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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박---!

괴물은 괴물이었다. 약을 올리면서 슬쩍 도망쳤다가는 몇 번이나 정통으로 가격했는지 모른다. 허나 흑교신은 잠시 주춤거릴 뿐 금방 따라붙었다. 오히려 가격한 팔이나 다리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체를 분시하지 않으면 금방 회복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고 쓰러졌을 법도 한데 흑교신의 공세는 여전했다. 아니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니라는 귀산노인의 말이 맞았다.

더구나 등에 긁힌 상처가 부풀어 오르고 등의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 괴물의 온 몸은 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바로 그 때 설중행의 귀로 전음이 파고들었다.

‘저 놈이 익힌 것은 흑마공(黑魔功)이다.  부시공(腐屍功)과 매우 흡사하지만 더 지독한 사공이다. 저 놈의 몸은 시체나 다름없어....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타격은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 뿐이다. 더구나 자칫 저 자의 공격에 당하면 타격보다는 시독(屍毒)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 지고 움직임이 느려질 수 있으니까 조심해.’

능효봉의 전음이었다. 아무래도 설중행이 걱정되어 따라온 모양인데 그런 데로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다소 안심이 된다는 목소리였다. 다만 저 괴물에 대해 알려주어야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은 노파심에 전음을 보낸 것이다.

흑마공은 남만(南蠻) 쪽의 사공을 익힌 자가 흑마교(黑魔敎)를 세우면서 알려진 무서운 무공이었다. 익히면 온몸의 신경이 뒤틀어져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고 시독을 몸에 가지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팔다리가 잘려도 상대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 무림에서 익히는 것이 금지된 사공(邪功)이었다.

전 무림이 나서 흑마교를 멸문시킨 뒤 그것을 익히는 방법 역시 실전되어 수백 년 이래로 익힌 자가 없었는데 흑교신의 몸에서 나타난 것이다.

‘저 놈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보다는 잔인하더라도 팔 다리나 아니면 목이라도 잘라내는 것이 좋아. 단 주의할 것은 저 놈의 피를 뒤집어쓰거나 하면 시독에 중독될 염려가 있으니까 각별히 주의해.’

설중행은 급히 몸을 두 번씩이나 뒤집어 회전하면서 예리하게 조공(爪功)을 사용하는 흑마신의 공격을 피해냈다. 다른 것보다 되도록 저 자와의 거리를 일정 범위로 유지하는 것이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알겠소. 걱정 마시오.’

흑마신의 공격이 매우 기괴하고 비상식적인 터라 간혹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움직임이 다소 느린 것이 흠이었다. 그것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간혹 예리한 지풍(指風)을 쏘아내기도 했는데 빠른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잘 대처해 왔던 터였다.

‘이제 네 몸은 단지 네 것만이 아니다. 구룡의 후예는 절대 패해서는 안 된다.’

구룡의 후예.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구룡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자부심이라도 가지란 말인가? 어차피 동정오우에 패해 사라진 이름들이다. 이제 와서 그들의 후예라고 동정오우에게 복수라도 해야 할까?

‘알겠소.’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능효봉이 혀끝을 찼다.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이제 간다. 술래가 되기로 했거든… 부지런히 꼭꼭 숨어있는 자들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어?’

“이크…!”

전음에 신경을 쓰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시커먼 손과 날카로운 손톱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칫 얼굴 살점이 뜯겨져 나갈 뻔 했다. 그의 상체가 활처럼 휘며 발로 흑교신의 낭심을 향해 올려 찼다.

흑마신의 몸이 설중행의 오른쪽으로 기울면서 무릎을 구부려 설중행의 공격을 막았다. 발과 발이 마주치자 마치 나무토막이 부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설중행으로서는 정말 나무토막을 차는 느낌이었다.

정말 나무토막이라면 부러지거나 부셔지기라도 하는데 이것은 부서지지 않는 나무토막이었다. 그 순간 생각을 바꾼 설중행이 급히 왼쪽으로 몇 바퀴 회전하며 흑마신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삼사 장 정도 떨어진 거리를 두고 움직임을 멈췄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승부를 봐야 한다.

“어이. 괴물… 이제 몸도 충분히 풀었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크크. 도망만 치는 놈이? 네놈을 발기발기 찢어주겠다…”

“덤벼봐… 도망치지 않을 테니….”

우뚝 선 설중행의 전신에서 핏빛 기류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음을 더 이상 보내지 않는 것을 보니 능효봉은 이미 떠난 모양이었다. 어차피 구룡의 후예라고 경각심을 일깨워준 것은 구룡의 무공을 사용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화산의 장문인 자하진인과의 혈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내공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전과는 달리 회복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크흐흐….”

갑작스럽게 변한 설중행의 모습을 보며 흑교신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설중행의 공격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던 것과는 달리 잠시 주춤하며 설중행을 응시했다.

우두둑…우득….

그리고는 그의 몸을 약간씩 비틀기 시작하자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흑교신의 전신에서 감도는 검은 기류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검은 기류 때문인지, 아니면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로 인하여 그의 몸이 변형되었는지 모르지만 삐쩍 마른 몸에 근육이 붙은 것처럼 부풀려 보였다.

흑교신 역시 이제는 승부를 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그의 전신에 흐르는 검은 기류가 요동치고 있었다. 설중행 역시 최대한 혈룡기를 끌어올렸다. 핏빛 기류에 휩싸여 그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죽인다…!”

흑교신의 신형이 조금 전과 다르게 빠르게 설중행을 향해 쏘아갔다. 마치 둥근 검은 기류가 빠르게 굴러가는 것 같았는데 주위에 거치적거리는 것들이 모두 튕겨나가고 있었다.

“좋아…!”

핏빛 기류 속에서 설중행의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괴성이 울리며 핏빛 기류에 싸인 설중행의 신형도 빠르게 흑교신에게 마주쳐 갔다.

크아악-----

불이 타오르는 듯한 핏빛 기류위로 흐릿하게 혈룡의 형상이 떠도는 것 같았다. 혈룡장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다섯 마리의 혈룡의 형상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또한 이 전에 사용한 두 번의 혈룡기의 운용이나 혈룡장과도 다른 것이어서 한 단계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런 현상은 이제 거의 혈룡기를 자신의 진기와 동화시켰음을 의미했다.

쿠쿵----!

핏빛기류와 검은 기류가 부닥치자 마치 묵직한 바위가 부닥치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공기를 찢을 듯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핏빛기류와 검은 기류가 엉켜들며 장작 패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천지#추리무협#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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