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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여왕의 다리'라는 뜻의 동네 이름에 걸맞게 로마네스크식 다리가 남아있다.
▲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여왕의 다리'라는 뜻의 동네 이름에 걸맞게 로마네스크식 다리가 남아있다.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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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복음 7장 17-20절>

2007년 6월 27일 수요일, 순례 5일째, 총 25km. 새벽 6시 반 출발, 오후 2시 도착.

번잡하지 않은 조용한 숙소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웬일, 밤새 시간마다 깼다. 시시각각 울리는 종을 세면서 어제 길에서 만난 검정고양이, 그 작은 애가 너무 생각이 나서 '걔를 데리러 가야 되나'이런 망상을 하고 있었다. 생각만큼 편한 밤은 아니었나보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작은 휴대용 랜턴의 불빛이 퍼져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짐을 추스르고 길 나설 준비를 했다. 숙소를 나서는데 위 아래로 나뉜 대문의 아랫부분이 닫혀있어서 가방을 내던지고 월문(?)까지 했다.

한 시간을 걷자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가 나타났다. 아마도 친구들은 이 숙소에서 어제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지?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적막한 마을에는 순례자 몇몇만 드문드문 스쳐간다. 이 마을의 유명한 다리 앞에 서서 '여기구나~'하며 숨 한 번 돌리고, 다리를 걸어가는데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 지나간다. 팜플로나에서 나에게 'Broken English'를 설파하던 A의 일행이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길을 이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푹신한 침대, 밀밭을 만나다

점점 발목이 아파왔고 걷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짓말 같은 풍경, 만나는 사람들,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내 멋대로 이름붙인 불꽃놀이 꽃과 왕관 꽃과 달걀 꽃, 밭에서 피는 보라색 장미들, 끝없이 이어진 황금밀밭-정말 어린왕자의 머리칼!- 우아한 백마가 초원을 거닐고 또 비가 그을 것 같다가도 쨍쨍해지는 하늘, 시원한 바람,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포도밭!

포도밭이었다. 칼같이 열 지어 늘어선 밭은 자연과 인간이 만든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반대편으로는 샛노란 밀밭이 밑동만 남은 채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밀밭에서 한 여인네가 대자로 누워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나를 앞서 걸어가던 이였다. 범상치 않은 기다란 나무지팡이의 밑 부분에 그녀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가 정성스레 새겨져 있어,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도 그녀의 이름을 먼저 알 수 있었다.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누워 있는 밀밭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푹신한 침대처럼 보였다. 나는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사진 찍어줄까요?"
"고마워요. 근데 난 이렇게 혼자서 찍는 걸 좋아해서."
"아, 나도 알아요. 우리나라에선 그걸 셀프 카메라라고 부르죠! 당신도 셀카를 좋아하는군요."


나는 그녀와 함께 걸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이름은 J, 브라질에서 영양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었다. 그녀의 등짐에는 십자가와 일곱 색 무지개가 아름답게 수놓인 휘장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자기네 동네의 상징이란다. 이목구비만큼 걸음걸이도 시원시원한 언니였다.

내 과거의 시간들과 길이 맞물리는 순간

아름드리 나무가 손짓하는 곳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외롭기만 하다
▲ 아름드리 나무가 손짓하는 곳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외롭기만 하다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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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앙증맞은 노란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 한 명을 만났다. 숙소에서 스치듯 얼굴을 본 기억이 있는 그는 P였다. 그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살짝 처진 눈이 참 선해 보였다. 아시아 한국에서 온 나, 남아메리카 브라질의 J, 유럽의 폴란드인 P,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세 사람은 하나의 길 위에서 만나 함께 걷기 시작했다.

J가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 근처의 '에우나테 성당(Iglesia Santa María de Eunate)'에서 자신이 겪은 영적 체험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기도를 하러 들른 그 성당에서 처음 만난 순례자들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와, 정말 순례에 맞는 체험을 했구나! 나도 그런 경험 꼭 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 성당이 있는 줄도 몰랐어.' 그러자 P가 넌지시 일러주었다.

"맞아. 성당에선 강한 영적 기운을 느낄 수 있지. 돔의 한 가운데에 서 있으면,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하며 갑자기 멈춘 채 추가 흔들리듯 몸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사 가운데 일어서는 때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몸이 흔들리는 그 느낌,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폴란드 사람이야. 그리고 지금은 망명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여행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망명이요?"

