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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케둥가(Tikhedungga 1540m)에서 고레파니(Ghorepani 2860m)까지

 

경로 / 티케둥가(Tikhedungga 1540)-울레리(Ulleri 1960)-반단티(Ban Thanti 2210)-낭게단티(Nangge Thanti 2430)-고레파니(Ghorepani 2860)-푼힐(Poon Hill 3193)-고레파니(Ghorepani 2860)

 

10월 21일. 새벽 4시. 저절로 눈이 떠진다. 지금 한국시각은 오전 7시가 넘었을 거다. 여긴 아직 깜깜하다. 좀 더 눈을 붙여보려 했으나 실패. 차라리 날 밝을 때까지 책(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읽기로 한다.

 

나는 여기 올 때 3권의 책을 가져왔다. 달라이 라마의 <용서>, 류시화 시인이 역은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지금 배낭에 들어 있다. 헤드랜턴이 매우 유용하다. 간밤에 침낭 속 발 밑에 뜨거운 물이 든 물통을 넣어두었는데, 아직 미지근하다.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울레리까지의 오르막길이 눈앞을 턱 막는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차다.
계란 프라이와 밀크티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운다. 고레파니까지 가서 기력이 남는다면 오늘 바로 푼힐에 올라 일몰을 보고 싶다. 물론 내일 푼힐에서 일출도 감상할 계획이다.


오전 8시. 티케둥가의 찬드라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먼, 고레파니까지 얼마나 걸릴까?”
“한 8시간 정도 걸어야 될 거야. 반단티에서 점심을 먹자.”

 

내가 버리지 못하고 지고 있는 짐은 어쩌면 '집착'일지도

 

오전 11시 45분. 밀림지대를 지나면서 찌아(차) 한 잔을 마신다. 걸으면 덥고 쉬면 추워진다. 얼른 고어텍스 재킷을 걸친다. 언제 나타났는지 한 무리의 포터들이 자신들 덩치의 두 배는 족히 됨직한 짐을 내려놓고 서로 웃으며 떠들고 있다. 내 포터 ‘프리티’도 어느새 이들과 어울려 예의 그 환한 웃음을 날린다.


그런 프리티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한다.


‘지금 프리티가 메고 있는 내 배낭 속의 짐들 중 정말 여기서 필요한 게 얼마나 될까?’

 

 

정말 필요한 건 거의 없는 듯하다. 빨래비누는 왜 가져왔으며, 알카라인 건전지는 또 왜 그렇게 많이 넣었을까. 한국에서 짐을 쌀 때 나름대로는 꽤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지금 배낭 안의 짐 중 반 정도는 없어도 될 것들이다.

‘나는 여기 이 짐들처럼, 또 무엇을 그렇게 버리지 못하고 집착해오고 있을까.’

 

여기서 난 4명의 한국 아가씨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 달 일정으로 인도 여행을 하다가 네팔로 건너왔다고 한다. 나이는 27~30까지. 각자 사는 곳도 달라서 둘은 경기도 수원과 용인, 다른 둘은 경남 마산과 진주가 집이다. 푼힐까지 3박 4일 정도 트레킹을 한단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이들과 함께 고레파니에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씩씩한 우리의 한국 아가씨들

 

12시 30분 낭게단티(Nangge Thanti 2430)에서 점심을 먹는다. 원래는 반단티(Ban Thanti 2210)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으나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다. 포테이토와 콜라를 주문한다. 식당 이름이 재미있다. ‘헝그리 아이(Hungry Eye)’.

 

여기서 나는 또 한 명의 한국 여성을 만났다. 그는 가이드 한 명과 함께 60리터 정도의 큰 배낭을 직접 메고 꼬마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예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네요. 혼자 오셨어요?”
“예, 가이드 포터와 함께…….”

 

나는 직접 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그를 보면서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 역시 그 부분이 궁금했던지 나에게 물어본다.


“가이드와 포터를 다 고용하셨어요? 안 그래도 될 텐데……. 저도 직접 이렇게 배낭을 메고 가는데요.”


“예 그렇군요. 저도 처음에는 한 명만 고용할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그는 내 가이드와 포터 피에 그들의 숙식비가 포함돼 있느냐고 걱정스레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요. 그건 당연히 계약할 때 얘기된 부분이에요.”

