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가을이다. 여느해나 그렇지만 올해는 태풍과 수해를 뒤로 하고 맞이하는 가을이라 더 의미가 깊다. 고향가는 길, 경기도 양평 도로변의 논마다 형형색색의 허수아비들이 황금들녘의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어릴 적 만났던 허수아비보다는 훨씬 세련된 모습들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허수아비들이라고 변하지 않을까? 자연스럽다. 그들이 있어 가을 들녘이 더 풍요로워 보이고, 고향이 고향다워 보인다.
고교시절, 가끔 친구들과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 강촌, 춘천으로 여행을 했다.
경춘선 차창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간 풍경들이 내 마음 깊은 곳에 한지에 그린 수묵화처럼 그리 새겨 있나 보다. 그때 그 들판이 아님에도 마치 그때 그 들판을 보는 듯 하다.
허수아비가 무서워 논을 지나칠 순진한 참새가 요즘에도 있을까? 어린 시절 가을이면 논에 나가 꽹과리를 치며 '훠이! 훠이!' 새를 쫓았다. 그 때 잘 익은 벼를 한 웅큼 훓어 손으로 비벼 입안에 넣고 씹으면 온 입안이 깔깔하면서도 햅쌀의 기운이 가득해 자꾸만 먹고 싶었다.
밤을 주워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고,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끼어 해질녘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개선장군마냥 신이 났다. 저녁을 먹기 전이니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솔솔 뿌려 구워먹는 메뚜기 맛도 일품이요, 날로 까먹는 알밤의 맛도 일품이었다.
송편 만들 쌀을 찧느라 방앗간은 북새통이었다. 어머니들은 쌀을 씻어 방앗간에 맡기고는 송편 속에 들어갈 고물을 만들고, 계집아이들은 바구니를 들고 솔잎을 따러 산으로 나섰다.
제사에 올릴 음식들은 주로 마당에서 준비를 했고, 아이들은 그 마당을 쉼없이 오갔다. "이눔들, 저리가서 놀아라!"하며 호통을 치는 아주머니들, 그러나 마당에 들어갔다온 아이들의 입이며 손은 불룩했다.
가을 들녘의 허수아비, 추석을 앞둔 들판의 허수아비는 고향풍경이다.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도 시절에 따라 변했다. 그 변한 모습이 밉상스럽지만은 않다. 십 년 혹은 이십년 뒤에는 혹시 허수아비들이 노트북을 가지고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