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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당선이후 처음으로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을 방문해 강재섭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당선이후 처음으로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을 방문해 강재섭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후보가 됐다고 하네."

지난 20일 오후 2시 40분께 A그룹의 대외협력업무를 담당하는 K상무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의 휴대폰 창에는 "MB 승리 확실"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어디에서 온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웃음으로 답했다. 1시간 40분이 지난 후,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공식 발표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재벌기업인 출신이 유력 대통령 후보가 됐는데, 기업들 입장에선 기대가 클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오히려 "정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반대'라는 건 기업입장에선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K상무는 "기업을 해봤으니까, 오히려 기업의 아킬레스건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대통령이 된다고, 친 기업적인 정책만 쓸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K상무의 말만 들으면 언뜻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1시간 남짓한 만남 후 자리를 일어나면서, 그는 "오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마무리했다.

촉각 곤두세운 대기업 정보맨들... 재계 "노 코멘트"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뽑혔던 20일 오후.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LG 등 대기업의 반응이 궁금했다. 예상은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노 코멘트", "할말 없다"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그룹은 자신의 회사 이름조차도 언급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해왔다.

B그룹의 한 임원은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고,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것 가지고 뭐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나"라며 언급 자체를 꺼렸다. C그룹의 또 다른 임원도 "할말 없다"면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선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그룹의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쪽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약간 업무를 비켜서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른바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쪽이 그렇다. 물론 이들 업무의 임원들은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릴 정도다.

D그룹의 대외업무 담당 E상무와 어렵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 선택이 향후 관심 포인트"라고 말했다. 오히려 기자에게 "향후 한나라당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며 되묻기도 했다.

E상무는 "MB(이명박후보) 이후의 한나라당이 어떻게 변할지가 관심"이라며 "이미 몇 가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왼쪽부터 삼성, LG, SK 본사 사옥.
왼쪽부터 삼성, LG, SK 본사 사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기업인 출신 대통령 후보가 기업 살린다고?

그에게 K상무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아무래도 기업을 해본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니, 기대도 크지 않겠나"라고. 곧바로 "내놓은 공약대로만 하면 그렇지"라고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로 이 후보쪽에서 내놓은 경제관련 공약 가운데 '친기업적'인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재벌 규제와 관련된 각종 법적 장치의 완화가 담겨져 있다.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책 등에 대해선 폐지 또는 완화를 내놓고 있다. 기업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법인세 인하)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는 "좀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그동안 어느 대통령 후보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든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 있나. 물론 민주노동당 빼고….(웃음) 오히려 기업인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노동계나, 서민들 눈치를 더 볼 수도 있겠지. 이 후보가 규제완화 공약도 많지만, 복지쪽 공약도 많은 걸 봐야지."

'성장 중심'의 경제기조를 펼친 이 후보의 복지정책은 어떤 측면에선 진보진영보다 더 앞선 내용도 있다. 만 5세미만 아동이나 중증환자의 의료비를 완전 무료로 한다거나, 치매와 중풍 환자도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내용도 있다.

신용불량자도 국가에서 빚을 갚도록 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집 없는 신혼부부에겐 집도 빌려주거나, 싸게 분양해준다는 공약도 들어있다.

재벌도 서민도 경제대통령을 원한다, 하지만...

E상무는 이어 "시중에 경제 대통령에 대한 착각과 오해가 있다"면서 "기업들이나 일반 서민이나 모두 경제 대통령이 나오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살아날 것 같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린 것을 거론하면서, "앞으로 더욱 더 개별 국가들의 정책을 통한 통제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기자가 "그래도 경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기업을 경영했거나, 경제를 아는 사람이 좀더 낫지 않겠나"라고 묻자, "그럴 순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 대통령이 굳이 경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업들은 최대한 규제를 줄여 기업 활동하기 좋게 해주는 경제대통령을 원한다"면서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이 부분만(기업쪽) 부각시켜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민들의 입장에 선 경제 대통령과 '친기업적' 경제 대통령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경영인 출신의 유력 대선후보를 바라보는 재계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경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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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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