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를 물은 건 다름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말을 타야 하기 때문이니라.”
충주까지 내려온 조선군에게는 한양에서 징발한 4천 필의 말이 있었다. 하지만 태반 이상이 기수 없이 예비로 끌고 온 말이었다.
“아니 험준한 조령을 지키는데 마필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외까?”
“누가 조령까지 내려가 지킨다고 했는가? 우린 당당히 나아가 기마병으로 왜군을 공격할 것이네. 마필을 나눌 터이니 어서 가 보게나.”
강창억이 가자 한량들은 잠깐 동안 분분히 의견을 늘어놓았다.
“아니 조령을 막으면 될 터인 즉 무엇 하러 그리 위험한 공격을 한단 말인가?”
“신립장군이야 북쪽에서 오랑캐를 때려잡던 분이 아닌가. 그 분이 어디 험준한 곳에 지키고 앉아 오랑캐를 무찔렀겠나. 말을 타고 왜군을 짓밟아 무찔러 버린다면 그 놈들도 남쪽으로 물러갈 터이고 삼도의 원군도 여유를 갖고 모일 것이 아니겠나?”
“허! 그도 그렇군.”
“신립장군이 아무렴 생각 없이 그러겠나. 그나저나 신나게 말을 달릴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구먼.”
한량들의 말을 들으며 조유만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박산흥이 조유만의 어깨를 툭 치며 그를 가볍게 위로했다.
“걱정 말게. 차라리 잘 된 거지 뭔가. 답답하게 지키고 앉아 이제나 저제나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보다는 빨리 끝내 버리고 당당히 고향으로 가는 걸세. 그때는 나도 같이 갈 터이네.”
“고맙네.”
조유만은 가볍게 한숨을 지은 후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을 넘어서 아침이 다 되었는데도 해는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으니 활줄이나 잘 챙겨 놓읍세.”
“그 보다도 난 어서 밥 먹고 한숨 더 자야겠네.”
한량들이 이리저리 흩어진 후 조유만은 그 자리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았다. 길목에는 탈주병이 있을까 경계를 서는 군관들이 말을 타고 서성이고 있었고 도처에서는 화병(火兵 : 취사병)들이 아침밥을 짓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강창억이 조유만을 탈영병으로 간주하고 윽박질렀다면 변명의 여지없이 목이 잘려 군문에 효수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유만으로서는 등골이 오싹할 일이었지만 무던히 넘어간 것이 그로서는 천만다행인 셈이었다. 하지만 조유만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멀리서 박산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조유만은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겐가?”
언제 왔는지 강창억이 조유만의 뒤에 서 있었다.
“그러기에 왜 성균관 유생이 여길 따라온 겐가? 놈팡이 한량 놈들이 같이 가자고 부추기기라도 했던가?”
“그런 건 아니오라......”
조유만은 자초지종을 그대로 말하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행여 탈영하려했다는 말을 잘못했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한량 친구들까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가라고 할 때는 안가더니 아까는 왜 탈영하려고 했나?”
강창억의 말에 조유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 이상 숨길수도 없는 지경까지 몰린 셈이었다.
“왜란으로 인해 부산에 있는 부모님의 안부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올시다.”
“허! 그렇다면 홀로 내려가면 될 것을 왜 굳이 군에 편승해 갈 생각을 했는가? 아, 그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군. 홀로 내려가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네.”
강창억이 잠시 뜸을 들이자 조유만은 약간 긴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창억의 얼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네에게 무공(武功)을 바랄 수는 없을 터인즉, 이번 싸움을 자네의 눈과 귀로 보고 들으며 화려한 문장으로 추켜세워 주게나. 싸움이 처참한 패배로 끝나더라도 이를 세간에 알려주시게. 결코 어리석게 싸우다 죽어가지는 않았노라고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 자네는 꼭 살았으면 하네.”
어느덧 그들의 머리위로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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