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력이 많이 되살아난 어머니에게 날마다 소일거리를 만들어 드리느라고 신경을 쓰고 있던 중 한 분이 성냥개비 쌓기 놀이를 권했다. 내가 운영자로 있는 카페(부모 모시기 - 자식키우기 반만이라도 cafe.naver.com/moboo)에 내 고충을 듣고 회원 한 분이 권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문방구에서 풍선을 색색으로 사다가 어머니랑 던지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두어 번 던지다가는 이내 지루해 하셔서 다시 문방구에 가서 막대풍선을 여러 개 사다가 풍선으로 동물 모양을 만들던 중이었다. 화요일인 그제 성냥 한 통을 사 왔다. 읍내 나갔더니 뜻밖에도 옛날에 보았던 큰 성냥통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 온 성냥통을 보고 어머니는 마치 오래전 헤어진 혈육이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하셔서 성냥개비 놀이도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첫날. 성냥통에서 성냥들을 꺼내놓으니 어머니는 성냥에 얽힌 옛 경험담을 소개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다림질을 하시고 할아버지가 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었는데 할아버지가 그러더란다.
"야야… 화로에 헝겊 쪼가리가 들어갔나 봐라. 뭐 타는 냄새가 솔솔 난다."
당시는 다림질을 할 때는 인두를 화로에 꽂아두고 윗저고리의 동전을 다리고 숯불 다리미로는 옷을 다리던 때라 화로가 늘 곁에 있었는데 할아버지 말씀에 깜짝 놀란 어머니가 화로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타는 냄새는 화로가 아니라 할아버지 윗주머니에서 나는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담배쌈지에 재를 털고서는 그걸 옷 주머니에 넣었는데 불씨가 살아나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게 보였다고 한다.
"아버님∼ 옷 타요." 소리를 쳐서 할아버지가 혼비백산했던 이야기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당시에는 난생 처음으로 휘발유를 넣고 사용하는 지포라이터를 아버지가 구해다 할아버지를 드렸단다. 할아버지는 부싯돌로만 담뱃불을 댕기셨는데 라이터가 너무너무 신기해서 좋아하셨지만 단 한 번도 주머니에 넣고 다닌 적이 없다고 한다. 불덩어리가 들어 있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면 불난다고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니셨다는 것이다.
어쨌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은 때에 나는 놀이를 제안했다.
"어머니. 우리 이거 가지고 이거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갑자기 생각난 듯하면서 어머니의 관심을 끌려고 해 봤다. 어머니가 "뭘?" 하셨다. 내가 먼저 성냥개비 쌓기를 해 보이는데 성냥개비를 몇 층 쌓지도 않았는데 휙 돌아앉으셨다.
"찌랄한다. 그거는 국민학생들이나 하는 기지. 내가 지금 몇 살인데 그런 거 하고 앉았을끼고? 그렁거 할 여개가 어디 있노?"하시는 거였다. 어머니가 무슨 할 일이 많으시다고 그런 것 할 여가가 없다시는지 원.
저녁을 먹고 다시 시도했다. 마루에서 밥상을 물리고 어머니 틀니 빼서 닦아 드리고, 마루 닦고, 설거지하고, 낮에 일하다 못다 치운 공구들 들이고, 어머니 벗어 놓은 오줌 묻은 옷 빨고 하는데 어머니가 우두커니 마루에서 심심해 하시는 게 보였다. 나는 신문지를 깔고 은근히 접근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삼각형으로 쌓고 저는 사각형으로 쌓고 우리 놀이해요. 무너지면 지는 걸로 하구요. 지면 이마에 꿀밤 한 대 때리는 걸로 해요" 하면서 어머니 이마에 꿀밤 때리는 시늉을 했다.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는 듯해서 얼른 나는 삼각형 모양과 사각형 모양으로 성냥개비를 몇 개 쌓았다. "이렇게요. 이렇게요" 하면서.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앉으시더니 내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아이구우∼∼! 큰일 났다. 아까부터 내가 오줌이 누러벗는데 참았띠 막 나올락칸다. 나 오줌누러 간다. 너 혼자 해라." "아니. 꿀밤 때리기 하자니깐 왜 도망가요. 어머니!"
어머니는 부랴부랴 안방을 거쳐 뒷방으로 가시면서 또 한마디 하셨다.
"너. 그기 열 층 개 쌓으면 성냥이 몇 개 드는지나 알기나 아나? 그것도 모르는 기 뭘 한닥꼬. 아이고오 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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