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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6월 인천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던 당시 송영애 시민기자.
지난 6월 인천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던 당시 송영애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김귀현
IMF때 남편의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아 갓 돌 지난 아들을 떼어놓고 길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한 지 어느덧 7년이 됐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잠시 쉰 뒤 다시 시작했으니 계산해 보면 거의 7년이란 세월을 노점에서 보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설움을 겪었습니다. 단속반에 쫓기는 꿈을 꾸며 헛소리를 하다가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기도 했고, 물을 쓸 곳이 없어 포장마차와 한참 떨어진 집에서 낑낑거리며 물을 나르며 장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바가지에 볼일 보던 날들이여, 이제 안녕~

용변이 급한데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문 열린 화장실이 없어 포장마차를 비워 둔 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 집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자리를 옮긴 포장마차는 집과 너무 멀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소변을 볼 곳이 없어 포장마차 안에서 바가지에 해결했다는 건 <오마이뉴스>에서 저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하루 일당을 줄 테니 자기랑 하루 놀아달라며 보채는 남자들도 있었고 가게를 얻어준다며 제게 치근대는 할아버지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길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자존심 따위는 버려진 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저는 글을 써서 돈을 벌기도 하고 제 글을 본 사람들에게 용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절 보고 희망을 얻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돈을 버느니 차라리 굶어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뭉개고 힘든 나날들을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힘겨운 나날들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는 남편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고 아직 어린 아들과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도 챙겨주지 못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밀린 빚에, 세금에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였습니다.

떡볶이 아줌마, 막걸리집 꿈 이뤘어요

그런 뜻밖의 기회가 왔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뽑힌 후 뉴스게릴라를 찾아서 인터뷰에서 "다음에도 떡볶이 장사를 하실 건가요?" 하는 기자의 질문에 "아뇨, 나중엔 밥도 팔고 막걸리도 팔며 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당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는 '떡볶이 아줌마, 막걸리 아줌마가 꿈'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고 <오마이뉴스>의 많은 독자들이 돈을 모아 막걸리 집을 차려주자, 차리면 꼭 가겠다는 사람들이 제게 힘을 줬습니다.

그런 제게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그 꿈만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돈을 모아 투자를 했고 전 정말로 막걸리 집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분들이 많아 우여곡절 끝에 집까지 일산으로 이사했고, 8월 3일에 장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22일째입니다.

장소는 경기도 일산 동구 밤가시마을 1단지 국민은행 건너편 '금산집'입니다. 다 <오마이뉴스> 덕분입니다. 2년 전 <오마이뉴스> 이은화 시민기자 덕분에 알게 된 <오마이뉴스>. 내 인생을 바꾼 너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송영애#떡볶이#막걸리집#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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