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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 ⓒ 박철
연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부산에 와서 여름을 세 번째 나고 있는데 올해가 제일 더운 것 같습니다. 3층 콘크리트 건물 맨 위층에 살다 보니 방안 온도가 34도입니다. 사람 체온에 육박하는 더위를 맨몸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하루종일 선풍기를 틀고 살고 있습니다.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밤에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만날 찬 음식만 찾았더니 소화도 잘 안 되고 된 똥을 눈 지도 여러 날 된 것 같습니다. 정신은 몽롱하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질 않습니다. 저녁바람을 쐴까 해서 바깥출입을 해도 바람 한 점 없고 한낮에 잔뜩 달구어진 도시의 콘크리트 숲은 뜨거운 열기로 숨을 턱턱 막히게 합니다.

서로 물먹이기. 죽기 살기다.
서로 물먹이기. 죽기 살기다. ⓒ 박철
그렇게 버티기로 일관하다 우리 교회 교우들과 함께 물놀이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영호남 지역에 계속된 게릴라성 호우로 계곡마다 물이 불어 물놀이가 가능할까 염려가 되었지만, 어쨌든 도시로부터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거창 수승대로 정했습니다. 수승대 관리사무소에 전화로 문의해 보았더니 거창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물놀이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9시 교우들이 한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모두가 들뜬 분위기였습니다.

브이. 삶이 브이였으면 좋겠다.
브이. 삶이 브이였으면 좋겠다. ⓒ 박철
15인승 승합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거창 수승대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교우들이 흘러간 노래로 연신 흥을 돋우고 차창 밖으로는 낯익은 농촌풍경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3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온 편인데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수승대 개울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고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나 할 것 없이 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이 아주 차지도 않고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온도였습니다.

다정한 아빠와 딸.
다정한 아빠와 딸. ⓒ 박철
교우들의 짓궂은 물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방금 내 편이었던 사람도 적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물속에서 치고받고 육탄전이 전개되어도 아무런 불만도 없고 그저 마음이 하나 되는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젊은 교우들은 나만 보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 왜 나만 보면 피해요?"
"목사님이 물 먹일까 봐서요. 목사님이 무서워요."
"안심하세요.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좋은나무교회 교우들. 모두 선한 사람들이다.
좋은나무교회 교우들. 모두 선한 사람들이다. ⓒ 박철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들은 고무튜브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아이들이 자기들 딴에 다이빙이라고 코에 물이 들어갈까봐 코를 막고 연거푸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이번에는 내가 자맥질을 하여 물속으로 숨어 들어가 남자 교우 다리를 붙잡으면 여자 교우 한 분이 올라타서 물을 먹이기로 했는데, 아뿔싸 남자 교우가 얼마나 힘이 센지 내 허리를 손으로 감더니 나를 물속에 처박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물에 처박던지 코로 물이 들어가서 잠시 동안 코맹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코를 막고 다이빙.
코를 막고 다이빙. ⓒ 박철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데, 평소에 라면을 잘 안 먹던 사람까지 젓가락을 들고 덤비는 것이었습니다. 라면 건더기는 물론이고 국물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반나절 물속에 첨벙거리고 놀았는데 더위가 싹 가셨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마음을 나눈 하루였습니다. 하루해가 금방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모두 아쉬워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 하늘은 파랗고 정겨운 시골 풍경이 손짓하며 지나가고 있었고, 한껏 기분에 고무된 교우들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동요와 가곡을 부르는데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행복한 여름 나들이였습니다.

생얼. 그래도 예쁘다.
생얼. 그래도 예쁘다. ⓒ 박철
처서(處暑)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곧 가을이 시작되겠지요. 여름 막바지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다른 도시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당뉴스와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승대#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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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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