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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산에 막걸리 집을 차린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진 장사를 해보지 않았기에 내심 밤이 되어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혼자 있기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까짓거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 상대하는 일인데 나만 잘하면 별일 없겠지 생각을 했습니다.

밤이 늦은 시간에 같은 건물에서 애견용품을 파는 사장님이 우리 가게에서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저씨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상을 잡고 의자에 겨우 앉으시더니 막걸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전에도 한 번 오셨던 근처 상가 손님인지라, 술 많이 드셨으니 내일 드시라고 권해 봤습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막걸리를 가지고 오라면서 나더러 의자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더니, 막걸리를 따르며 내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내려놓으니, 아저씨는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채로 욕까지 해대며 빨리 마시라고 했습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애견용품 사장님이 "아저씨, 술 많이 드셨네요. 남의 영업집에서 이러시면 안 되지요"라고 말을 하자, 아저씨는 붉어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신이 뭔데? 신경 꺼!"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자니 괜히 손님과 손님 사이에 싸움이 붙게 생겼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애견용품 사장님을 가리키며 술 취한 아저씨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저씨, 이 사람이 우리 남편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가시고 내일 오세요. 네?"

나는 내가 말해 놓고서도 우스워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습니다.

만취한 아저씨도 남편이라는 말에 눈을 다시 크게 뜨고 애견용품 사장님을 빤히 바라보더니 "당신이 정말 남편이야?"라고 물었고, 사태를 짐작한 사장님은 "내가 남편인데 아저씨 이러시면 안 되죠. 얼른 가시고 다음에 술 취하지 않았을 때 오세요"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니 한참을 고민하던 아저씨는 화장실에 간다며 나가더니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졸지에 남의 남편을 내 남편으로 만들어 미안하다고 애견용품 사장님께 사과하니, 그렇게 약하게 대처해서 어떡하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다음날, 나는 자꾸만 어제의 그 아저씨의 행동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참을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되겠다 싶어 그 아저씨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아저씨는 눈만 말똥말똥 뜨고 저를 쳐다보시면서 자기가 술에 취해 실수를 했느냐며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어제 마시고 막걸릿값을 내지 않았으니 달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막걸릿값을 받아왔습니다.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굳세어라, 영애야' 혼자 주문을 외우며 막걸릿값을 받아냈습니다.

아저씨는 그 후로 술에 취해 가끔 오시지만 "언니야! 아니, 사장님, 오늘은 내가 실수 안 하고 조용히 술만 마시고 갈게요"라며 조용히 술을 마시고 가곤 합니다.

오늘(27일) 아침에도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술을 드시지 않은 아저씨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소년 같은데, 저녁이면 어김없이 술을 드시고 비틀거리면서 딴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아저씨가 제발 다른 곳에서 술을 드시지 말고 우리 집에서 1차로 막걸리를 드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막걸리#막걸리집 아줌마#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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