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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놀이'가 될 순 없을까? 놀이의 핵심은 참여와 즐거움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치가 '코미디'나 '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참여는 없고 쓴웃음과 냉소만 횡행한다. 정치가 술자리의 안주가 되었을 땐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하여 이번 연재물의 목표는 정치의 술안주화(化)다. 결코 코미디나 쇼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수 없는 대통령 선거를 여러분의 술자리 안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가 되겠다. 독자 손님들의 적극적인 주문도 기대한다. <편집자주>
▲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2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문국현 2탄이다. 지난 <대선 진맥>에서는 온라인에서 분 '문국현 현상'을 짚어봤다. 이번에는 오프라인의 흐름을 취재해 봤다. 아니, 취재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기저기 들려오는 말들이 많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시민단체 출신 한 차관급 인사는 "오늘부터 문국현을 밀기로 했다"며 "가슴이 떨려서 일이 안 된다, 공직을 그만두고 캠프에서 일할까 고민 중"이라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해찬 지지에 마음이 기울었던 사람이다.

평소 '무정부주의자'를 자임해온 50대 후반의 한 지식인은 "문국현이 잘되어서 이명박을 꺾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그는 진보정당운동과 별개로 한나라당을 꺾을 현실 세력으로 문국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한 40대 여성 문인은 "난생 처음으로 댓글이란 걸 써봤다"며 "녹색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문사모'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출마 선언 이후, 문국현이 여론조사 지표상에 나타난 건 두 번이었다. 조선일보-갤럽 조사에선 1.5%,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1.8%. 그 이전 문국현의 지지도가 사실상 0%였던 것에 비한다면 고무적이라 할 수 있을까?

문국현 캠프의 김헌태 상황실장(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문국현이 던진 메시지에 유권자가 반응했다는 의미"라며 "이를 발판으로 향후 흐름을 끌어올릴 만 하다"고 평가했다. 괜찮은 '출발'이라는 얘기다.

지지도 0%→1.8%... "문국현 메시지에 반응한 유권자"

이제 네티즌 사이에서도 '다음 행보'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지적들이다. "네티즌 세를 뛰어넘는 조직이 문제('대울림')"라는 주장을 들어보자.

"'희망새' 문국현에 대한 얘기는 알만한 사람은 이제 다 안다. 그것이 표로 연결되기까지는 길이 멀다. 우선은 조직이다. 넷망은 수구골수분자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만큼이나 멀고 낯설다. 적진에 뛰어드는 육탄부대용사들이 있어야 한다."

조직은 정치권이 쥐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 29일 문국현이 대선 예비후보로 공식적인 등록 절차를 마친 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에게 전화를 돌려봤다. 지난주 신중한 관망세였던 것에 비해 한발 나아간 '움직임'이 감지됐다. 공개 지지선언과 물밑 지원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었다.

현재까지 문국현 지지를 선언한 국회의원은 두 명이다. 원혜영·이계안 의원. 대선 후보들 중에는 천정배·김두관 후보가 공개적으로 문국현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문국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유인태·김영춘 의원의 행보도 관심사다.

곧 가시적인 흐름이 드러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원혜영 의원은 "많은 의원들이 문국현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며 1차 공개 지지선언의 규모가 "10여명 수준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 의원은 "내가 바빠서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러 의원들이 먼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온다"고 덧붙였다.

오영식 의원(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내가 신당의 의원이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선언은 하기 어렵지만 의원들을 설득해서 물밑에서라도 도와줄 것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캠프의 참모는 "우리 후보가 컷오프(예비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문국현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은 '연착륙'했지만 오프라인은 아직

▲ 지난 5월 21일,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이 기후변화포럼 창립총회에 참석해 기념강연에서 여야 정치인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역시 '시간'의 문제를 꼽는다. 민병두 의원(정동영 캠프 전략담당)은 선거 전략의 세 가지 포인트로 ▲관심의 극대화 ▲열정의 조직화 ▲막판까지의 지구력을 꼽았다.

우선 '관심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문국현이 놓인 제3지대를 "콘텐츠는 좋지만 시청율이 떨어지는 K-TV(한국정책방송)"에 비유했다.

"거기서 혼자 뛰는 것 아닌가. 그래도 시청율이 높은 곳은 공중파(민주신당 경선)다. 그렇다면 스스로 결단을 해야 할텐데, 어렵다고 본다. (43명의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제3지대 대통합추진모임'을 결성한) 한 달 전만 되었어도…. 많은 의원들이 연초부터 결단을 촉구했다. 조직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떤 확신도 주지 않았다."

아울러 "열정을 조직화해 투표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언제 읍면동 단위까지 뛰어서 사람들을 불어낼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민주신당의 경선에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선거인단 모집은 내달 10일로 마감된다. 물론 9월 11일 이후 30일까지 '추가 모집'의 여지는 남아 있다.

