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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수라상. 국립민속박물관.
임금님의 수라상. 국립민속박물관. ⓒ 이정근
"조석 반찬을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이 하라."

어의 양홍달에 뒤 이어 반감(飯監)으로 하여금 내선(內饍)을 가지고 정평으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양과 함흥을 오가는 경흥대로에 역마의 말발굽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반감은 수라간의 우두머리로 오늘날의 주방장이며 내선은 임금님의 음식이다. 반감이 정평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륜에게서 상서가 올라왔다.

"노의(老醫) 양홍달(楊弘達)을 보내 와서 병을 치료하니 조금은 차도가 있는 듯합니다. 내의(內醫) 두 사람을 계속하여 보내주시니 송구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헌이 온 지 이미 7일이 지났고 치료하는 방법을 신이 데리고 온 방민과 함길도 교유(敎諭) 한보지(韓補之)가 대강 전수하여 배웠으니 아들 하구와 함께 돌려보냅니다."

문안차 한양에서 달려온 아들과 이헌을 돌려보냈다. 이헌이 곁에 있는 것이 왠지 찜찜했다. 떠나는 아들에게 장동대감에게 전하라는 비밀 서찰을 쥐여주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시름시름 앓던 하륜이 숨을 거두었다. 건강하게 함흥 땅을 밟은 하륜이 죽은 것이다. 하륜이 객지에서 객사(客死)했다. 그의 나이 70이었다.

불세출의 장자방, 함흥에서 객사하다

천하의 하륜도 염라대왕이 부르면 가야 한다. 토를 달 수 없다. 호명부에 쓰인 대로 부르면 가야 하는 것이 유한한 인간의 숙명이다. 이 시대의 해커들이 호명부를 해킹하려 하지만 아직은 수퍼컴의 용량부족과 해커들의 기술 미숙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해독할 날이 올 것이다.

하륜이 세상을 떠나던 그 순간, 한양에는 짙은 안개가 끼며 천둥 번개가 쳤다. 태종이 정사를 전폐하려 하자 영의정 유정현이 아뢰었다.

"마땅히 정전(正殿)에 좌기(坐起)하여 더욱 정사에 힘쓰소서."

"오늘 내가 일을 보고자 하여 일찍 일어났는데 하늘에 안개가 끼고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은 시후가 정상인 상태를 잃었으니 오로지 짐의 부덕의 소치다. 천변이 염려되어 일을 보지 못하겠다."

"날씨가 정상을 잃은 것은 비록 상덕(上德)의 소치는 아니나 공구수성(恐懼修省)하여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림을 도모하는 것은 인군의 직책입니다. 왜 일을 보지 않으려 하십니까?"

"한(漢)나라 때에 승상 병길이 힘써 섭조(燮調)하는 공역을 맡았으니 경등은 각각 섭리(燮理)의 책임을 다하여 천도(天道)로 하여금 어그러짐이 없게 하라."

하교와 함께 정사를 폐했다.

불세출의 장자방 하륜이 세상을 떠났다. 죽는 순간까지 공무에 복무하다 죽었다. 대단한 위인이다. 턱 위에 종기가 원인이 되었지만 어떤 음모에 의하여 죽었는지 수명을 다하여 노환으로 죽었는지 아직은 모른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는 부검하면 사망원인이 밝혀지겠지만 그 옛날에는 그러한 제도나 의술이 없었다.
#장자방#하륜#이방원#함흘#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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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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