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의 포로로 잡혔던 왈가족 여인들은 모조리 집으로 돌려보내졌지만 파란 눈의 여인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파란 눈의 여인은 복색부터 왈가족 여인들과는 달랐다. 김억만은 통역관을 끌고 와서 파란 눈 여인에게 말을 시켜 보았지만 파란 눈 여인은 눈만 끔뻑일 따름이었다. “생김새가 양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왈가족이나 한인도 청국인도 아니고....... 암만해도 이 여자 보아하니 귀도 먹고 말도 되지 않는가 보네.” 통역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을 들으니 김억만은 파란 눈 여인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눈이 파랗게 빛나니 청안(靑眼)이라고 해야겠다.” 포수들은 웃으며 파란 눈의 여인을 그렇게 불렀다. 그날, 청안은 잘 때도 포수들의 잠자리에서 김억만의 곁에 꼭 붙어 누워 김억만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긴장하며 잠드느라 굳은 몸을 털며 나오는 김억만을 통역관이 급히 잡고서는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어...... 왜 이러시오.” 통역관은 보는 사람이 없는 지를 확인 한 후 김억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당장 청안인가 뭔가 하는 그 계집 당장 내보내게!” “아 지발로 날 따라오는 계집을 어쩌라는 거요?” “자네 사구조다가 누군지 아는가?” “그야 청나라 대장이 아니오.” “쯧쯧쯧...... 이런 벽창호 같으니라고!” 통역관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구조다는 청나라 총대장 사르프다의 셋째 아들이네.” “까짓 거 뭐가 대수요.” 김억만은 얼굴을 찡그리며 통역관을 슬쩍 밀치며 지나치려 했다. 통역관은 다시 김억만을 붙잡으며 말했다. “게다가 그 청안이를 데려오려고 사구조다가 안달이 나있는데 자네가 그 애를 데리고 잤으니 지금 분위기가 어떤지 아는가?” “아 말조심 하시오! 누굴 데리고 잤다는 거요! 지 발로 와서 잔거지! 거 원 아침부터 거지발싸개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젠장!” 김억만은 소리를 지르며 통역관을 확 밀쳐 버렸다. 통역관은 그런 김억만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아 난 그러다 자네가 무슨 해를 입을지 몰라 걱정되어서 한 얘긴데 이러면 섭섭하네!” 강가에 잠시 정박한 배 위에서의 아침은 주먹밥과 간장에 생선과 된장을 넣어 끓인 국물이었다. 청안은 주먹밥만 먹을 뿐 간장과 된장국을 보고서는 냄새도 맡기 어려워했다. 김억만은 그런 청안이 걱정되었다. “이거 뭐 먹고 싶은 걸 말해도 못 알아들을 판인데 귀도 먹었으니 원. 대체 집이 어디야?” 청안은 고요한 눈으로 김억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김억만은 먹던 주먹밥을 마저 털어넣은 후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니까. 네가 먹고 잤던 곳이 어디야? 집, 집 몰라?” 청안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살포시 웃었다. 그 모습에 김억만은 저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지며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러나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이국의 여인에게......’ 김억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는 것을 보고 동료 포수들이 키득거렸다. “아 좋으면 좋다고 손이라도 잡아. 우린 모른 척 할 테니까.” 짓궂은 농담에 화답이라도 하듯 엉뚱하게도 청안이 김억만의 손을 버럭 잡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 어?” 김억만은 당혹해하며 청안에게 끌려 나갔다. 청안은 강가를 바라보더니 김억만의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네 집이라는 말이야?” 청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청안은 마치 김억만의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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