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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저지 정선, 동해, 삼척의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서울로 가지 못하고 정선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한미 FTA 저지 정선, 동해, 삼척의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서울로 가지 못하고 정선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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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멀다지만 오늘처럼 먼 길도 없었다.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범국민 행동의 날' 백만 민중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정선을 비롯해 동해, 삼척 지역의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서울로 향하다 결국 경찰의 저지에 막히고 말았다.

우린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왜 우리가 죄인인가?

이른 아침 각 지역에서 모여든 대회 참가자들은 강원도 정선군 광하리에서 경찰의 첫 저지선에 막혔다. 안개 자욱한 산촌의 길은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했다. 새벽 시간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향하던 대회 참가자들의 앞 길을 막아선 것은 농민의 아들이기도, 노동자의 아들이기도 한 이 나라의 경찰.

서울에서 예정된 백만 민중대회가 불법 집회로 규정되면서 서울로 향하는 전국의 길은 경찰의 저지선이 쳐져 있었다. 강원 중남부와 영동권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경찰은 길목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서울로 향하는 대회 참가자들의 길을 막았다.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고 나온 농촌의 가장도 경찰의 저지로 서울행을 접어야 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오전 10시를 넘겨 각자의 차를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정선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인 평창에 버스를 준비 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정선에서 평창으로 갈 때만 해도 서울로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평창에 준비해 놓은 버스로 갈아탄 이들은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직전 경찰에 의해 또 다시 길이 막혔다.

서울로 가는 길목에 집결해있던 경찰은 이들의 버스를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새말 IC를 코 앞에 두고 길이 막히자 대회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서울로 가려던 참가자들의 길목이 막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는 정부에서 시키는대로 살아온 농민이다. 왜 우리가 죄인인가? 우리는 아직까지 불법을 저지른 적 없다. 그러니 우릴 보내달라! 지금 우리가 취하고 행동은 합법이다! 우리의 길을 막지 마라!"

참가자들과 경찰과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분노한 농민의 한탄과 욕설이 건너갔다. 대회 참가자의 분신 소식도 들려왔다. 길은 더욱 막혔다. 새벽 시간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국을 먹고 길을 나섰다는 정선군 농민회 이대호 사무국장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끓어 오르는 분노를 떨치지 못했다.  

"아이에게, 아내에게 농민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노라 약속하고 떠나온 길입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나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남편과 아비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못나서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이 나라의 남편과 아비들을 무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찰과 대치하던 참가자들은 오후 2시가 넘자 결국 발길을 돌려 정선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집을 떠난지 10시간 만이었다. 오후 4시 경 정선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정선군 농협 앞에서 '한미 FTA 저지, 집회 불허한 노무현 정부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미FTA 협상은 신 식민지 협상 농민들이 농사만 짓고 살 수 없는 나라,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다.
▲ 한미FTA 협상은 신 식민지 협상 농민들이 농사만 짓고 살 수 없는 나라,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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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이들의 얼굴은 추위로 얼어 붙어 있었다. 차디 찬 도로에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 주는 인심은 이 땅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애초 대한민국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 농민 민중의 생존권을 위한 대회를 '불법 집회'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노무현 정부의 명쾌한 치적이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농민들, 하루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 수십 번씩 해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표방 할 때만 해도 이 정부가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삶을 대변해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 전에 깨지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한 술 더 떠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목을 죄었다. 그러한 상황이 증명된 이 땅에서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서울에서의 투쟁 속보가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시간, 어둠은 깊어지고 정선을 비롯한 동해 삼척의 노동자 농민, 민중들은 정선군 농협 앞에서 마루리 집회를 가진 후 해산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회 참가자들의 가슴은 검게 타들어 갔으며, 정부를 향한 비난의 소리 또한 더욱 커졌다. 마무리 집회를 끝내고 모두가 돌아가는 자리, 한 아주머니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힘겨운 삶을 누가 압니까? 하루라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 십번씩 하면서도 죽지 못하는 것은 우리 손자들에게는 이런 꼴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못내 잊혀지지 않는 저녁 시간, 서울에서는 경찰에 곤봉과 방패에 찍혀 부상당한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민중대회 휴일 농협은 문이 닫혔고 경찰의 저지로 서울행이 좌절된 대회 참가자들이 정선군 농협 앞에서 한미FTA 저지 대회를 열었다.
▲ 민중대회 휴일 농협은 문이 닫혔고 경찰의 저지로 서울행이 좌절된 대회 참가자들이 정선군 농협 앞에서 한미FTA 저지 대회를 열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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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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