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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을 쓸며 가을을 느낄 수 있다는 멋쟁이 아저씨.
낙엽을 쓸며 가을을 느낄 수 있다는 멋쟁이 아저씨. ⓒ 송유미
 
우리 동네 쌈지 공원의 아침 하늘은 유달리 청명하고, 서서히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 하나 둘 음표처럼 낙엽을 떨군다. 싹싹 빗질하는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소리 나는 방향으로 걷다 보니 하얀 남방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빗질을 하고 계신다.
 
"어머, 아저씨가 왜 낙엽을 쓰세요?"
 
이 바보스런 질문에 아저씨는 대답하신다. "어디 청소부만 낙엽을 쓸라는 법이 있나요?" 싹싹싹 아릿하게 길이 패일 정도로 소리를 내며 낙엽을 쓰는 아저씨의 말에 한 방 얻어맞는다. 
 
 나무들은 내년을 위해 잎을 버려야 한다. 인생 또한 내일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 여정….
나무들은 내년을 위해 잎을 버려야 한다. 인생 또한 내일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 여정…. ⓒ 송유미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거리의 가로수들도 공원의 나무들도 숲 속의 많은 나무들도 가을에는 하나 둘 나뭇잎을 바람에 사정없이 버린다.
 
실제 나무들은 자신의 봄을 위해 여지껏 키워온 나뭇잎을 버린다고 한다. 인생의 가을맞이도 이처럼 많은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은 이런 의미에서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하늘하늘 무너져 내리는 듯 떨어지는 낙엽을 쓰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내 세월의 나무 한 그루에서 한 장 두 장 폐지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한번 떨어진 나뭇잎은 내 인생에서 이미 버려진 것인데 이상하게 묵은 것을 잘 버리지 못하고 자꾸 간직하게 되면서 나는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 막막해지곤 한다.
 
 청소부만 낙엽을 쓰라는 법은 없어요. 싹싹 빗질하는 소리에 깨끗해 지는 마음의 길을 만나는 길목에서.
청소부만 낙엽을 쓰라는 법은 없어요. 싹싹 빗질하는 소리에 깨끗해 지는 마음의 길을 만나는 길목에서. ⓒ 송유미
 
같은 동네 살지만 일면식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동네 아저씨가 청소부처럼 빗자루를 들고 빗질하는 모습이 왜 내 눈에는 신기할까. 쓸어도 또 수북하게 쌓이는 낙엽 때문에 가장 힘든 사람들은 거리의 미화원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적 골목길을 청소해 본 이후 나는 내가 사는 골목길도 빗질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싹싹싹 빗질 하는 아저씨의 낙엽 쓰는 소리는 스님이 싹싹 절 마당을 쓰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저씨는 정말 멋이 있어요" 하고 말했더니 이 멋쟁이 아저씨는 "댁도 그러지 말고 낙엽 한번 쓸어봐요. 내가 왜 빗질을 하는지 잘 알 건데…" 하시며 웃으신다.
 
아저씨의 빗질 소리에 깨끗한 길 하나가 마음 저편에 열리고, 나는 이 가을 수북하게 쌓인 내 마음의 낙엽들을, 싹싹 상쾌한 빗질 소리를 빌려 얌체처럼 빗질하고 있다.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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