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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즉위식을 마친 세종이 통과했던 문이다. 사진은 자료 사진으로 현재는 콘크리트 문을 헐어내고 복원 공사 중에 있다.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하다.
광화문.즉위식을 마친 세종이 통과했던 문이다. 사진은 자료 사진으로 현재는 콘크리트 문을 헐어내고 복원 공사 중에 있다.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하다. ⓒ 이정근

세자가 강사포(絳紗袍)에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근정전에 나아가 즉위교서를 반포했다. 세종 시대의 개막 선언이다. 근정전 앞뜰에 도열한 문무백관을 대표하여 영의정 한상경이 전(箋)을 올려 진하(陳賀)했다. 즉위식을 마친 세종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부왕이 있는 창덕궁으로 거둥했다.

면복을 입고 근정전 서쪽 섬돌로 내려온 세종이 지통례(知通禮)의 안내를 받아 어가에 올랐다. 두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병조에서 준비한 대가(大駕)와 노부(鹵簿-의장)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타(吹打)가 소리를 뿜어내고 상서관이 어보(御寶)를 받들어 앞으로 나아갔다. 광화문을 빠져나온 행차가 황토현에서 동쪽으로 꺾었다.

육조거리를 지날 때는 썰렁하던 거리가 운종가를 지날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새 임금을 구경하기 위하여 도성의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경하했다. 종루를 지날 때는 의금부 옥을 지키던 옥졸들도 구경나왔다. 모반대역 죄인과 부모를 때리거나 죽인 죄인, 그리고 처첩이 남편을 죽인 죄인을 제외하고 사면되어 옥(獄)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신각. 운종가에 있던 종루. 태종 당시의 종루는 전란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종각은 1980년 복원한 것이다.
보신각.운종가에 있던 종루. 태종 당시의 종루는 전란으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종각은 1980년 복원한 것이다. ⓒ 이정근

새 임금의 어가행렬이 창덕궁에 도착했다. 문관은 동쪽에 서고 무관은 서쪽에 섰다. 종2품 이하 품위들은 겹줄로 도열했다. 판통례가 임금을 인도하여 인정문을 통과했다. 욕위(褥位)에 이르러 북향으로 섰다. 거기에 태종이 있었다. 인정전에 좌정한 태종이 세종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배요.”
판통례가 사배(四拜)를 청했다. 세종이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네 번 절을 올렸다.

“관원 사배요.”
통찬의 구령에 따라 문무백관이 사배했다. 배례가 끝나자 세종이 전(箋)을 올려 읽어 내려갔다.

“성군의 대명(大命)을 이 몸에 내리시니 신자(臣子)된 심정으로 놀랍고 두려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는 마땅치 않사오며 중난한 짐을 어찌 감당하오리까? 신은 성품과 자질이 어리석고 학문이 천박하여 정사에 어두우니 어찌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잔약한 이 몸으로 외람되이 큰 자리에 임하게 하시오니 감히 나라를 초창하실 때에 어려움과 편안히 쉬실 겨를이 없으셨던 일을 우러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임이 중난하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힘쓰겠나이다.” <세종실록>

인정전. 즉위식을 마친 세종이 부왕을 배알했던 창덕궁 인정전이다.
인정전.즉위식을 마친 세종이 부왕을 배알했던 창덕궁 인정전이다. ⓒ 이정근

태종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세종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잘한 선택이라 자위했다. 충녕의 머리 위에 익선관을 씌워주기 위하여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보냈던가. 지나온 일이 그림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쌍륙은 이제 던져졌다. 확률은 입이분지 일이지만 말을 놓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형에게 곤룡포를 입혀주었던 아우, 자신의 머리 위에 스스로 익선관을 썼던 이방원, 아들의 머리 위에 원유관을 씌워준 아버지. 정종, 태종, 세종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왕을 만들어 낸 사나이. 조선왕국 518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고 있는 태종 이방원. 그의 공과는 후대의 몫이다.

“장의동 본궁(本宮)으로 돌아가서 창덕궁의 역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라.”