"응. 폴란드가 공산국가였잖아. 내가 젊었을 땐 망명하는 게 참 힘든 일이었어.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날 받아주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어. 그들의 답을 기다리며 몇 년씩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날 받아주었어."

"그거 북한이랑 되게 비슷하네요? 북한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중국으로도 가고 한국으로도 오고 그러는데."
"맞아. 같은 이치지."

P는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으로 오스트리아에 와서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언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존하기 위해 낯선 땅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의 순례에 결정적인 지침이 된 이야기가 있었다.

"네가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한 그 순간, 넌 다시 태어난 거야.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면서, 매일매일 너의 과거를 다시 살게 되는 거지.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너의 하루를 비춰볼 수 있을 거야."

멍하니 좋다고 걷고만 있던 길이, 나의 과거의 시간들과 강하게 맞물린 순간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순례자의 모습을 보다

그림 같은 포도밭을 따라 걷다보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P는 카메라에 넣을 건전지를 사러 가게로 향했고 J는 요거트를 먹기 위해 낮은 담벼락에 폴짝 올라앉았다. 나는 쉬지 않고 계속 걷고 싶었지만 어쩔 줄을 모르고 가게 앞에서 멈췄다. 그 때 골목에서 팜플로나를 함께 걸어왔던 C를 만났다. 며칠만이지?

"와, 반가워. 잘 지냈지?"
"응. 나 한국친구들 봤는데. 너 물어보더라."
"그래? 난 못 본 지 꽤 됐는데…."

그녀는 다른 스페인 여성들과 일행이 되어 걷고 있었다. '올라!'하고 인사를 건네자 한 아주머니가 간식으로 먹고 있던 미니 도너츠 한 조각을 건넨다. 난처한 얼굴로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하며 하나를 받았다.

나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새하얀 설탕가루가 다닥다닥 붙은 작은 과자조각 하나를 들고 봉지에 든 도너츠를 나눠먹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이 물품이 생산된 배경과 그 과정, 이 과자가 그의 몸에 들어가 작용하게 될 과정과 얼마나 살이 찔 것'이며 등등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니, 뭘 하고 있는 거지?

"잘 먹겠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향료 맛이 나는 과자를 입안 가득 물고, 나는 그녀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화려한 조각을 새긴 입구가 인상적인 성당, 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길을 이어나갔다. 내 걸음이 퍽 느려서인지, 혹은 그들의 속도가 빠른 편인지 모르겠지만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P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J,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문득,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연초록 포도밭 사이를 지나며 긴 지팡이를 어깨에 둘러맨 채 걷는 J의 뒷모습에서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길을 걷는 한 순례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순례 내내 기억에 깊게 남아 있었다.

참깨빵 피망고추 고추장소스 샌드위치

나무 아래의 휴식 작은 그늘조각도 소중한 길 위의 휴식처에서 차 한 잔.
▲ 나무 아래의 휴식 작은 그늘조각도 소중한 길 위의 휴식처에서 차 한 잔.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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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그이들로부터 뒤떨어져 혼자 걷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가방 속에 짐처럼 무게를 더하고 있는 먹을거리들도 해치울 겸,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면 쉴 생각이었다. 곧 마을이 나타났고, 그네며 놀이기구들과 샘이 있는 작은 공원이 나왔다. 이미 순례자들 일행이 벤치에 짐을 풀고 간식을 먹고 있었고, 어떤 이는 맨발로 샘이 흐르며 만들어진 물가에 발을 담그며 '좋다~'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벤치에 가방을 풀었다.

이틀 전부터 드문드문 만나왔던 한국인 어머님께서 고추를 사서 고추장에 찍어 드셨다는 이야기에 군침이 돌아, 어제 마을에서 피망만큼 거대한 고추를 하나 사 넣었다. 그리고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아침에 갓 나온 따끈따끈한 참깨빵을 샀다. 한국에서부터 함께였던 고추장은 그동안 깊이 숨겨두었다가, 어젯밤 꺼내기 쉽게 가방 위쪽에 준비해놓았었다. 빵을 손으로 뜯어 그 위에 고추장을 척척 바르고 아무리 봐도 피망인 고추를 뜯어 얹었다.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이 매운 맛!' 참깨빵 피망고추 고추장소스 샌드위치와 사과 한 개, 이 날의 점심이었다.

다시 길 위에 올라, 그늘 하나 없는 누런 흙길을 걸어갔다. 저 멀리 황량한 들판에 우뚝 선 커다란 나무가 '솨아~ 솨아~' 소리를 내며 잎사귀를 흔들고 있었다. 저 나무 아래에서 쉬면 참 좋겠다! 그런데 이미 발 빠른 순례자가 좋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장의 엽서 같았다. 속으로는 '에이, 아쉽네…, 그게 나였으면'하는 가운데, 나무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다름아닌 C였다.

