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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풀무생협·보건의료노조·전교조·학교급식네트워크 등이 모인 '푸른연대'와 환경농업단체연합회와 함께 우리 먹을거리의 현실을 짚어보고 현재 판로가 막혀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기농업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특별기획을 진행해왔습니다. 이 글은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는 글로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가 보내왔습니다. 그간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우리의 밥상은 정말 평화로운가. 밥상평화 시리즈를 꼼꼼히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하루 세끼 내내 밥상에서 편안히 밥을 먹지 못하고 불편한 식사를 하도록 만들고야 말았다. 단지 우리의 밥상이 농약과 독성물질로 오염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만은 아니었다. 거대 곡물 공룡인 카길의 뻔뻔스럽고도 피묻은 이빨이 선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놓는 인터뷰를 들어서만도 아니었다.

 

불편함과 불안의 근원은 명백했다. 에너지 고갈과 식량위기는 필연인데, 정치 지도자들과 이른바 여론 주도층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다가올 위기에 대해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들은 다가오고 있는 엄청난 쓰나미 경보를 들을 수 있고 우리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밥상은 풍요로운가

 

 

밥상평화를 문닫는 시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우리는 배부르게 지금의 풍요로운 식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북한의 굶주림과 아사 사태를 아주 멀고도 먼 남의 나라 얘기로 흘려듣고 만다. 공산주의는 그렇게 인민을 굶겨 죽게 만드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이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굶주려 죽는 것은 필연이라는 이상한 극우논리까지 판을 치고 횡행하고 있다. 그러니 자본주의 산업화에 성공한 모범 사례의 남한에서 태어나 풍요를 누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사설이 꼭 따라 붙어서 말이다.

 

한국 극우세력들의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는 사실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쿠바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북한과 마찬가지로 구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에너지 수입 중단이라는 사태에 직면한 쿠바 또한 극심한 식량위기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쿠바는 도시농업을 비롯하여 전사회가 유기농으로 전환,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는 식량 자급자족의 사회로 변화에 성공하고 말았다. 게다가 덧붙여 북한과 미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의료수준과 무상의료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씨크>를 보면 아주 생생하게 그 실상을 알게 될 것이다. 어찌 됐든 북한과 쿠바는 정치 지도력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온통 정권교체란 낱말만 난무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는 온갖 기기묘묘한 부정이 있어도, 구린내 풍기는 비리재산이 너무나 많아도, 정책같지도 않은 정책에 게다가 도처에 문제가 많아도, 기독교 광신도같은 발언에 여성비하의 별 해괴망측한 발언을 해도, 무조건 지지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하나님에게 정권을 봉헌하겠노라는 말을 태연히 하고도 전혀 지지율에 문제가 없는 형편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노 정권이 좌파?

 

사람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규정짓기도 한다. 그리고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넘게 반공을 국시로 온사회가 새빨간 정신병동 사회였던 남한의 ‘퇴원증후군’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은 없을 듯 싶다. 아마도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하면 부시정권이야말로 골수 좌파정권이고 유럽 여러 나라의 정권은 극좌파 정권 정도 될 것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거의 미친 극 세제곱 좌파 정권쯤 되려나.

 

대선에서 정책이고 뭐고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50% 이상이고 무조건 정권을 갈아보자라는 대중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권이 좌파라서가 결코 아니다. 노정권의 무능에 대해서, 그리고 이른바 민주화 10년에 대해서 일반 민중들은 실망감을 넘어서 절망감과 함께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만 민주화고 말만 좌파였지 노정권이 일반 민중들 삶의 향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삼성재벌의 뒷배를 봐준 재벌정권이었고, 가진 자들을 위해 부동산가격 폭등을 불러일으킨 토건정권이었고 미국을 위한 식민지정권이었다.

 

노정권 들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은 거의 2백만이나 더 늘어났고 자살자수도 늘어나 하루 36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공화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민주화라면 차라리 민주주의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파시즘 선택의 심리가 일반 민중들에게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의 이런 경향이야말로 그야말로 성장중독자들의 금단현상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자본주의 산업화에 성공한 석유문명의 사회이다. 그동안 끝없는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사회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를 누리는 사회로 변신했다.

 

한국에서 월 100만원을 버는 가정은 분명 비정규직에 차상위 빈곤계층에 들어간다. 그러나 월 100만원은 북한과 동남아 노동자들의 2년치 연봉 액수와 맞먹는다. 그리고 이 차상위 빈곤가정의 소비생활은 동서양의 어는 제왕보다도 더 풍요롭다.

