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유만이. 나 좀 봄세.”
해가진 후 박산흥은 조유만을 불러내어 한량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한량들은 인근 산에서 사냥한 꿩 몇 마리를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박산흥은 조유만이 굳게 잡고 있는 세총통을 빼앗아들고는 주위를 살핀 후 조용히 말했다.
“자네 지금이 아니면 고향으로 내려 갈 수 없다는 걸 아나?”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말에 다른 한량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삼도의 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해서 도주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네. 이곳으로 오는 왜군은 2만이 넘는데다가 성능이 좋은 총통을 들고 있어 물리치기 어렵다는군. 여기 있는 8천의 병사들이 차라리 한양으로 물러가 지키는 것이 옳다고 신립 장군은 판단하고 있지만 조정에서는 들어주지 않는 모양이야.”
또 다른 한량이 거들었다.
“여기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네. 우리 같은 한량들이야 전공이라도 세우면 급제를 갈음할 수 있지만 자네 같은 성균관 서생이 무엇 하러 전쟁판에 뛰어든단 말인가? 가기에 험하긴 하나 산을 넘어 둘러 가면 부산까지 가는 길이 나올 것이야. 우리가 산 아래까지는 도울 걸세.”
조유만은 박산흥의 손에 들인 총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바보 같은 물건은 잊어버리고 우선 배부터 채우세.”
조유만은 한량들이 건네어 주는 꿩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한량들은 몰래 챙겨온 술까지 나누며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담소를 나눈 뒤에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 되자 박산흥과 한량들은 조유만을 두들겨 깨웠다.
“어서 가세나.”
조유만은 여장을 챙긴 후 모닥불 가에서 뒹굴고 있는 총통을 조용히 주워들었다. 굳이 챙길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조유만은 어딘지 모르게 그것을 잡고 있으면 자신감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이들은 모두 졸거나 한량 일행을 보아도 그냥 멀뚱히 지나쳐 볼 따름이었다. 이름모를 산 아래에 이르러 박산흥은 조유만의 손을 굳게 잡고 작별의 인사를 했다.
“산등성을 계속 넘다보면 길이 나올 걸세. 편한 길은 아니니 부디 몸 성히 가게나.”
“자네들이야 말로 전장에서 무사하기 바라네.”
박산흥과 한량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중하려 계속 서서 조유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유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 쯤 갑자기 조유만이 허겁지겁 뒤돌아 뛰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응? 저 친구 저거 왜 저러는가?”
의아해하던 박산흥과 한량들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조유만의 뒤로 한 무리의 말 탄 이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장을 선 이는 강창억이었다.
“이거 아침부터 왜들 이리 모여 있는 건가? 혹시 탈영이라도 할 작당들을 하고 있었던 겐가? 탈영자는 목을 베라는 장군의 엄명이 있어 보내줄 수가 없네.”
“다, 당치도 않으시오. 우린 그저 활쏘기를 연습하러 나온 것뿐이오.”
한량 중 하나가 어설프게 변명하자 강창억은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그래서 이 자는 화약도 없는 총통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던 것인가?”
“그 친구는 내가 멀리 쏘아놓은 화살을 주우러 간 것뿐이오.”
박산흥이 시치미를 뚝 떼자 강창억은 더 이상 이를 캐묻지 않았다.
“내 안 그래도 한량들을 찾고 있었네. 여기서 말을 탈 줄 모르는 한량이 있는가?”
“한량이라면 기마뿐만 아니라 기사(騎射 : 말을 타고 활을 쏨)정도도 당연히 할 줄 알지 않겠소?”
박산흥은 강창억의 눈치를 힐끔 보고 조유만을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저 친구는 어릴 때 말에 차여서 못타지만 말이외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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