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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이 포함되있다는 사막 철광석때문에 저렇게 까만색을 띄고있다.
철광석이 포함되있다는 사막철광석때문에 저렇게 까만색을 띄고있다. ⓒ 김동희


아침에도 카이로는 뿌연 색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시내는 한산해 보였다. 바하레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투루고만 버스터미널로 갔다. 생각 외로 너무 한산한 모습에 어리둥절하고 있기도 잠깐. 큰 전광판에 무어라 시간표가 바뀌며 보여주는 것 같은데 도통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아랍어는 그저 나에게 암호일 뿐이다.

아무 곳이나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곳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곳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순서가 오기 보다는 옆에서 잽싸게 돈을 내밀며 창구 직원과 말을 건네는 사람이 더 빨리 표를 살 수가 있다. 열심히 옆에서 새치기 하는 사람을 방어하면서 차례가 되었지만 창구 직원은 허무하게도 나에게 옆 창구로 가라는 손짓을 해 주었다. 옆 창구에서 표를 사서 보니 역시나 빙빙 돈다. 뭐 하나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없으니 더더욱 궁금하다. 차 시간, 행선지, 그리고 좌석 이런 것들이 적혀있을 텐데 어느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알 길이 없다.

이집트에서 편한 점은 흰 옷을 입은 경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행자들에게 친절하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준다. 경찰에게 가서 표를 보여주니 버스 타는 곳을 알려준다. 버스는 내 상식과 달리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버스가 한대 서 있다. 바하레야로 가는 버스임을 확인하고 올라갔으나 역시 표는 나에겐 소용없는 물건. 도대체 내 자리는 어디인지! 아랍어 숫자도 우리가 사용하는 1, 2, 3이 아니다. 가는 동안 숫자라도 외워야겠다.

버스가 시내로 나가니 아침에 고요했던 도로는 어디로 가고 다시 전쟁이다. 도로에는 온통 사람들과 차들이 섞여 매연 냄새와 경적 소리로 가득 차있다. 카이로 외곽인 기자까지 나가는 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아직 사막으로 가는 길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치려고 한다. 카이로를 벗어나자마자 차는 시원하게 달린다. 몇 분을 달렸을까 금새 바깥 풍경이 확연히 다르다. 그저 누런 땅밖에는 없다. 5시간 동안 비슷비슷한 사막을 달렸다. 사막 투어를 하기도 전에 본 사막으로도 벌써 질릴 것 같다. 저 멀리 바하레야는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다. 사막 위에 사람이 사는 곳, 물이 있는 곳, 그래서 초록빛이 띄는 곳이다.

버스 안에서 본 풍경 바하레야까지 가는 동안 계속해서 보이는 것 사막뿐이다.
버스 안에서 본 풍경바하레야까지 가는 동안 계속해서 보이는 것 사막뿐이다. ⓒ 김동희

멀리에서 볼 때 싱그러워 보이던 초록빛 마을에 들어서니 사막의 푸석푸석함이 느껴진다. 작렬하는 태양과 계속 해서 부는 바람, 그 아래 도로와 집 모두 뿌옇다. 그렇게 찐하게 보이던 초록빛 종려나무들의 잎에도 누런 먼지가 끼어 있다. 손과 얼굴 그리고 머리에서 아주 고운 모래 알갱이들이 느껴진다.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적응해야 할 모래 먼지다. 하루 이틀 아니 일주일이야 이곳을 벗어나면 없어질 것들이니 견디지만 온 삶 동안 이 텁텁한 모래 바람과 함께 하는 이 사람들은 어떨까. 인샬라!

해가 작렬해서 모든 걸 다 태워버릴 것 같은 시간을 지나 오후 4시쯤 사막투어가 시작되었다. 사륜구동 차에는 사람들의 짐과 우리가 먹을 저녁거리, 계속해서 갈증을 달래줄 수많은 물통들, 게다가 밥 지을 때 사용할 장작들까지 실려있다.

동네 아이들은 우리 차에 붙어 희한하게 생긴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아이들이 개미 같은 소리로 볼펜을 달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주려고 집에서 뒹굴던 볼펜들, 사무실에서 뒹굴던 볼펜들을 가져왔는데 내 가방은 장작 밑에 깔려 있어 꺼낼 길이 없다. 그냥 웃어주기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기도 쑥스럽다. 한 번 고개를 돌려 웃어주고 다시 다른 일을 하는 척 하기를 몇 번. 아이들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나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그 어색하기 그지 없는 몇 분.

그냥 장난을 걸어 이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한 아이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내 손을 잡기 위해 난리가 났다. 그냥 내민 손이었는데 그 어색했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 하이 파이브 할까? 아자! 아자!"

나도 신나고 아이들도 신났다. 한 명과 끝나면 그 다음 아이 또 그 다음 아이.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난 꼬맹이들이 계속 볼펜을 받고 싶어서 그곳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저 저 특이하게 생긴 사람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다. 어딜 가든 아이들만은 순수했으면 좋겠다. 아이들만은 돈을 위해 구걸하거나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순수하게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귀여운 아이들의 하이 파이브를 받고 떠나는 사막 왠지 더 설렌다.

사흐라. 아랍어로 사막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느낌이 아련하다. 소리 내어 말해보면 잡히지 않을 듯 사라져버리는, 사막의 모래처럼 손에서 미끄러져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또 사하라 사막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의 단어이다.

사막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곡선의 모래 언덕이 바람에 따라 이리로 움직이고 저리로 움직이는 것을 생각하지만 바하레야는 그런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휑한 누런 벌판에 산 같은 언덕들이 펼쳐져 있다. 어떤 곳은 까만 철광석 성분이 많아서 흑사막이라 불리고, 어떤 사막은 크리스탈이 많아 크리스탈 사막이라고 불린다. 또 어떤 곳은 하얀 돌들로 가득해 백사막이라고 불린다. 물이 없고 풀이 없는 곳, 그런 곳은 모두 사막으로 불리는 것 같다.

경찰서에 가서 사막으로 들어가겠다는 신고를 하고 드디어 바하레야 사막으로 입성이다. 하나로 쭉 뻗은 도로 옆으로 황량함이 묻어난다. 우리 차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릴 것이다. 아직도 태양은 사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에 다녀온 여행기 입니다.



#이집트#바하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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