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그 자가 그런 맥없는 소리를 내뱉었다고?”
밥을 먹던 한량들이 놀라 조유만에게 다시 한 번 강창억이 한 얘기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조유만에게 농담으로 글을 쓸 때 자신들의 공적도 끼워 넣어 달라던 한량들은 다시 한 번 조유만의 얘기를 듣고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건 그 초관이 뭔가 싸움이 어렵다는 걸 에둘러 하는 말이 아닌가?”
“그 초관이 듣자하니 김여물 장군의 휘하에서 듣고 보는 게 많다던데.”
“왜군은 2만 우리는 8천이라 하지만 왜군은 우리처럼 제대로 된 기병이 없지 않나.”
또다시 한량들이 옥신각신 전쟁 이야기를 하자 조유만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서 나무아래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조유만이 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두보의 시구가 떠올라 나뭇가지를 주워서는 젖은 땅바닥에 쓰기 시작했다.
戍鼓斷人行秋邊一雁聲(수고단인행추변일안성 : 병영의 북소리에 인적이 끊기고, 변방의 가을에는 한 마리 기러기 소리)
露從今夜白月是故鄕明(로종금야백월시고향명 : 이슬이 오늘밤 하얗게 변해도 달은 고향에서도 밝으리라.)
有弟皆分散無家問死生(유제개분산무가문사생 : 아우들 있어도 모두 여기저기 흩어지고, 생사를 물어볼 집조차 없구나)
寄書長不達況乃未休兵(기서장불달황내미휴병 : 편지를 보내도 오래도록 전달되지 않는 터, 하기야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비는 촉촉이 땅바닥을 두드려 조유만이 적은 두보의 한시를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 속에는 조유만의 눈물방울도 알게 모르게 섞여 있었다.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은 비가 그친 후 다음날 충주에서 5리가량 떨어진 탄금대를 향해 진군해 내려갔다. 왜군은 아직 상주에 머물러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조선군은 탄금대에 도달하고서도 급히 목책을 세우고 진을 꾸릴 생각은 않고 느슨하게 전열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강을 등지고 진을 치니 이건 한신의 병법을 본받자는 것인가?”
한량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뭐 별 수 있나 우리야 왜군이 오면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갈 뿐인데 그런 것 따위 염두에 두지 말게.”
그 즈음에 병사들 사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상주로 내려간 이일장군이 패해서 초라한 몰골로 여기까지 쫓겨 들어왔네.”
“왜군이 상주에 있지 아니하고 벌써 조령을 넘었다고 하네. 전령이 와서 그리 전했다고 하더군.”
“뭐야?”
조선군은 우선 패전소식에 놀랐고 왜군이 벌써 조령을 넘어섰다는 말에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왜군이 이미 충주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지만 허황된 소문을 퍼트리는 자는 참수 한다는 군령이 포고된 후 실제 누군가의 목이 군문에 내걸리자 비로소 소문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불안한 마음까지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땅이 이렇게 질어서야 제대로 말을 달릴 수나 있겠소?”
당장이라도 왜군이 쳐들어오면 어쩌겠냐는 의중이 담긴 한량들의 질문에 강창억은 말조심하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왜군은 아직 상주에 있으니 그놈들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땅이 다 말라 있을 터이네. 너무 급히 생각은 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창억의 표정 또한 매우 굳어 있었다. 사실 왜군의 진군상황을 알기위해 뒤늦게 척후를 보냈지만 그들은 감감무소식일 따름이었다.
“강초관님 그럼 오늘밤은 마음 놓고 느긋하게 쉬어도 상관없다는 얘기겠죠?”
박산흥의 말에 강창억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말이외다. 강초관님. 이따 해가지면 우리 쪽으로 놀러 오실 수 있으신지......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말이외다.”
강창억은 어딘지 모르게 애써 굳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언제 진중 회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네들과 노닥거릴 여유가 있겠나.”
“어제의 일로 저희가 죄송해서 그러는 것이니 꼭 들러 주시옵소서.”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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