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이집 이름났어요. 나 이집밖에 안 와.”
정읍 가교동 저수지 윗마을에서 산다는 안석순(75)할머니는 매달 서너 번씩 찾는 집인데 팥죽이 정말 맛있다며 꼭 한번 먹어보라고 한다.
“팥죽 한 그릇에 3천원밖에 안 해”
“정말이에요?”
“시골이니까 싸게 받어.”
“그렇게 맛있어요?”
“잡숴봐야 알지, 설명을 못해 부러”
가게 입구에서 팥죽을 쑤고 있는 주인장(65·최춘자)에게 가게 한지는 얼마나 됐으며, 어떤 음식이 맛 있느냐 물어봤다.
“촌에서 농사짓다 5년 전부터 했어요.”
‘에게 경력이 고작~’ 이런 염려는 붙들어 매라. 입구에서 만난 안 할머니의 주장에 의하면 주인장 할머니의 내공이 보통 솜씨가 아니란다.
“팥죽(팥칼국수)도 있고 새알(동지팥죽)도 있고 그러커든요. 새알은 찹쌀로 하고 팥죽은 밀가루 면으로 해요. 집에서 직접 팥 삶아갖고 걸러서 팔팔 끓여 미리 준비해둬요.”
팥죽그릇을 나르던 주인장의 딸이 한마디 거든다.
“면은 반죽해서 하루저녁 냉장고에 넣어 숙성해요. 그러면 면이 쫄깃해져요.”
“5일시장인데 장날만 문 여나요?”
“쉬는 날이 없어. 추석 하루, 구정 때 이틀밖에 못 쉬어. 단골손님 때문에 못 쉬어.”
“하루에 몇 그릇 파나요?”
“못 판 날은 한 50그릇, 평균 70~80그릇 팔어”
“면은 칼로 숭숭 썰어 이렇게 털어갖고 팥 국물에 넣어서 10분 정도 끓여내.”
“반죽에 무슨 특별한 걸 넣나요?”
“소금하고 물 밖에 안 넣어.”
열린 창문틈사이로 식당내부를 살짝 들여다보자 손님들이 가득하다. 손님들 들고 나는 걸 보니 괜찮겠다 싶어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오래된 건물의 허름한 내부가 오히려 정겹다.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천정과 바람벽의 벽지는 빛바랜 세월을 담고 있다. 주인장은 이집이 흙집이라고 알려준다. 새알이 더 맛있다며 권하는 걸 마다하고 그냥 팥죽으로 달라고 했다.
먼저 찬이 나오는데 갓 담근 배추김치와 훌렁한 물김치다. 찹쌀 풀을 써 김칫국을 만들었다는 물김치는 양배추와 양파의 아삭함에 감칠맛까지 듬뿍 담겨있다. 워낙 사근사근 시원하게 와 닿아 그 내용물을 살펴보니 잘게 썰어 넣은 양배추와 무 이파리, 파, 당근, 고추, 양파를 넣어 발효시켰다.
배추김치 맛도 유별나다. 황석어젓과 잡젓을 직접 담가 3년을 삭혀, 이 젓을 끓여 건져내 액젓으로 만들어 김치를 담갔다는데 젓갈의 오묘한 깊은 맛이 일품이다.
대접 한가득 푸짐한 팥죽은 새알까지 덤으로 넣어준다. 황설탕을 취향에 맞게 두어 스푼 넣어 휘~저어 한술 뜨니 뜨끈하고 달큼한 게 정말 맛있다. 팥죽 면의 쫄깃함에 차진 새알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다.
속이 다 뜨끈뜨끈하다. 순간 추위가 오간데 없이 확 풀린다.
옆 식탁의 아주머니가 팥죽이 좀 적다고 하자 “쫌 기다리세요. 더 드릴께요”라며 두말없이 덤을 더 갖다 준다.
“더 달라면 더 주고 그래요.”
“서울에서 살다 여기(정읍) 온지 4년 됐는데 다니면서 보니까 여기가 제일 맛있습니다. 다른 집은 팥죽이 맹물인디 여기는 걸쭉하고 맛있어요. 집에서 한 것 하고 똑같아요.”
겨울비가 오락가락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녹아 내렸다. 추억이 담긴 옛날팥죽 한 그릇에 순간 추위가 확 풀렸다. 맛과 정이 넘치는 팥죽 한 그릇에 행복감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