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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처로 향하던 몸이 노상에서 잡혀 왔으면 단 한 번만이라도 용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것이 국문의 형장이든 대궐의 뜰이든 아무 곳이라도 좋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이숙번에게 전달된 하교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전에 내가 말한 것은 종사(宗社)와 관계되지 않는 일에 대하여만 말한 것임을 너는 알라."

바로 이것이었다. 남태령에서 휴식을 취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던 얘기가 대궐에 전달되어 태종이 진노했던 것이다. 노루피를 나누어 마시며 당대는 물론 자손 대까지 후일을 보장하겠다는 삽혈맹세는 현재 유효하나 종사에 관계되는 일은 예외라는 것이다.

태종수결 태종의 친필 수결이다
태종수결태종의 친필 수결이다 ⓒ 이정근

태종은 등극 초. 자신의 집권에 공헌한 정사공신과 좌명공신 중에서 원로급에 해당하는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 상당군(上黨君) 이저, 완산군 이천우,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 우정승(右政丞) 하륜,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를 거느리고 마암(馬巖)의 단(壇)에 나아가 삽혈훈맹(揷血勳盟)이라는 의식을 거행했었다.

"신명(神明) 앞에 충과 신을 굳게 하고자 황천상제(皇天上帝)·종묘·사직·산천 백신(百神)의 영(靈)에 고합니다. 한마음으로 서로 도와 자손만대에 오늘을 잊지 말지니 사(私)를 껴서 공(公)을 배반하고 음모참소(陰謀讒害)하면 신명께서 반드시 죽이어 앙화(殃禍)가 자손만대에 미칠 것이며 범한 것이 사직(社稷)에 관계되는 자는 마땅히 법으로 논할 것이다." - <태종실록>

엄숙한 맹세식에 이어 노루피를 나누어 마시며 결의를 다졌다. 입술에 븕은 피를 묻히는 것은 혈맹을 의미한다. 이숙번은 맹세식에 참여 하지 못했으나 삽혈맹세는 모든 공신들에게 준용되는 전범이 되었다.

'몸은 다르나 마음을 같이하여 만세(萬世)에 변함없이 자손에 이르자'고 노루피를 나누어 마시며 거행했던 삽혈맹세는 쌍방 통행이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유감스럽게도 충성 맹세다. 상하만 존재할 뿐 수평은 없었다.

삽혈맹세를 믿었던 이숙번

삽혈맹세는 왕조시대가 그러하듯이 임금에게는 강제사항이 없고 신하들에게 맹종을 요구하는 족쇄가 되었다. 맹부(盟府)에 보관 되어있는 서약서 역시 공신들이 권리를 향유하는 보증서가 아니었다. 통치자가 혁명동지를 내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통치술의 일환이었다.

이숙번은 순진하게도 삽혈맹세를 믿었다. 공신 중에서도 제일 총애 받는 우(右)숙번이지 않은가. 무슨 과오라도 공신이라는 비표 하나면 통과 될 줄 알았다. 목숨을 다 바쳐 주군으로 모셨고 아들처럼 대해주지 않았는가. 이무가 처형되고 민씨 형제가 사라져도 자신만은 예외라 생각했다.

태종에게 있어서 삽혈맹세는 종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종사의 수성은 삽혈맹세 상위개념으로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이숙번은 이방원을 위하여 혁명에 참여 했고 이방원은 종사를 위하여 혁명했다는 것이다. 혁명에 성공한 이방원은 공신을 통치의 일부분으로 이용했고 이숙번은 공신을 최고의 가치로 착각했던 것이다.

 박정희,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맨 우측이 육군대위 차지철. <해방60년사> 전시회에서 촬영했습니다.
박정희,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맨 우측이 육군대위 차지철. <해방60년사> 전시회에서 촬영했습니다. ⓒ 이정근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교만과 위세를 떨치던 차지철은 10·26 당시 경호실장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화장실로 피신했다.

태종과 박정희는 닮은 부분이 많다. 권력쟁취 수단이 무력이었다는 점이 같고 집권기간 18년이 같다. 목숨을 걸고 거사에 동참한 혁명동지를 내친 것도 비슷하다. 때문에 박정희 시대에는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태종을 거론 하는 것 자체가 금기 사항이었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은 장도영 중장을 최고회의 의장으로 모시고 박창암 대령을 혁명검찰부장으로 중용했으나 곧바로 반혁명 혐의로 숙청했다. 최고회의부의장 이주일과 해병대가 한강을 건너는데 역할을 한 해병소장 김동하도 숙청되었으나 정일권은 장수했다. 하륜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혁검'이라 약칭했던 혁명검찰부는 산천초목도 떨게 했던 무서운 기구였다. 헌법을 유린한 쿠데타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회악 일소라는 미명아래 깡패를 소탕하는 것은 물론 4·19당시 내무부장관이던 홍진기(현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부친)를 부정선거 혐의로 잡아들이고 이병철(현 삼성 이건희회장 부친)을 부정축재 혐의로 불러들였다.

