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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교민신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지난달 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총회에서 한국어가 포르투갈어와 함께 ‘국제공개어’로 공식 채택되었다는 것.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뉴스거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하는 재외동포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국제공개어’는 출원된 특허기술이 어떤 것인지 국제사회에 알릴 때 사용하는 특허계의 공용어인데, 그전까지는 유엔 공용어인 6개 언어(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에 일본어와 독일어를 더해서 모두 8개 언어가 국제공개어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여기에 한국어도 포함이 되어 세계 10대 언어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특허 분야에 국한된 것이긴 해도 이번 결정은 국제기구에서 한국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 매우 뜻깊은 일로 여겨졌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점차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되어 세계무대에서 한국어의 위상이 점차 높아질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외국에 나가 살면서도 우리말을 쓰는 것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날이 오겠거니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그러나 이것은 떠나온 자의 바람일 뿐이고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광풍’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영어 교육 열풍이 갈수록 거세지는 모양이다. 영어를 배우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조기 유학생 규모가 사상 최대라느니, 영어를 제대로 못하면 아무리 명문대학교를 졸업했어도 취업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오니 말이다.


앞으로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영어 광풍을 생각해 보면, 한글날을 앞두고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날아든 최근의 낭보도 무색해질 지경이다. 앞으로 두세 세대까지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 이후에도 과연 한국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감마저 든다.


역사 속에서 이미 사라진, 그리고 현재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소수 언어들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책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을 읽어보면,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이제이북스

각각 인류학과 언어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국인 학자 두 명이 함께 쓴 <사라져가는 목소리>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대략 6700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백 개의 상위 언어를 세계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사용하고 있다는데, 이는 최소한 6천 개 정도의 언어를 세계 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수가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용자의 수가 고작 수십에서 기껏해야 수만에 불과한 이러한 소수 언어들은 아프리카와 남북아메리카,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에 걸치는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난 날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받았던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들은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는 지역과 다양한 소수 언어가 분포하는 지역 간에 보이는 밀접한 상관관계에 입각하여, 저자들은 ‘생물언어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인간의 언어와 문화, 인간 이외의 생물종, 그리고 지구의 생태계는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에 기반하는 이러한 생물언어적 다양성의 시각으로 볼 때, 20세기 후반부터 심각하게 대두된 이들 지역에 있어서의 생태계 파괴 문제는 동시에 언어 사멸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과정의 주요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인간이 자연환경과 그 환경에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위기에 관한 문제는 지구 생태계의 보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56쪽)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태계 보존의 열쇠는 언어 속에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언뜻 지나친 비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수세기를 살아온 작은 집단들이 사용했던 토착민의 언어들 속에는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담겨 있고, 이러한 지식들은 우리들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과 생태계를 관리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저자들은 여러 쪽에 걸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북극권의 이누이트인, 그리고 태평양의 여러 섬에 사는 토착민들의 토착 언어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생태 지식들을 풍부한 사례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신념이 막연한 가설이나 당위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지식의 보고인 소수 언어들이 생태계의 파괴 못지 않은 속도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이들 6천 개 소수 언어들의 최소한 절반이나 그 이상이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사멸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지난 5백 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가량이 이미 사라졌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에 결코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많은 사람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팬더 곰이나 얼룩 올빼미에게는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언어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 경제 발전,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현대화에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 속에는 다중 언어를 바벨탑의 저주와 연결시키는 잘못된 관념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토착민들이 구사하는 그러한 소수 언어들은 오늘날 대다수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유라시아 대륙의 언어들보다 열등하고 결함이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러한 언어들이 사멸하는 것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르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위하여 그들의 전공인 언어학과 인류학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역사학과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지리학까지도 동원하고 있다. 그 논리 전개는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무심할 수 있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이 문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제3세계 원주민들의 일일 뿐이라는 무관심과 상징적 자본으로서의 언어의 역할에 주목하는 권력의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개입이 작용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1846년에 영국 정부의 교육위원들은 웨일스어를 “웨일스 내의 모든 도덕적 발전과 대중의 진보를 가로막는 피해 막심한 장애”라고 공격하고, 웨일스어가 “진실을 왜곡하고, 사기를 조장하고, 거짓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학교에서는 웨일스어를 사용하다가 걸린 학생들에게 “웨일스어 금지”라고 씌어진 나무 패를 달게 했다. 패를 단 아이는 웨일스어를 하다가 들킨 또래 아무에게나 그 패를 넘길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패가 한 아이에서 다른 아이로 전해졌다. 주말이 되면 누가 됐든 패를 가진 사람은 매를 맞았다. “웨일스어 금지” 악습은 대체로 1880년대에 없어졌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20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237쪽)"

 

언어의 입지와 사회의 권력 구도간의 긴밀한 관계를 한 편의 우화처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의 사멸 문제는 결코 제3세게 토착민들의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도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지난 시절,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생태학적∙문화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윤리적인 이유에서도 생물언어적 다양성은 유지되어야 하고 아무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이라 할지라도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결론과 더불어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까지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의 미덕이다. 여러 대안들 중에서 저자들이 가장 중시 하고 있는 것은 집에서 부모나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언어를 전하게 하는 노력을 장려하는 ‘밑으로부터의 전략들’이다.


점박이올빼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서식지, 즉 생존하는 데 필요한 숲을 보호하는 것이 관건인 것처럼, 언어 사멸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언어에 대한 문법 연구나 사전 편찬, 또는 위협에 처한 언어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공식적인 지위 획득을 위한 운동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최소 집단인 가정에서 언어 사용을 장려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3.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엄마·아빠 따라서 열 살 때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와 점차 우리 말과 글을 잃어버리고 있는 딸아이에게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걸로는 미흡한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익히고 연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보다는, 한글로 일기를 써라, 우리말로 된 책도 좀 읽어라 등 그때그때 내 기분에 따라 딸아이에게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은, 우리가 비록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말과 글을 잃지 않고 계속 사용해야 하는 이유부터 딸아이에게 잘 설명해야겠다. 쉽지 않은 그 설명 역시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한글날인 오늘 저녁에 이걸 읽어주어야겠다.

 

"언어는 복장, 행동 양식, 종교나 직업 등 여러 특성들과 더불어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한 언어를 포기하거나 잃게 되면 다른 언어가 곧 대체하겠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차이가 생긴다. 언어는 궁극적인 상징체계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시하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나 경험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큰 부분은 그 문화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가 사라질 때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느낀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대릴 베이브 윌슨은 아주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만 한다." (321∼322쪽)

덧붙이는 글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Vanishing Voices : The Extinction of the World’s Languages) / 다니엘 네틀(Daniel Nettle)∙수잔 로메인(Suzanne Romaine) 지음 /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펴냄 / 2003년 11월 10일 초판 1쇄 / 값 18000원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2003)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소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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