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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쉼표, 작은 연못.
내 마음의 쉼표, 작은 연못. ⓒ 이승숙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그 연못에 수련을 심어 두었다. 봄이면 수련잎이 돋아 나왔고 여름이면 잎 사이로 꽃이 피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연못 물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재미가 참 좋았다.


어느 결인지 개구리가 찾아들었다. 소금쟁이도 놀러 오고 가끔은 거미가 수련 잎 사이로 거미줄을 치기도 했다. 삽살개 갑비는 목이 마르면 연못 물로 목을 축였다. 작은 연못은 이렇게 여럿이 어울려 노는 쉼터가 되었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 사는 작은 연못


작년 가을에 남편이 미꾸라지를 잡아와서 연못에다 풀어줬다. 그래서 연못에는 수련을 비롯해 미꾸라지와 개구리가 주인 행세를 하면서 잘 어울려 살았다. 식구가 많이 늘었지만 서로 들고나며 사는지라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개구리를 위해서는 따로 먹이를 줄 필요가 없었다. 소금쟁이를 위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달랐다. 먹을 것을 넣어줘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갑비한테 주던 개 사료를 한 움큼 집어다가 연못에다 뿌려주었다.


개 사료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개 사료를 미꾸라지가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미꾸라지가 먹겠거니 생각하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개 사료를 한 줌씩 던져 주었다.

 

 수련 잎 뒤에 붙어서 알을 낳는 왕우렁이
수련 잎 뒤에 붙어서 알을 낳는 왕우렁이 ⓒ 이승숙

우리 집 연못 물은 깨끗했다. 관을 묻어 수돗물이 조금씩 들어가도록 해놓았더니 연못물이 늘 맑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물에 이끼가 끼기 시작하는 거였다.


처음엔 별 거 아니었다. 이끼가 끼어봤자 별 거 아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좀 지나자 연못 전체가 퍼렇게 변해 버렸다. 나중에는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끼가 온 연못을 뒤덮고 말았다.


물이끼가 끼기 시작한 연못, 어떻게 해야 하나


물이끼가 시퍼렇게 끼어 있는 연못은 지저분해 보였다. 마치 오염된 물처럼 보였다. 이끼를 없애려고 별수를 다 썼으나 이끼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 생긴 물이끼는 사라지질 않았고 점점 더 세를 불려서 나중에는 물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연못을 점령해 버렸다. 뜰채로 건져 보기도 하고 별 수를 다 써봤지만 물이끼를 잡을 방도가 없었다.


봄이 되자 땅이 풀렸다. 그러자 수련잎이 돋기 시작했다. 그런데 청태도 다시 끼기 시작하는 거였다. 겨우내 얼어 죽지도 않았는지 날이 갈수록 세력을 뻗치더니 온 연못을 시퍼렇게 점령해 버렸다.


미꾸라지는 다 어디 갔는지 몇 마리 보이지도 않는데 그놈의 물이끼만 잔뜩 끼어 있는 거였다. '이제 연못 다 버렸구나, 이끼가 잔뜩 끼어서 저렇게 더러운 연못을 무슨 맛으로 보나' 하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왕우렁이가 한번에 낳는 알의 갯수는 약 500개에서 1000개 가까이 된다 합니다.
왕우렁이가 한번에 낳는 알의 갯수는 약 500개에서 1000개 가까이 된다 합니다. ⓒ 이승숙

지난 여름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아는 분 집에 놀러 갔다. 그 댁 처마 밑에는 돌절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부레옥잠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돌절구에 거무스름한 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였다.


"어, 이거 논고동 아니예요? 아니, 이걸 어디서 잡아왔어요?"
"그거? 그거 수로에 가면 많아. 잡아다 놨다가 된장찌개 끓일 때 넣어주면 그게 바로 우렁이된장찌개지."


'이야, 이거 참 괜찮네'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야말로 우렁이저장고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논고동(우렁이) 좀 잡아서 돌절구에 넣어두자고. 그러면 내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주겠다고 그랬다.


내 말에 구미가 동한 남편은 그 다음 날 바로 논고동을 잡아왔다. 집 앞 수로에 가니까 논고동이 많더라며 아무 때나 말만 하면 잡아다 주겠다고 했다.


잡아온 논고동을 돌절구에 넣지 않고 연못에다 넣어줬다. 말로는 된장찌개 끓일 때 쓸 거라고 했지만 잡아온 논고동을 보니 손질하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연못에다 풀어줬다.

 

 왕우렁이가 방금 낳은 알무더기입니다.
왕우렁이가 방금 낳은 알무더기입니다. ⓒ 이승숙

논고동을 풀어주자 물이끼는 해결했는데...

