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장애인의 천사 '헬렌켈러'의 말이다.
비록 몸은 힘겨워 불행할지 모르나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이가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고,말을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경남농아인협회 양산시지부 지부장을 맡은 김창섭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창섭 지부장은 기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기자는 김창섭씨의 수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통역자의 도움으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지난 4월 경남농아인협회 양산시지부장으로 취임한 김창섭씨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지닌 농아인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양산에 거주하고 있는 청각언어장애인들만 800여명에 달한다.
그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복지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자신과 그리고 그들과의 약속이다.
"원래 지부장을 맡을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농아인들을 위해 발 벗고 뛰어주실 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나서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자 이번에 지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부장이라는 큰 임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믿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무거운 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제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갈수록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들을 잘 보살펴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또 하나는 농아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취업을 하기가 몇 배나 힘듭니다. 농아인들에게 취업 자리를 알선해주고 도와주는 것이 제가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그는 농아인들을 위한 복지관이 생겼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가지고 있다.
아직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좀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행복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장애는 어떻게 찾아왔는지 넌지시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단지 몸이 불편한 것뿐인데 그것이 방해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은 늘 걱정을 안고 사셨습니다. 청각장애인인 자식이 험한 세상을 이겨내고 살아 갈 수 있을지 혹여나 해를 입는 건 아닌지 가슴을 졸이면서 말이죠."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며 꼭 장애를 이겨내고 잘 살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더 큰 상처가 되었다고.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모든 사람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 장애인을 대해주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남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작은 바람 하나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더군요."
청각언어장애인으로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혼자 눈물을 삼키는 일도 적지 않았다.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일이 허다했고,무시와 편견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그 꼬리표는 여전히 붙어 있었죠. 장애인이 돈을 번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월급도 아주 적은데다 다른 사람들처럼 직업을 자유로이 가질 수 없는 것이 장애인들의 현실입니다."
건청인들과 다를 게 하나 없다고 말하는 김창섭 지부장은 그들과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의 언어수단이 '수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건청인들과의 만남은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부분도 자주 만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수화를 조금씩 익혀 간다거나 굳이 수화가 아니라도 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김창섭 지부장은 일반인들도 수화를 배우고 사용하는 일에 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의사소통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결정적인 요소이니 건청인도 간단한 수화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으면 농아인들과 의사소통의 장벽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는 큰 욕심이 없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그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 대신 똑같은 사람처럼 대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지난 8월에는 수화노래 거리공연을 가졌고 지난달 22일에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잔치인 양산 사랑의 수어예술제가 양산초등학교 강당에서 청각․언어장애인과 그 가족 및 자원봉사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경남농아인협회 양산시지부 창립 제10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농아장애인 복지증진 유공 표창, 감사패 등을 수여했으며, 2부 행사에는 수어동아리 10개팀이 수어로 표현하는 연극과 노래자랑 등 수어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김창섭 지부장은 이날 행사를 통해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장애-비장애인 사이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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