뿐만 아니라 사학자 이선근도 잡아들였다. '고구려도 망했고 신라도 패망했는데 왜 한국사가 신라 중심으로 되어야 했나?' 45년 전 이선근에 대한 혁검의 심문이지만 오늘날까지 여운으로 남는다. 그 후 JP를 국외로 추방하고 김형욱은 파리에서 실종되었다. JP가 외유 떠나면서 김포공항에서 남긴 말.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말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영원히 권좌에 있을 것 같았던 박정희는 부하에게 피살되었고 태종은 세종에게 양위했다. 박정희는 타의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왔고 태종은 자의에 의해 내려왔다. 같은 길이라도 내려오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이숙번이 떠나자 대규모 검거선풍이 불었다

하교를 받아든 이숙번은 다시 한양을 떠나 경상도 함양으로 유배를 떠났다. 이숙번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을 확인한 조정에서는 이숙번 파당의 숙청에 들어갔다. 좌의정 박은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유사눌이 지신사(知申事)로 있을 때 이숙번의 무리에 비부(比附)하여 황단유의 노비를 빼앗았으니 유사눌을 불러 임금을 기망한 사유를 묻게 하소서."

"이숙번과 유사눌이 전성(全盛)하였을 때에는 어찌하여 이 말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진노한 태종은 노비변정도감 당시 형조참의(刑曹參議) 윤임, 좌랑(佐郞) 송명산과 박융 그리고 지금의 참의(參議) 오식, 정랑(正郞) 송기·허항, 좌랑(佐郞) 양수와 김연지, 사헌집의(司憲執義) 이감, 지평(持平) 홍도와 진중성, 사간(司諫) 최순, 정언(正言) 안지·정지담 등을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병조판서 윤향과 조말생으로 하여금 국문하게 하였다.

또 의금부에 명하여, 당시 형조 정랑이었던 지수천군사(知隨川郡事) 김희와 나주교수관(羅州敎授官) 이초, 그리고 형조 장령이었던 지진산군사(知珍山郡事) 유선, 전 헌납(獻納) 정곤(鄭坤)을 잡아 오게 하였다. 대규모 검거 선풍이다. 이숙번 세력의 초토화 작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 박신과 정역, 위관(委官) 윤향·서선·홍여방·이명덕·한승안 등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영의정 유정현, 예조판서 변계량, 동부대언 하연, 병조참의 우균에게 명하여 잡치(雜治)하게 하였다.

뿐만이 아니다. 진무(鎭撫) 이척, 지사(知事) 정종성, 도사(都事) 김안경·양질 등을 하옥하고 이조정랑 우승범, 호조정랑 서적, 공조정랑 박신생도 잡치하는 반열에 참여하게 하였다. 오늘날의 지검 사건에 중수부가 투입된 것과 흡사하다.

공신당 종묘 공신당에 하륜은 태종조의 공신으로 배향되었지만 이숙번은 없다.
공신당종묘 공신당에 하륜은 태종조의 공신으로 배향되었지만 이숙번은 없다. ⓒ 이정근


함양에 자원 안치된 이숙번은 태종 살아생전에 한양 땅을 밟지 못했다. 영원한 결별이었다. 한 때는 자손만대를 함께하자는 동지였지만 정치는 냉혹했다. 이숙번은 냉탕과 온탕을 뛰어 다녔지만 불 때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다.

태종 사후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짓던 정인지와 안등이 무인혁명에 대한 충실한 자료 확보 차원에서 이숙번이 필요했다. 함양에 있던 이숙번을 불러올린 세종이 이숙번을 경외에 눌러앉아 살게 하려 했으나 사헌부와 사간원의 반대에 부딪쳐 함양으로 하방 된 후 함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태종 사후, 세종이 이렇게 술회한 일이 있다. 

"하륜이 나의 외조부와 교분이 매우 깊었으므로 매양 민씨를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여러 외숙들이 광패하고 건방지어 무도하므로 숙번이 힘써 민씨를 배척하였다. 이리하여 하윤과 숙번이 붕당(朋黨)을 나누어 맞섰던 것인데, 숙번이 반역하려는 마음(今將之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세종실록>

세(勢)는 흩어지면 모이고 모이면 흩어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야인 이방원을 위하여 하륜과 이숙번은 세를 모았지만 태종 치하에서는 흩어졌다. 반목과 질시가 당대의 부귀영화와 후손의 장래를 위한 것이었지만 미래를 만들어 낸 것은 태종뿐이었다.


#삽혈맹세#혁명#이방원#이숙번#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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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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