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의 기본은 술래가 되는 자와 숨는 자들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다. 술래가 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발각이 되면 그것으로 끝이고, 또한 반대로 술래가 숨은 자를 찾지 못하고 지나치면 또한 술래 역시 끝이다.
술래가 되는 것과 숨는 자가 되는 것의 선택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술래가 되는 것은 쉽지만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듯 술래가 거미줄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숨는 자가 어느 면에서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래가 되기를 자청한 인물은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숨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결국 술래잡기에 있어서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
궁단령은 주위가 너무 조용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상대들도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한두 명만 술래가 되고 나머지는 숨는 쪽이 되기로 작정한 것일까? 일행 중에 능효봉만 술래가 되기로 하여 움직이고 나머지는 거미줄을 완벽히 쳐놓고 기다린 지 벌써 반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걸려드는 자들이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최소한 무당이나 점창의 인물들을 보내거나 교두들이라도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다른 쪽으로 움직였는지 자신들이 덫을 쳐놓은 곳에는 전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교두들은 이곳에 좌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껄끄러워서 이곳을 피하고 있는지 모른다. 더 이상 기다릴까 생각하다가 그녀는 문득 귀비 쪽이 궁금해졌다. 오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은신해 있었던 터라 조그만 움직임이라도 놓칠 리 없겠지만 왠지 귀비 쪽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살피고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몇 번 나무를 옮기기 전에 그녀는 왜 그렇게 본능적으로 자신이 귀비 쪽을 살펴보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했다.....!’
귀비의 형상은 누가 보더라도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목이 처진 채 나무등걸에 매달린 상태였는데 그녀의 목을 감은 것이 매우 가는 은사임을 귀비의 시신 가까이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은사는 반치 쯤 귀비의 목을 파고들어 핏물이 배어나와 마치 피로 목걸이를 한 것 같았다. 반항한 흔적은 없었다. 귀비의 표정 역시 놀란 듯한 그대로여서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인 것 같았다.
“누가....?‘
누군가 이곳에 왔다가 간 인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얼마나 가공할 고수이기에 자신은 물론 십여 장 밖에 있는 좌등과 창월, 그리고 진운청의 이목의 숨길 수 있었을까?
‘혹시 위충현의 신발이라는 이신 중 매교신이었을까?’
그녀는 소리 내지 않고 주위의 냄새를 맡았다. 매교신이 왔다갔다면 암향부동의 매화향기가 맡아질 터였다. 허나 귀비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매화향기는 맡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 사실을 좌등에게 알려야 하나..... 아니면 은밀히 내가 움직여야 하나...?‘
그녀는 망설였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허리가 뜨끔하더니 온몸이 굳어버렸다. 동시에 아혈(啞穴)까지 제압당하면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게 되었는데 사실 아혈을 제압당하지 않았더라도 소리를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허억----!’
가는 은사가 자신의 목을 감고 위로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나무 위로 끌어올려졌는데 이어 은사의 느낌이 아니라 굵은 팔뚝이 그녀의 가녀린 목을 세차게 감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허공에 뜬 채 덜렁거리며 더욱 위로 끌어올려졌다.
마혈을 제압당해 버둥거리지도 못하는 처지였고, 너무나 급작스럽게 당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아직도 살아있는 뇌리 속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자는 매교신이 아니었다. 벌써 후각이야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자신의 목을 조르는 팔뚝은 여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렇듯 허무하게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당한다는 것이 억울했다. 아무리 귀비가 당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목을 피할 자는 없을 것이라고 과신한 치명적인 결과였다.
누군가? 누구인가? 숨결이 목에 느껴질 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도 조금 지나자 그녀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목을 조르면 당연히 기도가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숨을 참으려고 미리 폐에 가득 공기를 채워도 얼마 가지 않아 공기를 들여 마셔야 살 수 있다. 허나 질식하기 전에 목뼈가 부러진다면 더욱 빠르게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득.....
너무나 조용히 목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삼합회의 회주이자 절대고수라고 인정받았던 궁단령의 최후로서는 너무나 허무한 것이었다. 그녀의 몸은 은사에 목이 감긴 채 귀비와 마찬가지로 나무둥치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화했다.
그리고 아직도 목을 매단 채 덜렁거리는 궁단령의 시신 위의 나뭇가지에서는 알 수 없는 신형 하나가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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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게 무슨 짓인가?”
중의가 놀람에 찬 어조로 부르짖었다. 아주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술을 따르려는 듯 약간 상체를 숙였던 성곤이 중의가 술잔을 들고 상체를 자신 쪽으로 숙이며 다가들자 갑자기 지풍을 날리며 가슴에 있는 혈도 세 군데를 순식간에 제압했던 것이다.
뿐이랴! 그는 운중의 등을 타고 뒤로 빙글 회전하면서 재차 중의의 옆구리와 등허리 쪽 혈도 역시 두 군데나 확실히 제압하고는 엉거주춤 들고 있는 중의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앉게....!”
성곤은 술을 다 따르고 나서 엉거주춤하며 굳어있는 중의를 의자에 편안하게 앉혔다. 그러한 성곤의 음성은 전과 마찬가지로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었고, 어찌 보면 몸이 불편한 친구를 성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자네가 한 짓과 똑같은 일이고, 나는 지금 자네만큼 더 잔인해 질 수 있네.”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 내용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말이었다.
“멈추시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추교학이 벌떡 일어나 외치며 성곤에게 달려들려 하였다. 허나 성곤이 어찌할 필요도 없이 이미 장문위가 거의 추교학과 동시에 일어나 추교학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부친임을 알게 되었고, 부친이 당하는 바에야 아들인 자신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터.
“비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부득이 손을 쓰겠소.”
처음으로 대사형에게 노기 띤 음성으로 대들어 보는 상황이었다. 이상하게도 추교학으로서는 둘째인 옥기룡의 경우에는 경쟁자로 생각하고 불쾌한 표정과 언동을 보인 적이 있었지만 대사형인 장문위에게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던 터였다.
“사부님이 계시는 자리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