 

제3세계 민중들을 착취한 결과

 

네로가 겨울에 수박을 먹지는 못했을 것이며, 세종대왕이 여름에 에어콘 나오는 가마를 타고 행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옷이며 먹을 것이고 세간살이고 넘치고 넘쳐 제대로 쓰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는 우리들 자신의 생활습관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같은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풍요는 제3세계 민중들의 피와 지구의 피인 석유 값싼 석유를 착취한 결과이다.

 

이런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석유문명은 당연히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석유정점(오일피크, Peak Oil)이 머지 않았고, 다른 천연자원의 정점도 머지 않았다. 때문에 당연히 한국사회의 지금과 같은 풍요도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대량소비를 다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장중독증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도 경제성장을 해야 못사는사람이 잘살게 되고 일자리도 많아지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목공사, 건설공사가 도대체 얼마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과연 공장이 생기면 비정규직이 얼마나 줄어들고 노동자 임금이 얼마나 오르는지 따져보면 경제성장이 일반민중의 삶을 나아지게 하리라는 주장의 허구는 금방 드러나고 말 것이다.

 

석유정점이 한국경제에 쓰나미같은 충격을 주리라는 것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유독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이른바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이를 잘 모른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어련히 알아서 새로운 멋진 신세계를 열어줄 텐데 뭘 걱정이냐고 태연하게 답한다. 이들 과학기술 맹종자들은 석기시대가 돌멩이가 없어서 끝난 게 아니라는 논리를 들이댄다.

 

원래 전문가들의 전문 학술용어란 일반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직업과 돈벌이를 지키려고 하는 비열한 자들의 편리한 도구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의 글은 의미도 없는 수학공식으로 변질되어 아까운 종이만 낭비한 지 오래이다.

 

게다가 오늘날 정치인들이란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정치란 중우정치라고 굳게 믿는 선동정치인들이고 선거 때 들었던 비용을 빼내기 위해 협잡질에 혈안이 된 사기꾼들인지라 다음 선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에너지나 식량같은 미래의 핵심 의제는 눈조차 돌리지 않는다. 
 
녹색혁명이란?

 

그런데 만약 남한에 그런 식량부족 사태가 닥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이건 소설이 아니다. 남한에도 그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은 너무나 많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이미 말했듯이 지금의 녹색혁명은 석유에너지를 투입한 녹색혁명이며 석유에너지가 투입되지 않으면 식량생산은 줄어들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제 곡물 시장이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여기에 바이오에너지가 식량을 먹어대는 것도 일조를 한다.

 

오늘날 에너지 고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석유공급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지적하고 있는 석유생산의 문제는 석유 전문가들의 논쟁에서 벗어나 전세계 지식인들의 논쟁점이 되고 있다. 더구나 기후변화는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식량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저기 멀리서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는 쓰나미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을 믿지 못한다면 일반 시민들 스스로 나서서 쓰나미를 막아줄 바닷가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고 미리미리 언덕으로 집을 옮기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 가운데 하나가 유기농 직거래이다. 식량과 에너지 위기에 대한 준비 가운데, 지역자치와 자립의무 농업, 석유가 투입되지 않는 유기농, 지역순환의 직거래가 하나의 대안이다.

 

밥상평화가 하고자 시도했던 일도 그런 대안의 일단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에너지 식량위기를 감지하는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의 대선 의제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미 정책이고 뭐고 대선 의제가 무엇인지조차 실종된 지금의 상황은 부동산 정권인 노무현 정권이 만든 최악의 작품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꼭 한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석유문명 속도에 브레이크를 달자

 

오히려 역설이지만 노정권은 민중들을 실망하고 깨어나게 하는 각성제를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성장중독증의 연장선상에 있다하더라도 민주화에 절망하고 정권을 갈아보자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변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밥상평화는 그러한 각성과 희망의 한 자락을 공유하는 자전거 통신사의 역할을 했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자화자찬일까. 사실 이제부터 밥상평화의 유기농 직거래는 시작이다. 그리하여 자전거로 소식을 전한 밥상평화의 메시지는 언젠가 한반도 여기저기 지역 순환의 공동체들이 흐드러진 진달래처럼 만발하면서 석유문명의 속도를 꼭 자전거 속도만큼의 사회로 감속시키는 브레이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밥상평화#에너지위기#석유문명#박승옥#식량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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