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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겨울꽃이다.
▲ 비파 1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겨울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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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해 12월 1일, 뜰 한켠에 잔뜩 꽃몽우리를 맺고 있던 수선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꿈인가 생신가 했는데 한 송이가 피어나니 앞을 다퉈 피어나 뜰 안에는 수선화 향기가 가득했다. 붉은 동백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 떨어져 더 붉은빛으로 동토를 장식했고, 수선화는 향기로 겨울을 감쌌다. 얼마나 행복한 겨울이었는지 수선화 향기가 뜰 안에 가득하던 겨울밤 옷깃을 여미고 콧노래를 부르며 뜰을 거닐기도 했다.

육지의 노지에서 겨울에 꽃을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제주도에 있을 때 이야기다.

어느 날인가 H신문사에서 제주도에 있는 겨울꽃을 소개해 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고 동백, 겨우살이, 가을에 피어났지만 아직도 피고 지는 갯쑥부쟁이나 해국, 감국, 바보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그들은 '비파'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파'라….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멀지 않은 누군가의 집에서 본 나무다.

얼른 그곳에 가보니 돌담에 기댄 가지에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몽우리까지 치면 족히 1월 말까지 꽃이 피어날 것 같았다. 그들은 비파가 있는 곳을 안다는 말에 서울에서 제주까지 오는 일을 마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비파가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다.

저 너머가 땅끝마을일까?
▲ 해남 능내면 봉화리 근처의 바다 저 너머가 땅끝마을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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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이 생겨 그 먼 해남길을 하룻길로 달려갔다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하룻길 24시간에 조금 더해서 해남을 다녀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은 제주와 식생이 비슷한 점이 많다. 허긴 옛날에 행정구역상으로 제주도가 전라남도에 속했으니 왜 비슷한 점이 없겠는가? 같은 남녘인데.

한겨울에도 노지 밭에 시퍼렇게 서 있는 배추와 무우도 그렇고, 마늘이나 푸른 초원을 방불케 하는 보리밭뿐 아니라 늘 푸른 덩굴식물인 송악, 단풍이 든 쑥이나 토끼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을 만나면서 '어, 저건 제주에서 봤던 것인데'를 얼마나 연발했던지.

북일리 용일면, 그곳을 지나는 길에 나는 붉은 동백이 피어 있는 집의 뜰로 들어갔다. 그런데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비파가 꽃을 옹기종기 피우고 손님을 먼저 맞이한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에게 먼저 인사를 하자 동백이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다가 머쓱해 하는 것 같다.

솜털을 잔뜩 입은 꽃몽우리, 솜털을 간직한 꽃
▲ 비파 솜털을 잔뜩 입은 꽃몽우리, 솜털을 간직한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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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의 꽃은 겨울에 피고 열매는 초여름에 익는다. 비파를 먹고 씨를 버리면 그곳에서도 싹이 잘난다고 한다. 작은 묘목을 캐다 밭 근처에 심으면 여름날 일을 하다 갈증을 없애는데 최고라고 한다.

꽃도 보고 열매가 잘 익은 것도 보았건만 아직 비파의 맛은 보질 못했다. 비파가 잘 익은 집에 불쑥 들어가 "비파열매 하나만 맛보게 해주소"하면 될 것을 숙기가 없어 그러지도 못하고, 슬쩍 하나 따먹어도 될 것을 그리하지 못한 것이 이내 서운하다.

둘의 동행은 가족의 나들이 같았다.
▲ 동행 둘의 동행은 가족의 나들이 같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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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와 동백 만난 후 골목길을 바라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개줄을 붙잡고 과일주를 담그는 유리병을 머리에 이고 지나간다. 개꼬리가 당당한 것으로 봐서 비록 줄에 묶여는 있지만 꽤나 사랑을 받고 사는 것 같다.

자식들 도회지로 보내고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와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걸어 걸어 세 마을을 지나왔는데 젊은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인지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에 히죽히죽 웃으며 이방인에게 웃음 지어준 정신지체인이 유일한 젊은이였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국토개발을 이따위로 했을까?

여느 곳이나 사람살만 한 곳으로 만들지 못하고 오로지 서울로 서울로, 그것도 모자라 강남으로 강남으로 꾸역꾸역 아귀처럼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초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도 이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자식들과 살아가라고 하면 살지 못하고 도망칠 것만 같았다. 오로지 땅과 바다, 그곳에 의지해서 평생 허리가 휘도록 살아왔던 그들은 자식새끼들만큼은 자신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능력이 되면 자식들을 도회지로 보내고, 자식들 잘되는 것이 기쁨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한미FTA라는 철퇴가 농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이젠 더 이상 땀 흘려 일해도 희망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이 세대가 끝나고 나면 누가 흙을 만지며 살 것이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누가 채워줄 것인가?

해남에서 만난 비파도 제주의 비파와 다르지 않았다.
▲ 비파 해남에서 만난 비파도 제주의 비파와 다르지 않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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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학 운동권 중에서는 전라도 친구들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이들은 주로 광주, 강진, 해남이 고향인 친구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왜 그들이 그렇게도 치열하게 싸우는지를.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삶의 터전, 옛날에는 유배지였고, 지금도 여전히 위대한 대한민국의 변방인 그곳을 생각하면 투사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변절을 했다. 시대를 따라 그렇게 변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해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친구들 중에는 그래도 변절자가 적었고, 많은 친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지금도 묵묵히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힘으로 될까, 안될까를 회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전히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사람이 살아야 할 곳이므로.

겨울꽃 비파가 '고난의 계절 겨울에 피어나 더운 여름 갈증을 풀어주는 과일을 맺는 내가 있으니 절망하지 마라, 지금은 단지 겨울일 뿐이다'고 말하는 듯하다.

초여름에 노랗게 익는다. 열매가 악기 비파를 닮았다.
▲ 비파열매 초여름에 노랗게 익는다. 열매가 악기 비파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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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동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선화도 있고, 팔손이도 있고, 비파도 있고, 게다가 바보꽃도 있으니 사시사철 철따라 꽃을 볼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이렇게 행복한 나라에 살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아픈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곳에서 삶의 생기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향의 정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깊은 절망들이 겨울이라는 계절과 겨울비 부슬부슬 내리는 하늘과 어우러져 쓸쓸함을 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 마을 초입 벽면에는 1번에서 12번까지의 대선후보들이 일렬로 활짝 웃으며 대한민국을 살만한 나라로 바꿔줄 인물은 나밖에 없다고 웃으며 표를 구걸하고 있다. 그랬다. 당당하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걸이었다. 정책 없이 흑색선전만 난무하는 선거는 거지 같은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 곁에는 보궐선거가 있는지 또 다른 후보들의 사진이 활짝 웃고 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예쁘지 않은 그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태그:#비파,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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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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