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을 발표했다. 파병 연장 논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2003년 자이툰부대를 파병할 당시 여러 가지를 고려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었다. 북핵문제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한미공조의 유지가 긴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한미관계를 재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긴밀한 한미공조가 필요했다. 지난 4년간 이들 문제가 진전된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선택은 현실에 부합한 적절한 것이었다.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도, 해묵은 안보 현안들을 거의 다 풀어올 수 있었던 것도 굳건한 한미공조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노 대통령 담화문 중에서) 우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난 2003년부터 나왔던 말이다. 그러나 실제 이라크 파병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 적은 없다. 지난 2004년 2월 3600여명 규모로 자이툰 부대가 창설됐다. 그러나 조지 부시 정부는 "북한과는 대화 할 수 없다"며 대북 압박을 계속했고 결국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2006년 10월 핵실험까지 갔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핵 실험을 한 뒤 더 이상 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또 한가지 요인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 실패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이라크 파병이 별로 효과가 없어서 부시가 대북 정책을 바꾼 것이다. 되레 노 대통령이야말로 북한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하자 포용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가 DJ가 강력하게 반발하니까 말을 번복하는 등 왔다갔다 했다. 북핵 문제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전략적 문제'인데, 겨우 3000여명의 한국군 파병이라는 '전술적 문제'와 맞바꿀리는 없다. 노 대통령의 23일 담화를 듣다보면 마치 자이툰 부대 파병 때문에 9·19 공동성명이나 2·13 합의가 나온 것 같다. 이라크 파병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면 청와대는 화끈하게 한 10만명 파병해서 북미 수교까지 바로 받아내지 쩨쩨하게 1200명 있던 자이툰 부대를 600명으로 줄인단 말인가? 화끈하게 10만명 보내지 쩨쩨하게 600명?
전시작전권 전환이나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자이툰 부대 파병을 연계시키는 것도 별 근거가 없다. 이 문제들은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기지 재배치 차원(GPR)에서 지난 2002년 부터 계획해서 실행했던 것이다. 더구나 주한미군 재배치에서 한국은 100억달러가 넘는 비용을 전액 부담했고,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했다. 미국이 원하는대로 다 해줬는데 무슨 한미간에 진지한 토론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긴밀한 한미공조가 필요했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 속보인다. 경제적 효과 문제로 들어가면 정부의 '뻥'은 너무나 세다. 이제까지 이라크 파병 비용은 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파병으로 석유자원 확보 등 경제적 효과를 들먹이던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한 꿀먹은 벙어리가 된 지 오래다. 대신 병력 한 명 보내지 않았던 터키나 중동 국가들, 그리고 독일과 중국 등이 이라크 특수를 누리고 있다. 지난 2003년 11월 이라크에서 송전탑 공사를 하던 오무전기 직원 2명이 게릴라들에게 피살당하고, 이어 2004년 6월 김선일씨가 피살당한 뒤 한국인들의 입국을 우리 정부는 최대한 막았다. 올해 초 이라크 관련 토론회에서 기자가 "수억달러의 파병 비용을 쓰고도 경제적 효과는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더니 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반전 단체들이 문제 삼아서 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전 단체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파병하더니 경제적 과실을 챙기지 못한 탓이 반전 단체들 때문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또 다시 파병 연장 논리를 만드는 한 경제적 효과는 기대하지 어렵다. 사실 청와대의 뻔한 논리에 반론을 펴는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수용소 발언이나 주한미군 재배치·전략적유연성·한미 FTA 논쟁 등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청와대나 관료들의 '습관성 친미 증후군'에는 특효약이 없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이른바 정동영 민주 신당 후보나 장외 주자인 문국현 후보가 파병 연장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오늘 <중앙일보> 1면 톱 기사는 '신당 청와대 자이툰 파병 연장 반대 왜, 이념 대결 구도 겨냥 미국 이슈 쟁점화'다. 대치 전선을 선명하게 함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선거 전략이란다. 23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파병 연장에 찬성했다. 이라크 파병 연장에 관한한 한나라당이 노무현과 한 배를 탔고, 이른바 범 여권은 딴 배에 탑승했다. 이라크 파병 연장 자체가 그렇게 폭발력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일단 흥미있는 구도다.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50%가 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이명박 대 정동영 또는 문국현 구도여서가 아니라 이명박 대 노무현 구도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한나라당은 앞으로 범여권 최종 주자가 누가 되든지 '노무현의 아류'라고 몰아붙일 것이다. 단지 파병 연장 문제 뿐아니라 한미FTA 등 다른 사안에서도 노무현의 진짜 아류가 누구인지 논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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