민 의원이 제시한 문국현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혼자서 뛰어 10%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리든가, 아니면 아직까지 특정 캠프에 줄서지 않은 80여명의 의원들을 조직화 하라는 제안이다. 전자는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방식이고, 후자는 본 경선에 참여할 경우 방법론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특히 대선 시기 정치권 밖의 '제3후보'는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성공사례는 없었다. 정치적 한계가 분명했다. '정치력'과 '권력의지'의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문국현 후보는 "나는 아시아를 제패하려는 사람"이라며 강한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또 "나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을 늘 하고 다닌다. 자신의 정치가 이번 대선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이다. 가치와 노선이 분명한 독자 신당에 대한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치력이다. 제3후보는 양쪽에서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정치권 안과 정치권 밖. 정치권 진입 전에 대중적 행보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해야 함과 동시에 정치권 안의 세력을 규합하고 조직세를 불려야 한다. 원혜영 의원은 "대중적 기반을 확대해야 하는 것과 조직화는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 정치권과의 연대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주신당 연대? 경선 참여냐 후보단일화냐

▲ 27일 오후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학규, 유시민, 김두관, 천정배, 한명숙, 신기남, 정동영, 추미애, 이해찬 후보.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첫 번째 경우의 수부터 살펴보자. 민주신당의 본 경선에 참여하는 경로다. 현재 신당에선 예비경선이 진행 중이다. 내달 5일, 다섯 명의 본선경쟁자가 확정된다. 현재 신당의 경선 규칙에서 제3의 후보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두관 후보는 "대선 후보들이 합의하고 당 지도부가 요청하면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내달 2일 정당과 비슷한 '창조한국'이라는 비영리기구의 발기인 대회가 있다. '문국현 장외조직'의 출범이다. 전현직 기업인들과 각 분야 전문가 1000명이 모일 규모라 한다. 이 조직과 신당이 합당 혹은 연합을 한다면, 그 과정에서 문국현의 경선 티켓은 합의하기 나름이다.

정대화 교수(오충일 민주신당 대표 비서실장)는 "예선에 참여하지 않고 경선에 바로 뛰어든다는 불공정 시비가 있을 수 있지만 밖에서 문국현 바람이 일어나고 당내 요구가 부합한다면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신당도 문국현도 끝까지 혼자 갈 수 있을 것이라 보지 않는다. 두 세력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전개할 때 승산이 있다. 문국현 후보가 전국을 순회하는 신당 경선의 '마당'을 활용하는게 좋다고 본다. 결국 흥행이 되어야 지지율도 올라가는 것 아닌가. 제3지대 후보 위치에만 머무른다면 '좋은 카드'이지만 '불완전한 카드'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경우의 수는 '후보단일화'다. 신당이 독자 경선을 치르고, 후보가 결정되면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 협상의 길도 열려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 선택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 정도라면 협상력을 지니기 힘들다. 흡수된다고 봐야 한다. 한나라당과 1대1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신당 후보의 일정한 지지율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영식 의원은 후보 단일화 경로가 낫다고 얘기한다. 경선 단계에서 참여할 경우 "문국현의 목소리와 색깔이 죽을 수 있다"는 우려다. 최후까지 독자노선을 유지하다가 대선에 임박해 단일화하는 시나리오다.

"문국현의 가치가 끝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반드시 문국현이 주인공(최종 후보)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문제의식과 콘텐츠가 우리 것이 되는 게 중요하다. 신당이 통합 작업을 해서 판은 만들었지만 메시지와 감동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린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걸 문국현이 하고 있다. 어떤 과정에서 만나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17대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과 결합은 없다"

문국현 캠프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문 후보는 최근 도올 김용옥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12월 19일 최후의 순간까지 타협 없이 독자적 노선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가치'에 대한 타협 없는 독자 노선을 강조한 쪽이라고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끝까지 단독 후보를 고집하는 것이 아닌 독자 신당에 대한 의지를 밝힌 쪽이라고 풀이된다.

문 캠프에서도 앞서 밝힌 두 가지 경로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다만 연대의 원칙과 기준에 대해선 단호하다. 김헌태 실장의 말이다.

"기존 정치권과의 결합은 문국현의 노선과 강령에 맞는 질서 있는 통합이 바람직하다. 문국현이 밝힌 17대 강령('희망제안')에 대해 선언하고 들어와야 한다. 가치에 대한 동의 없는 정치세력과의 결합은 없다."

의원들이 걱정하는 '조직세 부족'이라는 핸디캡에 대해서도 "조직세는 전혀 필요 없다"고 못박았다.

"조직이 무서워서 '잡탕정당'을 또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아니다. 과거 열린우리당이 지금 신당이 그 많은 의석수, 그 많은 지역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 되고 있나? 무분별한 정치세력과의 결합은 또 한번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가치를 놔버리면 한순간에 날아간다. 문국현이 제시한 가치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에겐 문이 열려 있다."

한 달 뒤 추석 명절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식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선 얘기를 밥상에 올릴 것이다. 문국현의 대선 갈림길은 그 직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20 후보가 될지, 1/6 후보가 될지, 1/2 후보가 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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