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쌈지 공원의 아침 하늘은 유달리 청명하고, 서서히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 하나 둘 음표처럼 낙엽을 떨군다. 싹싹 빗질하는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소리 나는 방향으로 걷다 보니 하얀 남방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빗질을 하고 계신다. "어머, 아저씨가 왜 낙엽을 쓰세요?" 이 바보스런 질문에 아저씨는 대답하신다. "어디 청소부만 낙엽을 쓸라는 법이 있나요?" 싹싹싹 아릿하게 길이 패일 정도로 소리를 내며 낙엽을 쓰는 아저씨의 말에 한 방 얻어맞는다.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거리의 가로수들도 공원의 나무들도 숲 속의 많은 나무들도 가을에는 하나 둘 나뭇잎을 바람에 사정없이 버린다. 실제 나무들은 자신의 봄을 위해 여지껏 키워온 나뭇잎을 버린다고 한다. 인생의 가을맞이도 이처럼 많은 것들을 하나 둘 정리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은 이런 의미에서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하늘하늘 무너져 내리는 듯 떨어지는 낙엽을 쓰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내 세월의 나무 한 그루에서 한 장 두 장 폐지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한번 떨어진 나뭇잎은 내 인생에서 이미 버려진 것인데 이상하게 묵은 것을 잘 버리지 못하고 자꾸 간직하게 되면서 나는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 막막해지곤 한다.
같은 동네 살지만 일면식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동네 아저씨가 청소부처럼 빗자루를 들고 빗질하는 모습이 왜 내 눈에는 신기할까. 쓸어도 또 수북하게 쌓이는 낙엽 때문에 가장 힘든 사람들은 거리의 미화원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적 골목길을 청소해 본 이후 나는 내가 사는 골목길도 빗질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싹싹싹 빗질 하는 아저씨의 낙엽 쓰는 소리는 스님이 싹싹 절 마당을 쓰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저씨는 정말 멋이 있어요" 하고 말했더니 이 멋쟁이 아저씨는 "댁도 그러지 말고 낙엽 한번 쓸어봐요. 내가 왜 빗질을 하는지 잘 알 건데…" 하시며 웃으신다. 아저씨의 빗질 소리에 깨끗한 길 하나가 마음 저편에 열리고, 나는 이 가을 수북하게 쌓인 내 마음의 낙엽들을, 싹싹 상쾌한 빗질 소리를 빌려 얌체처럼 빗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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