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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전등사에 가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잘 못걸으시니까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전등사에 가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잘 못걸으시니까 어디 놀러 갈 생각도 못했습니다. ⓒ 이승숙

 

어디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를 봤다. 산모롱이를 돌아선 곳 저만치에, 우리 집이 보이는 길가에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신 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직 걷는 데에만 집중하셨는지 지나가는 차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고개를 숙이고 발밑만 보며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뭔가 모를 짠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아버지의 그 모습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안 계실 그 언젠가, 그때 아버지는 그 모습으로 내게 남아서 나를 눈물짓게 할 것 같았다.

 

내게 남을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매일 조금씩 산책을 하신다. 처음에는 집에서 큰길까지 약 100m 정도의 길도 다 걷지 못하셨다. 몇십 미터 걸으시곤 한참 쉬고 또 몇십 미터 걸으시곤 하셨다. 그나마도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서너 번은 산책을 하신다. 큰길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오시기도 한다.

 

어제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아버지께 인사를 하시더란다.


“할아버지는 이 동네 분 아니신 거 같은데, 어디 사세요?”

 

나이가 칠십은 안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더란다. 매일 운동 하시는 것을 봤는데 낯선 분 같아 보여 그런다며 어디 사는지를 물은 것이었다.

 

"저 밑에 까만 기와집에 삽니다."

"아, 김 선생 집에 사세요?"

 

그 아주머니가 우리를 아는 체 하더라며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너거가 김 선생집으로 불리더라. 그러니까 택호가 김 선생집인 거제.”


하시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다.

 

 아버지랑 팔짱을 끼고 걸어가니 사람들이 쳐다봤습니다.
아버지랑 팔짱을 끼고 걸어가니 사람들이 쳐다봤습니다. ⓒ 이승숙

 

해는 져도 다음 날에 또 떠오르지만

 

올해 일흔 아홉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서당을 다니시며 한학을 공부하셨다. 어른이 되어서는 농사를 짓느라 공부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고풍을 지키며 예법에 맞춰 사는 분이시다. 그래서 아버지의 화법(話法)에는 지금 우리 세대들이 잘 쓰지 않는 그런 고풍스런 어휘들이 있다.

 

그 날도 동네 아주머니가 궁금해 하시기에 아버지가 그러셨단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제 둘째 여식 집에 정양차 와 있습니다.”


아버지는 타관에 사는 우리가 동네 사람들에게 잘 보이시길 바라셨나 보다. 그래서 둘째 딸이라고 해도 되는데 일부러 ‘여식’이라고 하셨단다.

 

 또 오고 또 올 가을, 그러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 오고 또 올 가을, 그러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이승숙

 

아버지가 어디쯤 걷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나가봤다. 아버지는 길가의 바위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 저녁노을이 막 깔리기 시작하는 들판 저 너머를 그윽한 눈빛으로 보고 계셨다. 그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아버지!”

 

아버지는 듣지 못하셨는지 그냥 계셨다. 차를 세우며 더 큰 목소리로 불렀다. 가슴이 짠했지만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제야 아버지는 나를 쳐다봤다.

 

앉았던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아버지가 나를 봤다. 마치 낯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고 막막하던 차에 아는 이를 만난 듯 반갑고 기꺼워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집 안에서 보던 아버지랑 밖에서 보는 아버지는 달랐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 동네에서 쓸쓸한 모습으로 천천히 길을 걷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 모습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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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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