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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령의 눈에 들어온 그 칼은 말을 하고 있었다. 

 

‘피, 피를 달라! 사람의 피를 달라! 난 사람의 피를 먹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피를 달라!’

 

김학령은 칼을 잡으려 했으나 죽은 사람은 칼을 손에서 쉽게 놓지 않았다. 김학령은 칼을 잡은 후 죽은 사람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보시게. 난 자네의 한을 풀기위해 나선 사람일세. 내가 이 칼로 자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이 칼을 내게 주게나.”

 

그러자 칼을 부여잡은 시체의 손에서 거짓말같이 힘이 풀렸고 김학령은 칼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허공에 몇 차례 칼을 휘두른 김학령은 그에 만족하며 시체의 허리에서 칼집을 풀러 자신의 허리에 찬 후 강시우를 돌아보았다.

 

“아니 형님, 그게 다 뭐요?”

 

강시우는 질끈 동여맨 가죽 허리띠에 등에 죽창 2개와 창 두개를 꽂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두 자루의 칼을 차고 손에는 화승총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 겨우 둘이서 왜놈 잡으러 가는 데 이 정도 무기는 가지고 가야 하지 않겠냐?”

“그게 보통 무겁소? 그러다 왜놈 잡으러 가기도 전에 쓰러지겠수.”

“어따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자고.”

 

김학령과 강시우는 병사들의 발자국을 쫓아 하염없이 걸어갔다. 결국 도중에 힘이 든 강시우는 화승총과 죽창 두 자루, 창 한 자루를 버리고 가야만 했다. 

 

“야! 이대로 가면 왜놈 뒤를 따라잡기는 하는 거여? 뭘 물어보고 가려고 해도 어떻게 된 게 논일 밭일 하는 사람 하나 안 보이냐?”

 

거의 해가 질 때가 되어가자 강시우는 탄식이 섞인 소리를 외쳐 대었다. 

 

“아 난리가 나서 다들 숨어 지내는 마당에 사람 안 보이는 게 무슨 대수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멀리서 소를 끌고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학령은 부리나케 뛰어 나갔고 강시우는 허리춤에서 내려가 자루가 질질 끌리는 창을 뒤에 매어달고는 넘어질 것만 같은 자세로 뒤쫓아갔다.

 

“야 좀 천천히 가! 아 그놈 어제 총 맞은 게 맞는 놈이야? 거 참….”

 

소를 끌고 가는 이들은 늙은 농부와 그의 아내였다. 농부는 칼을 차고 달려오는 김학령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소리쳤다.

 

“동학이여?”

 

김학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물어보려는 순간 농부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저기 재 너머에 동학들이 잔뜩 모여 왜놈과 한바탕 하려 하던데 왜 여기서 와? 저쪽에도 동학이 있는 거여?”

 

“뭐라? 동학군이 와 있다고?”

 

숨이 턱에까지 와 달려온 강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학령은 농부가 손짓한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봐 아우! 천천히 좀 가자!”

 

강시우는 채 숨을 돌릴 기회도 없어 너털거리는 걸음으로 쫓아가며 소리치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학군이 대패해 후퇴하는 마당에 대치할 힘이나 있을까? 마주치자마자 어떻게든 싸움이 벌어졌을 터인데.’

 

강시우의 예측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얼마가지 않아 김학령과 강시우가 마주친 이들은 부상병들을 부축한 채 후퇴해 오는 수백명의 동학군 행렬이었다.

 

“이보시오. 왜놈들은 어디에 있소?”

 

김학령의 물음에 대부분은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김학령을 똑바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걸 왜 묻소?”

“왜 묻겠소? 왜놈 잡으러 가려는 거지.”

 

김학령의 말에 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크게 외쳤다.

 

“이 사람들 아주 실성을 했구만!”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우금치#동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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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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