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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실에서 하는 행동과 말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집에서와는 다른 모습들이 참 낯설었지요. 우리 집 아이조차 그 낯선 모습을 하고 있어 놀라기도 했고요. 입에는 모두들 가시를 달고 있는 듯 거칠면서 험한 말이고, 이유 없이 다른 아이를 놀리고 때리기도 하고요. 왜 이중생활을 하느냐며 슬쩍 지나가듯이 아이들에게 말 했지만, 학부모인 저는 아이들 그 모습의 원인을 찾느라고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현명한 대처방법을 찾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책 속에서 그런 아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발견했을 땐 보물을 찾은 듯이 기뻤어요. 상담소나 누군가에게 아이 키우는 속상함을 털어놓지 않았어도, 많은 위로와 자식을 잘 키우고,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는 힘을 얻었거든요. 그 기쁨으로 모처럼 동네 구립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책 속에 푹 빠질 수도 있었지요.

 

인생의 지혜가 담긴 책. 그 책이 바로 <채근담>이에요.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많지만 그 중 두껍지 않고 많은 해설이 달려있지 않은 조성하가 옮긴 소담출판사 책이지요. 중국 명나라 말엽 홍자성의 수상집인데 정작 지은이에 대한 기록은 없대요. 단지 홍자성의 친구인 우공겸이 쓴 <채근담>의 서문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에요.

 

이 책은 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이루어진 287쪽의 책이에요. 그 중 전집 205장에 이런 글이 있어요.

 

'가득 찬 곳에 있는 사람은 물이 넘치려다가 아직 넘치지 않은 것과 같아서 다시 한 방울이 더해지는 것도 꺼리고,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나무가 꺾이려다가 아직 꺾이지 않은 것과 같아서 살짝만 눌러도 싫어한다.'

 

조성하 씨는 위 내용을 이렇게 옮겨 놓았어요.

 

'부귀가 넘치는 사람은 그릇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아서 한 방울이라도 더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또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나무가 휘어져 꺾어질 듯한 상태와 같아서 살짝 누르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너무 가득한 자리나 위험한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 아이가 공부하는 교실 분위기의 산만함과 아이들의 공격성이 어디서 비롯되었나 했더니, 바로 '나무가 꺾어질 듯한 위급한 상태'라서 그런가 봐요. 아이들뿐인가요? 때론 저 조차도 스스로 감정 조절을 못 해서 심하게 화를 낼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어른들은 스스로 알아서 군자가 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어찌할까요? 그런 상황과 자리를 피하거나 선택할 수 없거든요.

 

욕 쟁이, 짜증 쟁이, 잘난 척 쟁이, 수업방해 쟁이(자기는 100점 맞으면서), 폭력 쟁이, 거짓말 쟁이, 놀림 쟁이... 예쁘고 사랑스럽기도 한 초등학생들이지만, 이런 장점만 가득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담임선생님은 매일 거의 초죽음상태로 힘들어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래도 그 녀석들 선생님 복은 있어서 1학기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어요.

 

매일 야단맞을 짓들만 골라 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할까요? 엄마 목소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 버리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먼저 반응을 하니 문제지요. 아이를 꾸짖거나 타인의 잘못을 지적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 전집 23장에 나와 있어요.

 

'남의 잘못을 너무 엄하게 공격하지 마라. 그가 그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을 선(善)으로 가르치되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써 하지마라. 그가 능히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너무 엄하게 공격 하지 말고, 어떻게 잘못을 제대로 올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지요? 전집 96장에 그 방법이 나와 있어요.

 

'집안 식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버럭 성내지도 말고 가볍게 내 버려두지도 마라. 곧이곧대로 말하기 곤란하거든 다른 일을 빌어 넌지시 일깨워 주고, 오늘 깨닫지 못하면 내일을 기다려 다시 일깨워 주되, 봄바람이 얼어붙은 것을 녹이듯 하고 따사로운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하라. 이곳이 곧 가정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요즘 세상이 즉각적인 반응을 주고받는 시대라 부모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에 상처 받는 것은 시대를 떠나 사람이면 모두 비슷할 거예요. 엄마가 남자로 살아 본 적이 없는지라, 남자아이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많아요. 특히 친구들 사이를 보아도 그래요. 전집 39장은 어쩐지 장롱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규중의 처녀라는 부분) 요즘 제겐 정말이지 딱 맞는 내용이에요. 읽으면서 부모로서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어요.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규중의 처녀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출입을 엄하게 하고 친구 사귐을 삼가도록 해야 한다. 한 번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이는 곧 깨끗한 논밭에 잡초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으니 한 평생 좋은 곡식을 심기가 어려울 것이다.'

 

친구 관계를 잘 살펴보면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싸우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잘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친구를 따돌리는 문제라든가, 친구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문제라든가, 폭력을 당하는 문제와 폭력행위를 하는 문제가 함께 섞여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부모와 선생님의 충고를 듣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요? 전집 5장을 읽어봐요.

 

'귀에는 항상 거슬리는 말만 들리고 마음속에서 항상 어긋나는 일만 일어나면, 이야말로 덕을 쌓고 행실을 닦는 숫돌이 될 것이다. 만일 들리는 말마다 귀를 즐겁게 해 준다면, 이야말로 자기 몸을 매어 짐새의 독(毒) 속에 파묻는 일이 될 것이다. (짐새: 그림자가 지나간 음식만 먹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무서운 독이 있는 새를 말한다.)'

 

짐새의 독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들어 있지만, 그만큼 잘못된 친구관계와 몸과 마음을 망가지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의 무서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해야 하겠죠. 인터넷 속 용어들의 거침과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니, 초등학생이라도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슬프지요.

 

내용이 너무 심오한 책보다도, 평범한 사람이 감히 따라하지 못할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책보다도,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보다도, 때론 이렇게 마음으로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채근담>이 참 좋아요. 21세기에도 중요한 인생 지침서. 동양의 <팡세>를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채근담/홍자성지음/조성하옮김/소담출판사/값5000원


채근담

홍자성 지음, 조성하 옮김, 소담출판사(2003)


#채근담#소담출판사#홍자성#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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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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