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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죽령임을 알리는 표석
 백두대간 죽령임을 알리는 표석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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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으로도 2000년 역사를 가진 곳

689m 죽령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단양 땅이, 동쪽으로 영주 땅이 보인다. 죽령은 북쪽의 연화봉과 남쪽의 도솔봉 사이에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으로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길목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 죽령이 처음 열렸다(開竹嶺). 이것이 죽령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죽령을 열었다는 것은 죽령을 개척했다는 뜻이다. 이때쯤 신라가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세력을 확장하여 그 치세가 소백산 자락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길이란 정말 소로 길에 불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고개를 넘을 일이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령 옛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다.
 죽령 옛길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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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지역 죽령 옛길은 마을과 도로 그리고 논과 밭으로 인해 옛날의 멋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동쪽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지역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죽령 옛길 탐방은 죽령 고개 정상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희방사 역 앞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죽령의 죽자가 대나무 죽(竹)자 맞아?

우리는 희방사 역 앞에 이르러 차를 놓고는 죽령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이곳에서 철길을 왼쪽으로 끼고 시맥골 쪽으로 오르면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소백산 찾아가는 길’ 지도와 ‘죽령 옛길 안내’라는 두 개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죽령 옛길 안내판
 죽령 옛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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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옛길 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장장 2천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 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이 길은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로 행객이 끊겨 수십 년 숲덩쿨에 묻혀 있었던 바,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는 뜻에서 이 길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 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개 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다”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동국여지승람>을 찾아  보니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다. 죽죽(竹竹)은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인물로 신라 말 선덕왕 때 사람이다. 그는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이다. 다른 죽죽이 또 있는지 모르지만 죽령을 죽죽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스토리텔링이다.

진정한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다

 소백산 국립공원 자연관찰로 안내판
 소백산 국립공원 자연관찰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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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약 5분쯤 가면 ‘소백산 국립공원 자연관찰로’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것은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세운 것으로 소백산 등산객들을 위한 표지판이다. 자연관찰로, 이름만 다를 뿐 이 길이 바로 죽령 옛길이다. 문화재청에서 명승으로 예고한 공식 명칭이 죽령 옛길이고,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소백산 자연관찰로이다.

안내판 맞은편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장승이 있어 옛길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이곳에서부터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스토리텔링과 만나게 된다. 그 중 첫 번째가 ‘명인(名人)의 자취’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주세붕과 이현보 이야기이다.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사람이고 이현보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관리로 ‘어부가’ 등 가사문학으로 유명하다.

 주세붕 초상화
 주세붕 초상화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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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보 초상화
 이현보 초상화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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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豊基) 군수 주세붕이 낙향(落鄕)길의 이현보 마중

중종(中宗) 37년(서기 1542년) 7월 풍기 군수 주세붕이 나귀에 술을 싣고 죽령에 와서, 예안(안동 禮安)으로 귀향(歸鄕)하는 선배 이현보(호 聲巖)를 마중했다.

명현(名賢) 이현보는 연달아 사직(辭職)을 간절히 원했으나 임금의 극진한 만류(挽留)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형조참판(刑曹參判)을 거쳐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73세 되는 이 해에 드디어 병을 핑계로 낙향하는 길이었다.

높은 학식과 행덕(行德)으로 사림(士林)의 우러름을 모은 이들은 30여년 선후배였으며 뜻을 같이 하는 특별한 사이로, 여기 고갯길에서 배반(盃盤)의 자리를 베풀어 회포를 나누었으니, 다음은 그 두 분이 읊은 시(詩)이다.

 '명인의 자취' 스토리텔링
 '명인의 자취'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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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草行裝白首郞 초라한 행장을 한 머리 쉰 사나이가
秋風匹馬嶺途長 가을바람 불 때 죽령 먼 길을 말 타고 가는데
莫言林下稀相見 나무 밑에 모처럼 만난 사람과 말하지 말라
落葉歸根自是常 낙엽이 떨어져 뿌리로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현보)


飄飄歸興趁漁郞 나부끼며 돌아가는 어부같이
直沂驪江玉帶長 바로 긴 한강을 거슬러 왔네.
今日竹領回首意 오늘 죽령으로 돌아온 뜻은
乾坤萬古是綱常 천고만고의 강상이 아니랴. (주세붕)”


이 시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가 강상(綱常)이다. 강상이란 삼강과 오상의 준말이며 오상은 오륜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강상은 삼강오륜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을 말한다. 마지막 행을 우리는 ‘시공을 초월한 윤리와 도덕을 따르기 위함이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두 시는 또한 랑과 장과 상으로 운을 맞춰 기가 막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죽령#죽령 옛길#스토리텔링#주세붕#이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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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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