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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개폐 시도는 무산됐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 2004년 12월 31일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가 무산된 가운데 마지막 촛불문화제가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단식농성단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2004년 12월 31일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가 무산된 가운데 마지막 촛불문화제가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단식농성단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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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으로 50년이나 발이 묶여있다. 국보법은 사회진보와 역사변화를 가로막기 위한 수구적 통제 장치이다.

반공 기득권층은 국보법을 앞세워 맹목적인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였고 우리 사회를 막연한 두려움과 적대의식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반문명적인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데 국보법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국보법은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의 창의적 사고와 민주적 실천을 억압하는 국보법이라는 족쇄를 차고는 공존공영의 남북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국보법이 유지되는 한 민족통일의 대의를 아무리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구두선에 지나지 않게 된다.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가로막았던 국보법

지난날의 7·4공동 성명과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나무랄 데 없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0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획기적인 이정표가 세워졌음에도 평화체제를 향한 성과가 여전히 미흡한 것은 다름 아닌 국보법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번 2007년 정상회담에서 남북의 두 지도자는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이를 선언하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문' 2항에서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으며, 또 "남과 북은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정비하기로 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란 바로 국보법 등을 말한다. 그동안 분단을 위해 날조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필수적이고 시급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한 장애물을 철폐하지 않고는 민족공동체 건설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사구시적 선언을 한 것이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뿐만이 아니라 정상회담 기간 중의 공식행사를 통해서 이미 분단체제의 관행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남한에 대해 적대적인 북한의 모습, 보수세력이 우리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북한의 모습은 방북과정 어느 순간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내가 발견한 것은 예상 밖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염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한의 군최고통수권자임에도 평양시내의 40여만 인파 속에 온전히 노출된 상태에서도 아무런 위해를 당하지 않고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보다 앞서서는 군사분계선이라는 분단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금단선을 짓밟고 넘나들었다. 그런가 하면 또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김계관 부상으로부터 6자회담 성과에 대한 보고를 김정일위원장과 함께 아예 한자리에서 보고를 받았다. 이는 마치 통일국가의 남북 최고위 대표가 남북연합의 행정을 처리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일만으로 본다면 남북간에는 통일이 이미 다 된 듯 하다. 국보법 같은 시대착오적 제약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수구집단들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기를 쓰고 반대하면서 터무니없이 헐뜯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끝난 냉전체제, 끝나지 않은 국가보안법

 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고 있다.
 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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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1972년에 7·4 공동선언을 통해서도 남북간에 이미 통일의 대원칙에 합의하였다. 만일 그때의 합의정신을 충실하게 실천했더라면 오늘날 한반도 모습은 어떠할까.

또 1992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당연한 원칙들이 상호간에 합의되었다. 곧 제1조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으며, 제2조에서는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그 전문에서는 남북은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서로 다짐'했었다.

이러한 몇 차례의 의미있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들이 끝내 실효성이 없어진 것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국보법이 우리 사회를 야만과 폭력의 암흑으로 옥죄어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반도 사정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세상의 냉전체제는 오래전 붕괴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상태에 멈춰서 있다. 지난날 조선왕조는 봉건이데올로기에 얽매여 15세기 낡은 체제를 고집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다가 끝내는 서세동점의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고 말았다. 그 잘못은 식민지배를 거쳐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참극에 이르기까지 일파만파의 후과를 야기하였다.

근년 들어 겨우 세계사 전환기라는 기회를 맞아 그동안 지체되었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의 업보에서 벗어나고자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남북간의 정상회담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에 반해 기득권세력은 지배력 상실이 두려운 나머지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 진보의 앞길을 결사적으로 막아서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상적인 법과 제도의 목적은 헌법정신을 구현하면서 사회를 합리적이고 발전적으로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저해요소들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보법은 그러한 합목적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진보를 억제하면서 국민들을 제한된 범위 안에 가두어두기 위해 만들어진 족쇄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초헌법적으로 모든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다. 국보법을 통해 우리나라는 반공독재국가로서의 형태를 충실히 갖추게 되었다. 지금의 국보법이 추구하는 것은 냉전시대 반공독재의 부활이며, 노리는 것은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의 말살이며, 수호하려는 것은 공안세력의 파괴적 특권과 기득권세력의 배타적 독점권이다. 기득권층은 사회가 민주화하고 사회의식과 생활 조건이 아무리 바뀌어도 특권을 향한 욕망에 끝이 없어서 보안법을 포기하려는 마음 또한 추호도 없다.

반공독재로 돌아갈 순 없다

어느 사회든 한순간이라도 정체되면 그만큼 역사 흐름에서 뒤처지다가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마침내 낙오하게 된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전개돼왔다. 수많은 문명과 국가들이 끊임없이 명멸해 온 것은 변화과정에서 한순간이라도 자칫 뒤처지다가 끝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의 보수세력은 역사변화에 순응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을 연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사회진보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자신들의 퇴행적 행태를 호도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일시적 착시현상에 따라 위안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외부 세계까지 붙들어 매둘 수는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까마득한 선두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역사의 흐름에서 탈락하는 것이야 자초한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대착오로 나라의 운명까지 나락으로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의 흐름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문제를 지적하고 미진한 점을 들추어 개선책을 강구하면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보법의 폐지는 필수불가결한 과제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진 모처럼의 성과를 통일의 초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또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최우선적 과제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민교협 소속의 안병욱 교수는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남북정상회담 방북길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국보법#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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