"여기서 쉬고 있었구나."
"응. 점심 먹는 중이야. 너도 좀 먹을래?"
"방금 먹었거든. 고마워. 저 멀리서 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말 그림 같았어. 아름답더라!"

그녀는 빙긋 웃었다. 숙소에서 보자고 인사를 건네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달콤한 휴식을 갖는 그녀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경험은 달랐다

오후 2시 즈음 '에스테야(Estella)'에 도착했다. 그리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옆방에서 이틀간 만나지 못했던 한국인 Y언니와 일본인 S씨를 만났다! 내가 팜플로나에 묵었던 날 숙소를 찾지 못하시고 그대로 도시를 지나쳐 5km를 더 가서 시주르 메노르에서 묵으셨단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같이 걸으며 밥도 해 먹었단다. 그래서 친해지셨나 보다. 조금 부러워졌다.

"여기 한국사람 또 있어!"
"또요?! 우와, 한국 사람들 진짜 많네요~."
"그러게. 자기랑 이름도 비슷하고 같은 또래던데, 어제 아파서 여기서 하루 더 쉬었대. 같이 밥해 먹자! 우리는 그동안 같이 많이 해먹었는데, 밥 먹고 싶지?"

오늘의 보금자리 순례의 상징 조개가 걸린 순례자 숙소의 간판
▲ 오늘의 보금자리 순례의 상징 조개가 걸린 순례자 숙소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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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씨는 침대 위에서 양쪽 발에 새빨간 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 사이 물집이 잡혀 고생하셨단다. 피투성이 같은 발을 보고 기겁을 한 나에게 "그냥 빨간약이야. 이제 괜찮아"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웃 침대의 스페인 아저씨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요상한 것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투명 플라스틱 상자에 든 동그랗게 말린 튀긴 과자 같은 것은 한눈에 봐도 의심(?)스러웠다. 아저씨는 먼저 한 개를 집어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맛있어!'하고 몸소 안전함을 알려주셨다. '이게 뭘까요?', '글쎄, 과자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걸 진짜 좋아하더라고. 먹어보면 맛있던데. 먹어보자.' 우리들은 각자 하나씩 과자를 들고 맛을 보았다. 아마도 돼지고기 튀김 같다. 나름 고소하니 괜찮았다.

"전부 한국?"
"아뇨, 우리 둘만 한국, 여기는 일본!"
"그렇구나~. 비엔, 비엔(좋아, 좋아)!"

언니들은 그동안 이 아저씨가 이것저것 많이 주려고 하고, 많이 챙겨줘서 참 고마웠다고 한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애초에 얘기를 할 생각을 않았는데,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내 경험과 언니들의 경험은 또 다르구나.

초여름 밤에 펼쳐진 삼계탕 가든파티

곧 언니에게 소개받았던 또 다른 한국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J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J씨가 문득 우리에게 오늘 저녁으로는 삼계탕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순례하며 만난 언니가 해 준 것인데, 그 언니는 함께 걸으며 모든 요리를 직접 해주고, 재주도 많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어느 날에는 숙소에서 비빔밥을 만들어 그 숙소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고, 삼계탕 만드는 법도 그녀에게 배웠다고 했다. 한국과 1만km 떨어진 곳에서 삼계탕이라, 오래간만의 한국음식이 아주 기대되었다.

우리들은 함께 길을 나서 우체국에 들르고 소소한 일을 치르고, 마을을 둘러보고 상점에 들이닥쳐 요것저것 잔뜩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 한 켠 순례자들의 빨래가 주욱 널려 있는 작은 마당에 있던 테이블을 꺼내 멋들어진 음식 한 상을 차려놓았다. 물 컵에 와인을 따라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건배하고, 삼계탕을 나누었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또 다른 한국 사람이 방금 도착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를 식탁에 초대했다. G언니가 숙소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 처음으로 만난 한국 가톨릭 순례자였다. 별로 대접할 것이 없어서 죄송했는데도 언니는 흔쾌히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는 다음날 함께 출발할 것을 약속하며 초여름 밤의 가든파티를 마쳤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한국말로 수다를 떨어 즐거웠다.

비노의 힘은 역시 강력했다. 그 날도 잘 잤다.


#산티아고가는길#스페인#성지순례#도보여행#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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