 

논고동을 연못에 풀어준 지 얼마나 지났나? 어느 날부턴가 연못이 깨끗해지는 거였다. 이끼가 점점 사라져갔다. 논고동이 이끼를 뜯어 먹었던 거다. 그 골칫거리 이끼를 논고동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연못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8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닭장에 버리고 오던 남편이 가만히 불렀다. 남편은 숨을 죽인 채 연못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지켜봤다. 논고동 한 마리가 수련 잎에 붙어 있었다. 가만 보니 알을 낳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수련 잎사귀 뒤에 분홍색 알집이 더러 보였다. 처음엔 그게 누구의 알인지 알지 못했다. 논고동 알이라고는 생각지를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논고동의 알이었던 거다.


그때부터 수시로 관찰해봤다. 언제 알을 낳는지, 짝짓기는 또 어떻게 하는지 등을 알기 위해 지켜봤다. 하지만 그날 이후론 단 한 번도 알 낳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짝짓기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며칠 지난 뒤에 본 알집의 모양입니다. 새끼들이 알을 까서 나가고 있나 봅니다.
며칠 지난 뒤에 본 알집의 모양입니다. 새끼들이 알을 까서 나가고 있나 봅니다. ⓒ 이승숙

그날도 버릇처럼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못 속엔 커다란 논고동을 비롯해서 자잘한 새끼 논고동까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마음껏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짝짓기를 하고 있는 논고동이 보였다. 두 마리가 서로 입을 맞댄 채로 몸을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몇 분을 지켜보아도 계속 그대로 있었다. 생식기관을 어떻게 맞대고 있는지 보려고 물 밖으로 건져냈더니 그만 합체한 몸을 풀고 마는 거였다. 그리고 각자 자기 길로 가버렸다.


9월이 되었다. 이제 연못에는 온통 새끼 고동들뿐이다. 처음에 잡아왔던 큰 고동들은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 빈 고동 껍데기만 몇 개 보일 뿐이다.


이들도 자연계의 그 숭고한 섭리를 따르고 있는 거 같았다. 알을 낳는 사명을 다한 어미는 죽어가고 어미로부터 생명을 얻은 새끼들은 그 어미를 파먹고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침내 어미는 빈 껍질만 남기고 죽고 새끼들은 충분한 영양분을 얻어서 무럭무럭 자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게 맞는다면 숭고한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왕우렁이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왕우렁이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 이승숙

 

우리 환경에 적응한 왕우렁이, 근심거리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내 블로그에 논고동 사진을 몇 장 올렸더니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그분 말씀에 따르면 우리 집 연못의 논고동은 토종 논고동이 아니라 수입산 왕우렁이라고 하였다. 토종 논고동은 알을 낳아서 번식을 하는 게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그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고 자라고 새끼에게 헌신한 어미는 이윽고 껍데기만 남는다고 하였다.


그분의 말을 듣고 자료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우리가 잡아온 논고동은 과연 토종 논고동이 아니라 양식한 '왕우렁이'였다. 친환경농법에서 벼 논의 잡초 제거를 위해서 풀어주는 우렁이가 바로 이 우렁이였던 것이다.


왕우렁이는 남아메리카 아마존 유역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에 들여 왔다고 한다. 토종 우렁이에 비해서 크기 때문에 왕우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추위에 약해서 월동을 못한다고 알려졌으나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월동을 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어느새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한 것이다.

 

 왕우렁이가 수련잎도 뜯어 먹었나 봅니다.
왕우렁이가 수련잎도 뜯어 먹었나 봅니다. ⓒ 이승숙

모내기를 하고 20여 일 지난 다음에 왕우렁이를 논에 풀어주면 잡초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제초제 대신 왕우렁이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왕우렁이가 월동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월동을 한 왕우렁이들은 채 발을 뻗치지 못한 어린 벼를 갉아먹어 버리는 폐해가 발생하게 된다. 아직은 생태계 파괴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지만 계속 지켜봐야 할 사항인 것 같다.


토종 우렁이가 새끼를 쳐서 번식하는 것과는 달리 왕우렁이는 알을 낳아서 번식을 한다. 한 번에 낳는 알의 개수는 대개 500개에서 1000개 내외인데 번식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논 사이에 나 있는 수로에 가보면 왕우렁이를 볼 수 있다. 아직은 생태계를 파괴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염려스럽다. 황소개구리나 베스처럼 우리의 하천 생태계를 교란시킬까 봐 걱정스럽다.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려고 몇 마리 잡아왔던 게 어느새 우리 집 연못에 퍼진 것처럼 우리의 논과 도랑에 수입 왕우렁이가 판을 칠까 염려스럽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까 봐 걱정스럽다.


#논고동#왕우렁이#생태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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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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