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조다와 파란 눈의 여인의 대화가 길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다른 곳으로 향했지만 김억만은 계속 파란 눈의 여인에게 머물러 있었다. 김억만이 파란 눈의 여인을 처음 본 순간 가슴 한구석은 어딘지 모르게 서늘해졌다. 그와 동시에 파란 눈의 여인에게 무엇인가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드는 지는 김억만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어?” 한참을 무엇인가 얘기하던 사구조다가 갑자기 파란 눈 여인의 뺨을 후려쳤다. 김억만은 지체 없이 뱃머리로 달려가 사구조다를 밀치고 파란 눈 여인을 감쌌다. 그 광경을 보고 청나라 군병은 물론 조선 포수들도 모조리 달려와 사구조다와 김억만 사이를 막아서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슨 짓들이냐! 모두 물러서라!” 배군관이 조선포수들을 물러서게 하자 청나라 병사들이 김억만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려 했다. 사구조다가 청국말로 소리치며 손을 내젓자 청나라 병사들도 김억만을 놓고 슬며시 물러났다. “이 여인을 아느냐?” 사구조다가 입가에 슬쩍 웃음을 머금으며 김억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모르오. 허나 이 여인에게 하는 행동이 온당치 않게 보여 그런 것뿐이외다.” 사구조다는 턱을 치켜 올리며 크게 웃어 젖혔다. “모른다고? 허허허...... 그런데 꼭 아는 사이 같아 보이는구나.” 사구조다는 연실 웃으며 김억만과 파란 눈 여인을 남겨둔 채 가버렸다. 멀찍이서 조선병사들과 청나라 병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뱃머리에는 김억만과 파란 눈의 여인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가서 쉬쇼!” 김억만은 퉁명스레 그 말 한마디를 남겨두고 어색해진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파란 눈 여인은 갑자기 김억만의 손목을 턱 하니 잡았다. “와!” 그 광경을 보고 조선 포수들이 놀람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김억만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이거 왜 이래. 이거 놓으시오......” 김억만은 파란 눈 여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파란 눈 여인은 김억만의 손목을 굳게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억만이 장가가게 생겼네.” 급기야 포수들이 놀리기까지 하자 김억만은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더욱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파란 눈 여인은 여전히 김억만의 손목을 잡은 채 붙어 다녔고 급작스럽게 끌리는 바람에 급기야 김억만과 몸이 밀착되었다. “아 이거 놓으란 말이야!” 김억만이 손을 세게 뿌리치자 파란 눈 여인은 중심을 잃으며 갑판위에 나뒹굴었다. 깜짝 놀란 김억만은 파란 눈 여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그러기에 왜......” 순간 파란 눈 여인의 손이 김억만의 머리를 껴안더니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당황한 김억만은 코로 숨을 쉴 생각조차도 못한 채 양손을 버둥거렸다. 그 광경을 보던 조선 포수들은 그 광경에 손뼉을 치며 크게 웃어대었다. “아이고! 아주 여기서 신방을 차렸네 그려!” “에그그그! 이거 남우세스러워서 보겠나! 껄껄껄” 김억만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파란 눈 여인은 여전히 그의 팔을 부여잡고 옆에 꼭 붙어 있을 따름이었다. 동료 포수들의 놀림과 환호 속에 김억만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파란 눈 여인을 옆에 달고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가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날 잡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이제 나선 놈들도 물리쳤으니 넌 네 집으로 가고 난 내 집으로 가야지. 나 따라나서 봐야 불알 두 쪽에 총 한 자루가 다인 포수 나부랭이니 별 볼일 없네.” 파란 눈의 여인은 눈만 끔벅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김억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너 조선말은 알아듣기나 하냐? 이것 참!” “아, 몸으로 좋다고 하는데 말이 필요하나?” 포수들의 놀림에 김억만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지만 파란 눈 여인의 얼굴은 어느새 화사하게 밝아져 오고 있었다. 사구조다는 멀리서 말없이 그 광경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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