 

네팔 고아들을 돌보는 한국 여성을 만나다

 

이 여성이 데리고 온 아이는 막 5살이 된 여자아이였다.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 나는 그와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그가 지금 네팔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6년 전 네팔에 들어왔으며 우리나라 나이로 38. 아직 미혼인 그는 지금 네팔 카트만두에서 7명의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즉, 쉽게 말해서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였다.

 


“네팔은 성차별이 아주 심해요.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여자예요.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7명도 모두 여자랍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성차별이 심한 편이죠.”

 

지금은 방학 때라 나머지 6명의 아이들은 그들의 다른 친척 집으로 가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오늘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이 아이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자신과 함께 트레킹에 나서게 된 거란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거기서 헤어졌다. 내가 먼저 롯지를 떠났고, 그가 곧 우리 뒤를 따라 올랐을 거다.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는데, 어차피 고레파니에서 만날 거라 내일 그의 이름을 물어보리라 생각한다.

 


점심식사 후 1시 반쯤 낭게단티를 출발한 나는 3시 반쯤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날씨가 많이 흐리고 안개가 가득하다. 일단 투쿠체피크뷰 롯지에 짐을 푼다. 아무래도 날이 너무 흐리다.

 

푼힐에서 일몰을 보고 싶었는데...

 

“먼, 날씨가 너무 안 좋다. 지금 푼힐에 올라가면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거야.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서.”
“그렇겠지? 그래도 일단 한 번 가보고 싶다.”
“어려운 일은 아니야. 푼힐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릴 거야. 지금 올라가면 돼.”
“그래 일단 가보자. 일몰을 못 봐도 할 수 없지 뭐.”


오후 4시. 약간 지치긴 했지만 오늘 푼힐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이내 무리한 오기를 부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한다. 생각보다 가파른 산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고집한 걸음, 헥헥거리며 꾸역꾸역 오를 수밖에…….


이윽고, 저 앞에 푼힐 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때가 오후 4시 50분. 50분만에 오른 거다. 그러니 힘들지…….

 

하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잘 들어맞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사방은 온통 안개로 자욱하다. 일몰은커녕 10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위에 잠시 올라가 본 후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내려가는 길은 당연히 너무 쉬워서 숙소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샤워를 한 후 저녁을 먹고 있는데 창 밖이 시끄럽다. 비가 쏟아진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아주 잠깐 동안 땅을 때리듯 쏟아졌다.


“오늘 밤에 이렇게 비가 왔으니 내일을 아주 날씨가 좋을거야. 일출을 볼 수 있을 거야.”


일몰을 보지 못한 나를 위로하려는 건지 먼이 희망적인 말을 한다. 그러나 먼의 이 말은 나를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먼의 이 예언은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던 거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일생일대의 가장 황홀한 일출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다사인 축제기간인 건 알지? 오늘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우리 네팔인들끼리 모여 롯지 밖에서 댄스파티를 할 거야. 구경해도 좋아.”
“알았어. 구경해 볼게. 댄스파티 갈 때 데려가 줘.”

 

*** 여행 메모 ***


1) 티케둥가에서 고레파니까지 점심시간 포함 7시간 30분 소요. 고레파니에서 푼힐전망대까지는 50분.


2) 아침+점심+저녁+방값+차 값=900루피 정도.

 

아침은 가볍게(계란프라이+밀크티) 점심과 저녁은 밥 종류로(달밧 혹은 볶음밥), 운행 중간에 쉬면서 차 한 잔 씩. 고레파니부터는 감기예방차원에서 생강차를 많이 마셨다.


3) 다사인축제: 다사인축제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여기 네팔 최대의 축제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기간에 학교는 15일 정도, 일반 회사도 5일 정도 쉰다고 한다. 다사인 축제 기간 중 9째 날에는 신에게 양이나 닭과 같은 짐승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행사가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온 탓인지 이날 계획됐던 이들의 댄스파티는 무산되었고, ‘먼’은 그 바람에 잔뜩 풀이 죽어버렸다.

 

그러나 락시 두 잔에 얼굴이 발그래해진 먼과 프리티는 무산된 댄스파티의 한풀이를 기어이 여기 롯지 안에서 하고야 만다.


내일 나는 푼힐에 한 번 더 오른다. 아주 일찌감치 새벽 4시 30분 쯤 푼힐전망대에 오를 생각이다.


‘내일은 날씨가 좋으려나?’

 

 

 


#네팔#안나푸르나#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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