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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들머리에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논이 길 아래위로 나누어져 있다. 길 위에 있는 논 주인은 그야말로 농사를 전문으로 짓는 진짜 농사꾼이다. 그 집은 한 번도 때를 놓쳐 본 적이 없이 철 따라 농사를 제대로 지었다. 논에는 잡초 하나 없이 벼가 알차게 여물어갔고, 논둑은 풀을 낫으로 다 베어서 항상 말끔했다.
하지만 길 아래 논 주인은 정반대다. 그 집은 남보다 항상 조금 늦게 농사일을 시작한다. 남들 모 다 내면 그제야 따라가며 모를 내고, 벼 베기도 서리 내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 들에 벼포기가 하나도 안 보일 때에야 겨우 수확을 한다. 물론 논둑엔 풀이 자욱하다.
농사를 제대로 짓는 집은 논에도 자주 나와 본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물꼬 살피러 나와 보고, 바람이 많이 불어도 논에 나와 본다. 주인이 자주 살피니까 그런지 그 집 논은 이발을 금방 한 사람처럼 항상 말끔하다.
하지만 길 아래 집 논은 1년에 주인 그림자를 딱 두 번밖에 못 본다. 그 집은 벼 내고 나면 한 번도 논에 안 나와보다가, 가을 추수할 때나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니 그 집 논의 벼들은 꺼칠하고 윤기가 없는 게 꼭 주인의 사랑을 못 받는 개의 털처럼 부스스하다.
길 아래 집 논은 벼 반 피 반이다. 벼보다 키가 더 큰 피가 논에 가득 번져서 피 논인지 벼 논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로 논에는 피가 많다. 피가 벼 논에 있으면 벼가 잘 자라지 못해서 수확량이 떨어지므로 농사꾼이라면 피는 보이는 족족 다 뽑아버린다. 그러나 길 아래 논은 피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논에 피가 많다.
길 아래 논이 이렇게 버려져 있다시피 하니 남편은 노상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거였다.
"저 벼 왜 아직 안 베는 거야? 서리 맞으면 쌀이 맛없다는데 왜 추수 안 하지?"
"피 저거 내가 좀 뽑아 줬으면 좋겠네. 벼에 갈 영양분이 피로 다 가서 수확량이 얼마 안 나겠네."
논 주인도 아니면서 농사 걱정을 혼자서 다 했다. 그런데 제초제도 안 뿌리고 비료도 안 치는,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하는 그 논 덕을 우리가 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어느 해 봄날, 모내기를 하려고 갈아엎어 놓은 논에 왜가리들이 하얗게 내려앉아서 연방 부리로 뭔가를 찍어 올리고 있었다. 갈아엎은 논흙 속에 미꾸라지가 있었는지 왜가리들이 무논에 여러 마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해 여름에 어디 나갔다가 미꾸라지 잡는 통발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그 길로 바로 철물점으로 가서 미꾸라지 통발을 사왔다. 그리고 낚시용 떡밥을 뭉쳐서 통발 안에 조금 넣고는 논 가에 파놓은 물고랑에 드문드문 넣어두었다. 설마 이렇게 해서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통발을 넣었다.
다음날 아침에 통발을 건져보니 미꾸라지가 제법 들어 있었다. 그래서 재미를 붙인 남편은 불철주야(?) 미꾸라지 잡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꾸라지는 농약을 치지 않은 논에 잘 산다. 제초제를 치지 않아서 잡초가 좀 있는 논이거나, 왜가리 같은 날짐승들이 날아와 있는 논은 미꾸라지가 있는 논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러니 우리 집 아래 논이 바로 미꾸라지들이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만약 논 주인이 부지런해져서 농약을 치거나 제초제를 뿌린다면 미꾸라지들의 황금기는 지나가는 거다.
미꾸라지는 물속에서도 호흡을 하지만, 물 밖에서도 호흡을 한다. 처음엔 그런 것들을 몰라서 통발을 물속으로 가라앉혀서 설치했다. 그런데 나중에 건져보면 미꾸라지들이 통발 속에서 죽어 있었다.
그래서 가만 연구를 해보니까 미꾸라지들이 물이 탁하면 산소가 부족해지므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공기호흡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통발을 약간 물 밖으로 나오게 해두었더니 미꾸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 있었다.
미꾸라지는 저녁에 이동을 많이 한다. 그러니 통발은 미꾸라지들이 많이 이동하는 오후에 설치했다가 아침에 걷는 게 좋다.
미꾸라지를 잘 잡는 사람들은 미꾸라지가 많은 곳을 잘 알아서 통발을 설치한다. 듣기에는 손을 물에 넣어서 가만있어 보면 고기 다니는 곳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쏠쏠하게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아직 그 경지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해본 경험으로 이제는 거의 반 선수급으로 미꾸라지를 잡는다.
우리 집에는 미꾸라지 저장고도 있다. 마당 한쪽 귀퉁이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그 연못은 통발로 잡은 미꾸라지들을 저장해 두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꾸라지를 잡아서 바로 추어탕을 끓여 먹는 경우도 있지만, 잡아 두었다가 며칠 지난 뒤에 해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미꾸라지를 보관해 두기 위해서 고무통에도 담아 놔보고 항아리에도 넣어 두어 보았다. 고무통에 담아두면 미꾸라지들이 배를 뒤집고 잘 죽었다. 그래서 항아리에 물을 받아서 담아 두었더니 고무통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이 연못이었는데, 연못에 미꾸라지를 넣어 두었더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잘 살았다. 그래서 우리 집 연못은 수련이 자라는 본래의 기능보다 미꾸라지를 보관해두는 저장고로 역할이 바뀌었다.
미꾸라지는 늦은 봄에 산란을 한다. 그래서 장마가 지난 뒤, 여름에 잡히는 미꾸라지들은 아주 어려서 추어탕으로 끓일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연못에 풀어주고 키운다. 가을쯤이 되면 봄에 나온 미꾸라지들이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자라 있다. 미꾸라지는 2년 정도는 자라야 적당한 굵기의 미꾸라지가 된다.
미꾸라지는 가을이 되면 겨울나기를 위해서 살이 통통하게 쪄 있다. 그래서 가을 추어탕이 맛있는 거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미꾸라지들은 흙 밑에 들어가서 동면을 한다.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깨어난다.
미꾸라지 추어탕이 맛있는 계절이 되었다. 연못에서 미꾸라지를 좀 잡아서 추어탕을 끓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