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
처음부터 문국현 후보가 후보 단일화 압박에 굴하지 않고 독자행보를 고수했다면, 그것은 그대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가치와 비전이 다른 정동영 후보와 합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가리는 것이라 했다면 차라리 그대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물론 정동영 후보와 합친다해도 이명박 후보를 이긴다는 승산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단일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왔으면, 문 후보는 그 책임을 다했어야 한다. "선수가 링에 안 올라오는데 어떻게 심판 보나"
"처음부터 문국현 후보는 단일화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던 것 같다. 문 후보가 (단일화 무산의) 비판도 감수하려는 각오 같다. (선수가) 링에도 올라오지 않는데 심판을 어떻게 보겠나." 단일화 심판을 봐달라는 문 후보의 요청에 따라, 중재를 준비했던 시민사회인사 '9인모임'의 윤준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6일 '중재노력 중단'을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문 후보에게 큰 실망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워낙 중요한 일이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여지를 남겨보려 애썼다. 전날인 5일 기자들과 만났을 때는 달랐다. 정 후보 쪽은 포괄적 권한위임장을 9인모임에 냈지만 문 후보쪽은 이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그는 문 후보를 감싸려 애썼다. 이번 단일화 과정 전반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는 '9인모임'의 한 관계자는 "문 후보가 자신에 대한 단일화 압박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시민사회를 이용했다는 시각들이 많다"고 전했다.
문 후보는 4일 단일화 논의 수용 기자회견에서 단일화 시점을 16일까지로, 토론회수는 3~4회로 정했다. 19일이 투표일인데 16일 단일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뒤따랐다. 그러자 3일 뒤인 6일, 논란이 된 '단일화 시점'은 유연하게 하겠다면서도 토론횟수는 오히려 6회(전국방송 1회, 지역방송 5회)로 늘렸다. 6일을 기준으로 남은 선거운동기간 12일 동안 선관위 주최 합동방송토론 2일을 빼고 남는 10일동안 6회의 방송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국을 돌면서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씻김굿'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실상 남은 선거운동을 두 사람의 토론으로 대체하자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하면 참여정부 실정에 대한 씻김굿이 되는 것일까. 왔다갔다 문국현...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문 후보는 이번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그에게 의문을 갖고 있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권력의지' 등에 대한 답을 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겪었던 1990년 3당 합당,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올 뻔 했던 2004년 탄핵과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면 그는 어떻게 대응할까. 문 후보는 왔다갔다 했다. "저와 정 후보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한 토론의 장을 준비하고 결단의 기준을 시민사회의 존경을 받는 분들께서 제안해 주면 좋겠다"고 시민사회를 '심판'으로 불러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9인모임이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문 후보의 김영춘 선대본부장은 단일화 최종결렬이 확정되지 않았던 6일 아침 "'누구 한 사람을 정해지면 현재 상황이 좋아지지 않겠나' 하는, 민심을 도외시한 순진한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럴 것이었으면, 문 후보는 처음부터 시민사회를 거론하지 말았어야 했다. '정동영 사퇴'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문 후보는 지난 달 20일 정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가, 지난 3일에는 문 후보의 김갑수 대변인이 공식브리핑에서 "과거 문 후보가 주장했던 '정동영 사퇴' 주장은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일화가 사실상 결렬된 7일 오전에는 다시 "이제 남은 것은 정 후보 스스로의 결단"이라고 다시 사퇴론을 꺼내들었다. 문 후보에게 우호적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의원은 문 후보에 대해 "저렇게 가면 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며 "괜찮은 CEO와 정치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권력의지는 기존 정치인 못지 않아
문 후보는, 일관성이 핵심인 '신뢰도'라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흠집이 났다. 정동영 후보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태도를 바꿔온 것이, 그에 대한 정치적 신뢰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문 후보는 이 과정에서 '권력의지'에 대한 궁금증만은 해소했다. 자신의 '친정'처럼 말해온 시민사회 인사들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나 아니면 안된다"는 기존 정치인들에 못지 않은 불굴의 권력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그가 단일화 논의과정에서 얻은 유일한 성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물론 남은 기간동안 정-문, 두 후보 중 한명이 사퇴해서 단일화가 이뤄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패자의 고육지책일 것이 뻔한 이런 행위는 결단도, 승리를 위한 단일화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