새 임금이 즉위했지만 거처할 궁이 없었다. 경복궁은 무인혁명 이후 임금이 거처하지 않아 관리가 부실했다. 긴급 보수하여 근정전에서 즉위식은 거행했지만 임금이 거처할 상태는 아니었다. 창덕궁에는 태종이 있다. 세종이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태종은 자신이 거처할 궁궐을 창덕궁 동쪽에 짓고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본궁에 임시로 기거하라는 것이다. 세종의 하례를 받은 인정전도 공사를 중단하고 의식장소로 사용했다. 전(殿)이 얕고 작으며 마당과 월랑이 좁다하여 크고 웅장하게 개축하라 명하여 공사 중이었다. 본궁은 태종이 즉위하기 전 잠저였으며 세종이 태어난 곳이다.

장의동 본궁으로 돌아온 세종이 지신사 이명덕을 불렀다.

“부왕의 존호(尊號)를 태상왕(太上王)으로 올리고 대언 세 사람으로 공상(供上)을 보살피게 하였으면 합니다.”

이명덕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태종은 반대했다.

“상왕을 태상왕으로 하고 나를 상왕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겸덕(謙德)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천륜(天倫)의 차서(次序)이다. 주상이 나에게 효도하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나의 말대로 따라야 한다. 또 주상이 대언 세 사람으로 하여금 내 옆에서 시중들게 하려고 하나 이것은 나라에 두 임금이 있는 것이니 옳지 않다.”

본궁에서 회의가 열렸다.

“상왕이 비록 먼저 즉위하였으나 부왕의 공덕이 깊고 중한데 하물며 주상께서 왕위를 부왕에게서 받은 경우이겠습니까? 마땅히 가까운(親)데에서부터 먼(疎) 데에 미쳐야 하니 부왕을 높여 태상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상왕은 그대로 상왕이 되는 것입니다.”

유정현·박은·이원·박습·조말생이 태상왕론에 찬성했다.

“즉위한 선후(先後)로써 논하여야 하며 공덕(功德)으로 논할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상왕을 높여 태상왕으로 하고 부왕을 상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변계량·정역·탁신·이적·이지강·한상덕·원숙 등이 상왕론을 펼쳤다. 세종 위에 태종 있고 또 그 위에 정종이 있으니 이거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호칭에서도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니 수많은 예우와 절차가 따를 터인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인덕궁(仁德宮)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인덕궁에는 정종이 살고 있었다.

“태상(太上)이란 두 글자는 내가 감당할 바가 못 되며 실로 지나침이 있다.”
당사자 정종이 반대하고 나섰다.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론을 내야 한다.

“부왕을 상왕으로 하고 상왕을 태상왕으로 한다.”

세종이 임금으로서 최초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이어 모후를 대비라 하고 경빈을 비(妃)로 봉했다. 또한 왕비의 아버지 심온을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으로 삼고 심온의 처 안씨를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으로 삼았다. 청천부원군이 죽음의 덫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태종이 지신사 이명덕을 불렀다. 지신사는 양전(兩殿)을 오가며 두 임금을 모시느라 바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

“경은 지신사(知申事)가 된 지 한 달이 넘지 않았으나 내가 이미 왕위를 내어 놓았으니 경도 역시 벼슬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주상이 일찍이 이수(李隨)에게 배웠으니 지금 비록 직위가 낮다 하더라도 대언(代言) 벼슬을 줄 만하니 모두 특진 발령하도록 하라.”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이명덕의 손에는 세자의 사빈을 지냈던 박은, 이원, 유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이명덕을 이조참판으로, 이명덕이 수행하던 지신사 자리에 하연(河演)을, 이수(李隨)를 동부대언으로 하라는 태종의 휘지(徽旨)가 들려있었다.

세종이 하연을 불렀다.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과 우의정 그리고 이조·병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

“상왕께서 일찍이 경덕궁에서 정승 조준, 상서사제조(尙瑞司提調)와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셨사온데 이제 전하께서 처음으로 정치를 행하심에 있어 대신과 함께 의논하심은 매우 마땅하옵니다.”

세종은 허지를 대사헌(大司憲)으로 허조를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 박광연을 경상도 수군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로, 정수홍을 우사간(右司諫)으로, 박관을 사헌집의(司憲執義)로, 정기를 사헌지평(司憲持平)으로 임명했다. 세종이 행한 최초의 인사이동이었다. 이로써 세종 조를 이끌어갈 진용이 짜여졌다.


#익선관#원유관#곤룡포#강사포#지통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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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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