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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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자들이 풀려나면서 이번 사건의 보도를 담당한 취재기자들도 지난 40여일간의 '속박'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취재기자들도 피랍자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40여일간 하루도 마음 편히 밤을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프간 현지와 한국 사이의 시차(4시간30분) 때문에 인질 살해나 석방 등 상황발생이 언제나 심야 시간대였기 때문입니다.상황이 급박하게 움직여 거의 밤을 새다시피 근무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특별한 움직임이 예고되지 않은 날도 정부의 움직임이나 외신 보도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보도가 힘들었던 것은 단지 이런 '체력 소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언론의 정도(正道)'를 지켜가며 보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란 점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지난 41일, 몸보다 더 힘들었던 마음 한국인 23명이 해외에서 한꺼번에 납치되는 전례가 없는 이번 사건은 취재보도 측면에서도 적어도 다음 2가지 점에서 전례가 없는 특수한 환경이었습니다. 첫째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한국의 어떤 언론사도 취재의 기본인 현장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피랍사태가 발생하자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중지를 요청,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길을 원천봉쇄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정부로서는 당연히 취할 수밖에 없는 조치입니다. 설사 정부의 방침을 거역하고 아프간에 들어간다 해도 정작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가즈니주에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고, 수도 카불의 호텔방에 틀어박혀 현지인을 고용해 수집한 단편적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언론사가 기자의 현장 파견을 포기했습니다. 둘째는 보도행위 자체가 협상과정에 이용되며, 협상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탈레반 측은 세계 각국의 언론들을 이용해 다양한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그 점을 모르지 않는 한국 정부도 이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보도내용에 대해 대부분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외신보도와 현지로부터의 각종 정보에 대해 책임있는 정부 당국자의 확인을 받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협상전략상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보도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정확성'과 '신속성' 사이의 갈등 <오마이뉴스>가 직면한 취재보도 환경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이번 피랍사태 보도과정에서 일부 전문가와 독자들로부터 확인되지 않은 외신보도나 현지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맞는 지적입니다. 언론의 보도는 '정확성'을 생명으로 합니다. 외신을 인용하거나 전달할 때 사실확인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도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속성' 입니다. 어떤 정보라도 남들보다 앞서 전달하지 못하면 그 언론은 뉴스시장의 외면을 받습니다.사실 이번 사건만큼 '정확성'과 '신속성'이 충돌하는 취재현장도 드물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2가지 특수한 환경 때문입니다. 피랍자들의 석방이나 살해 과정에서 정부의 확인은 언제나 최초의 외신보도 후 상당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탈레반과의 대면협상 개시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성'과 '신속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프간 현지발 보도의 고민 이번 보도과정에서 또 하나의 고민은 '독자성'이었습니다. 현지 취재가 불가능하고, 정부가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외신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프간 저널리스트를 활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다른 언론사들도 고민이 비슷했습니다. 다행히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영문판) 시민기자로 활동해온 다우드 칸 카탁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지 신문 <파자왁 아프간 뉴스>의 기자이기도 한 카탁은 지난해 8월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시민기자로 등록, 기사를 써왔습니다. 올해 6월 서울에서 열린 '제3회 세계시민기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인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와 이메일과 메신저 등으로 연락을 취해 현지 상황을 취재해서 기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표방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는 이미 글로벌 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카탁 기자도 '글로벌 시민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보도에 참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다만 모든 시민기자의 기사가 편집부 손에서 사실확인 작업을 거치듯이 카탁 기자의 기사도 사실 확인 후 내보내는 것이 원칙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2가지의 이유로 카탁 기자가 보내온 현지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로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렵더라도 카탁 기자가 충분한 현지 취재를 통해 근거를 갖고 작성한 기사라면 채택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번 사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지 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독자적으로 입수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지적,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동안 총 6편의 현지발 기사가 나갔습니다. 정보의 근거가 모자란다고 판단되는 카탁 기자의 일부 기사는 그대로 사장시키기도 했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고심 끝에 내린 결정들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일부 기사 가운데에는 아직까지도 사실 여부가 불투명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현지의 부정확한 정보가 피랍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협상에 악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지적이 우리 내부로부터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카탁 기자의 기사를 포함한 이번 사건 보도 중 앞으로 명백한 오보로 확인되는 것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보다 책임있는 보도자세를 갖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이번 아프간 피랍사태는 '2명 피살, 21명 구출'이란 결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가지만,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남긴 후유증과 그 교훈은 만만치 않습니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한 분야가 바로 언론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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