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다시 '87년' 얘기가 떠돈다.
정치권에선 이회창의 등장으로 보수가 분열하자, 87년 대선 구도와 연결 짓는 시각이 나온다. 민주화 세력의 정권교체론이 양김 분열로 노태우 후보에게 어부지리로 넘어가면서 군부세력의 재집권으로 이어졌던 20년 전을 떠올리는 것이다. 보수의 분열로 '진보의 노태우'가 탄생할 것이란 낙관어린 전망이다. 주로 정동영 캠프의 시각이다. '저쪽이 분열했으니 우리는 합치자'는 단일화를 위한 논리다.
다른 한편에선, 때마침 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은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사망 사건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실제 두 시간대를 정의구현사제단이 잇고 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정의구현사제단은 최근 삼성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 로비 사건을 폭로하면서 '자본독재'와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이 감격스런 해에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간 민주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우리는 오늘 그때의 열정을 다시 살려 제2의 민주주의 운동 곧 경제민주주의 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10월 29일 기자회견문)
이미 두 번이나 국민의 심판을 받은 구정치권력 이회창의 귀환과 한 번도 도전받지 않은 최고의 경제권력 삼성이 시민사회의 저항에 직면한 2007년 대선. 그것의 의미는 87년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87년의 전두환과 2007년의 삼성
정치권에서 민주노동당이 삼성 비자금 사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을 '공공의 적'이라 규정했다. 87년 공공의 적은 전두환 독재정권이었다. 20년 전 전두환은 지금의 삼성일까? 또 전두환의 군부 사조직 '하나회'가 오늘날 삼성의 로비를 받은 '삼성장학생'으로 등치되는 것은 적절할까?
정의구현사제단의 홈페이지에는 신부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요한씨는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제1민주화투쟁이었다면 이번 투쟁은 독재금권에 대한 제2민주화투쟁"이라며 "이번 사제단의 금권독재에 대한 투쟁은 정권에 대한 투쟁보다도 어쩌면 힘겨울지 모른다"고 썼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삼성비자금특검 도입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디어다음(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3550)에 이같은 청원이슈를 제안한 아이디 '바람혼'의 글이다.
"과거의 민주화 투쟁은 바리케이드 너머에 적이 보였고 그것을 향해 짱돌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투쟁의 적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또한 우리 내부에 있다. 투명성과 기업윤리, 사회적 책임을 말하긴 쉽지만 우리 자신 또한 경제활동을 하면서 실천하기는 힘들며 혼자 실천할 수는 있어도 타인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더 어렵다. 정의구현사제단이 경제민주화운동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한 때 바리케이드 이편에 있던 사람들조차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상황은 달라졌다. '반독재' '전두환 타도'를 외쳤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피아가 선명치 않다. 윤상철(한신대 사회학) 교수는 "전두환은 개인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의 삼성은 중산층 이상과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요약되는 삼성 이데올로기는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의 성공이 우리 국민 모두의 성공이라는 착시현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20년 전 군부 권력이 민주화 항쟁으로 시민에게 갔다면, 시장권력은 재벌로 귀속되었다. 조돈문(민교협 상임의장) 교수는 "87년을 기점으로 정치권력은 민주화 되었지만 이후 국가권력이 이동(교체)한다는 것의 효과와 의미는 훨씬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국가의 비전을 자본이 주도하고 국가는 시장을 지원하는 체제로 흘러왔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 얘기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다.
2004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향한 열망의 좌절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가 발표한 논문 '1단계 민주화의 종결'(민주사회정책연구원 2007년 상반기)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화 이후 체제는 민주주의의 확대를 지향하는 힘 보다 현상유지 혹은 시장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선호하는 힘의 우위로 전환되었다. IMF 이전부터다.
"김대중 정부 시기를 거쳐서도 시장 권력은 제어되지 못했다.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병행발전'의 성격이 처음에는 다소 모호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적 원리의 하위체계로 통합하고자 했던 정책이상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 실질적인 시장 권력 우위체제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특히 박 대표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소액 후원자들의 '희망돼지저금통' 모금액(7억6천만원) 보다 4배가 되는 30억의 돈을 한 측근을 통해 삼성에게 받은 점, 집권 이후엔 삼성이 생산한 국정보고서를 채택하고, 공무원들을 삼성에 보내 교육연수를 받게 하고, 진대제 삼성전자 부사장의 장관 임명,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주미대사 임명 등을 거론하며 "삼성과의 동맹 관계"를 비판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삼성이 발 빠르게 민주화 이후에 대비했다면, 선출된 권력인 정치는 그렇지 못했다.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정당이 그 바통을 이어받지 못했다.
4번의 대선과 5번의 총선을 치르면서 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특히 민주화 세력은 정당 영역에서 다수를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김영삼의 3당 합당, 김대중의 DJP연합, 노무현의 정몽준 단일화 등 공학적 원리로 정권을 획득했다. 박 대표의 지적처럼 "정당의 역할을 했던 것은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였을 뿐, 현실에서도 정당은 정부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기능하지 못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정책위원장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과반의석 획득, 민주노동당의 첫 원내진출에 대해 "책임정치로 요약되는 근대적 정당의 출현을 요구하는 대중의 열망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실험은 실패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검증 대상이 됐다.
윤상철 교수는 '한국시민사회의 우경화'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보수정치세력은 경제성장, 박정희 긍정의 국민의식 성향을 이명박을 매개로 살려나갔다. 반면, 개혁세력은 내부적인 정치적 통합력을 높이고 정치적 리더십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경제성장주의를 복지와 분배의 정치와 결합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20년 동안 누적된 경제적 요구가 '경제성장' 담론으로 수용되면서 이명박 쏠림 현상을 낳았고, 기존정당에 대한 불신은 이회창과 문국현의 등장을 불렀다. 과거로의 퇴행적 귀결과 미래 대안을 향한 몸부림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대선의 풍경이다.
다시 '거리의 정치'에 기웃하는 정당대중은 다시 '거리의 정치'에 흔쾌히 나서줄까? 당면한 삼성 비자금 이슈가 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보수 양자 대결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난 범여권 주자들은 '반부패'를 고리로 정치권 바깥 세력과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권영길 후보 오는 11일 예정된 '100만 민중대회'의 핵심 의제에 삼성비자금 사건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크다. 조돈문 교수는 "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정성 보다 빠져나가는 표를 막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정의구현사제단은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하면서 말미에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실제 참여연대는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반부패 범국민운동본부 구성을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다. '범국민고발운동'을 벌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치권 바깥의 사정도 달라졌다. 87년 항쟁의 주체세력이었던 노동운동, 학생운동, 재야.지식인 등 이미 과거의 위상이 아니다. 네티즌밖에 없다? 하지만 타오르는 분위기는 아니다.
윤상철 교수는 "삼성 문제가 호소력은 있지만 '민주 대 반민주'에 비해 정치적 진보성이 선명하지 않다"며 "삼성에 대한 이해집단은 '물반 기름반'으로 넓게 퍼져 있다"고 지적한다. 박상훈 대표는 "이회창 대통령이나 삼성 봐주기로 끝나는 최악의 상태는 막겠지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고 응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예상했다.
2007 대선 '그 이후'를 준비하자는 저간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