은 핏자국을 살펴보았다. 두 개의 기형병기는 완월비도(宛月飛刀)라 알려진 지공의 독문병기였고, 그것은 상대에게 매우 치명적인 상처를 가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일류고수라 해도 이 정도의 상처라면 얼마 숨을 쉬지 못할 터였다. 굳이 알지도 못하는 진속으로까지 쫓아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운무소축 쪽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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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는 큰 충격에 빠져있었다. 이 일을 주도한 장인(掌印)의 주인을 아는 순간 지금까지 생각하고 예측해왔던 모든 일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전제로 계획하고 실행해왔던 모든 일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장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순간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지만 정작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기심과 비열함이었다. 이것은 친구들의 문제였다. 동정오우라 이름 붙여진 다섯 명의 친구들 일이었다. 모든 것은 다시 동정오우라는 이름으로 귀착이 되는 문제였다.
'나만... 친구들의 우정을 배신한 놈이었던가?'
그것이 그를 심하게 자책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최소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친구를 이용하지 않았고,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으며, 친구를 배신하지 않았다.
친구를 배신한 것은 자신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의 편견으로 친구들을 보아왔고, 친구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친구들은 외부적으로 어찌 보였든 다른 친구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은 어찌해야 하나? 이미 철담과 혈간 두 친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 자신이 가야할 길은 어떤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가졌던 욕심과 그것을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세월의 흔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여야 하나?
그리고 살아있는 두 친구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까? 죽은 두 친구를 위하여 남은 생을 머리를 깎고 향불을 피워 넋이라도 달래야 할까? 차라리 용서해 달라고 자결이라도 해야 할까?
벌써 한 시진 째였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함에도 자꾸 과거의 기억들만 그의 뇌를 맴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오직 피나는 수련만을 강요받았던, 그리고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초를 겪으며 쌓았던 친구들과의 우정... 그들의 어린시절 모습...
처음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두르고, 객점을 통째로 뒤엎고는 앉아서 목 놓아 울던 친구들의 모습까지... 동생들과 만나는 혈간을 보며 부러워했던 운중의 모습...
시시각각 죄어오는 구룡의 추격에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 나서 시간을 벌어줄 테니 친구들 보고 먼저 가라고 소리쳤던 위기의 순간들... 결국 죽어도 같이 죽자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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