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에 붉은 점이 좁쌀만하게 생기더니 작은 물집으로 변한다. 만지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귓전에 맴돌지만 손길이 앞선다. 며칠 전에 여름 보양식으로 옻닭을 먹은 것이 잘못된 것일까. 처음 먹은 것도 아닌데. 그럼, 혹시,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궁중에 진상용 약초를 재배했다는 약산도에서 옻나무를 만진 일이 생각났다. 섬에서 약초재배를 하고 있는 송씨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에 만진 옻나무가 문제였다. 깜짝 놀란 송씨가 준 알약을 한 알 먹었지만 기어코 탈이 난 것이다. 집 앞에 심어 놓은 옻나무를 베어다 갈무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액이 남아 있던 상태였다. '약산'의 흔적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81-1530)에 조약도(약산도의 옛 지명)는 선산(청산)도·고금도 등과 강진현에 속하며, 섬 둘레는 95리이며 목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520년대 중종실록에는 조약도 목장을 내지로 옮길 것과, 왜선의 출입이 잦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6년 영암, 강진, 장흥, 해남 등지에 속해 있던 섬들을 완도군으로 편입하면서 조약도는 조약면이 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금면에 통합되었다 1949년 고금면에서 나누어졌다.
왕실 진상용 약초를 재배했던 섬
약산도는 삼문산(397)에서 내려온 공북산, 동석산, 검모산이 골을 이루며 바다로 내려와 만들어진 섬이다. 섬 모양새가 타원형을 이루지만 북서편의 넙고리와 동북편의 어두리가 게의 눈자루처럼 길게 뻗어나가 흡사 바닷게의 형국을 하고 있다. 동쪽 해안은 암벽으로 구성되어 해안선이 단조롭고 서북쪽해안은 굴곡이 심해 갯벌이 발달했다. 삼문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마다 20여 개의 마을이 간석지를 막고 산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약산도는 산세가 험해 옛날부터 120여 종의 약초가 자라고, 이들 약초를 먹고 자란 흑염소가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다. 약재가 조약도의 특산물이라는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서 약산도와 약초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채취한 약재는 관서리 도청(진상용 약재를 관리하는 관청)에서 수집하여 '포대나루'를 통해 배로 직접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고 전한다. 구전에는 약산면에는 삼지구엽초 외 129종의 약초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흑염소가 먹었다는 삼지구엽초'는 약산면에서 자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 최근 한 주민(송원섭, 73)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재배에 성공해 말린 삼지구엽초와 종근 보급을 하고 있다. 도서지역의 가게에서 파는 대부분의 삼지구엽초주는 비슷한 잎을 가진 '꿩의다리'라고 한다. 삼지구엽초는 강원도나 지리산의 깊은 산속에 자생하는 식물로 약산도 삼문산에 서식했던 것으로 전해왔다. 음양곽이라고도 하는 삼지구엽초에는 이런 유래가 전한다.
중국 사천성에 양을 방목하는 노인이 있었다. 방목하는 양 중에 백 마리 암컷을 상대하면서 항상 원기왕성한 수컷 양 한 마리가 있었다. 노인은 신기해 수컷 양이 숲 속에 들어가 먹는 풀을 먹었다. 그 후 노인은 신기하게 젊은이 못지 않은 정력이 솟구쳐 칠순의 나이에 새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이 풀을 양이 먹는 신기한 약초라 하여 음양각(淫羊藿)이라 하였다.
음양곽(淫羊藿)이라고 불리는 삼지구엽초는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에 정력과 원기를 왕성하게 해주고, 기억력 증진, 수족, 양명, 명문 등 신체를 보호해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약초는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낙지만 파먹고도 살 수 있을 텐데
약산도에는 김·미역·병포·진포·톳·청각 등 해조류, 굴·바지락·고막·소라·성게·해삼·전복 등 패류, 멸치·가오리·돔·농어·가오리·숭어·문어·장어·감성어·광어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외해와 접한 약산면 동남해안의 득암리, 구암리, 해동리는 침식으로 해식애가 발달하고 여와 갯바위가 많아 돔과 감성어 등 고급어류와 전복과 소라, 성게, 해삼 등이 많다. 반면에 관산리, 장용리, 우두리, 사동리 등 고금도와 접한 서북해안은 수심이 낮고 갯벌이 발달해 김과 미역 등 해조류 양식과 낙지, 바지락, 갯지렁이, 숭어 등 갯벌어업이 발달했다.
1987년부터 시작된 '관산지구간척사업'으로 신지면과 고금도를 앞에 두고 형성된 갯벌을 매립하여 간척농지를 조성하였다. 총 180여억 원이 투자된 간척사업으로 330필지 257ha의 농지를 조성하였지만 황금어장을 잃어야 했다. 이 사업으로 관중, 관서, 관중, 신기, 구암리 등 갯벌어업 의존도가 높은 마을들은 어장을 잃고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전환되었다. 간척지는 1998년부터 분양되었지만 지선어민보다는 외지인이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 갯벌낙지와 매생이는 전국 최상품으로 평가되었다. 주민들은 지금 그 갯벌이 남아 있으면, '낙지만 파먹어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농지로 변한 갯벌에서 1970년대에는 지주식 김 양식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초반 깊은 바다까지 나가 부류식 김 양식이 시작되었고, 김 건조기를 비롯한 가공시설도 보급되었다. 하지만 건조한 김의 대일수출 길이 막히고 오랫동안 반복된 양식과 밀식으로 갯병이 확산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미역 양식과 톳 양식으로 전환하여 간척사업 이전까지 이어졌다.
바다 일을 하는 약산도 어민들은 여름철에 낭장을 이용해 멸치를 잡고 전복양식을 하며 가을에는 미역, 다시마, 톳 등 양식을 준비해 가을철 잘 관리하고 키워서 겨울철에 채취를 한다. 미역과 다시마는 전복 먹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간척을 해 농사를 짓는 관산간척지는 지주식 김양식장이었다. 간척 후 최근 5년 전까지 방조제 밖에서 김 양식을 했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물가 오르듯 오르지 않고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반복되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구가 아름다운 섬
장마 비가 잠시 멈추자 서쪽 하늘이 열린다. 고개를 넘자 가파른 골짜기에 층층이 계단을 쌓아 올려 만든 '다랭이 논'과 포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나타난다. 바다로 뛰쳐나가려는 걸 붙잡아 놓은 듯 포구마을은 바다 끝에 매달려 있다. 다시 장대비가 쏟아진다. 득암리 포구에 양식장 작업선들이 종이배 마냥 출렁거리며 장맛비를 맞는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포구다.
이 마을은 낭장을 이용한 멸치잡이, 전복양식, 톳양식, 다시마와 미역양식, 청각양식 등 어장이 활발한 마을이다. 여름철에는 멸치잡이와 전복양식을, 가을에는 해조류 양식시설, 겨울에는 양식장 관리, 3월에서 5월 봄철에는 미역, 다시마, 톳 등 해조류 채취 등 사계절이 분주하다. 양식업을 하기 전에는 가파른 계곡에 축대를 쌓아 만든 작은 논배미로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짓고, 갯바위 붙은 김, 파래, 톳, 미역을 채취하며 어렵게 살았던 마을이다.
산과 바다가 풍요롭던 약산도, 외지인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가세해 무분별한 약초채취로 산이 무너지고, 좋은 갯벌은 간척으로 잃고, 바다 고기는 줄어가고 있다. 다시 조약도의 특산물 약재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다시 산과 바다가 풍요로운 조약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