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대선은 텔레비전 합동토론회가 당락을 갈랐다. DJP연합 같은 정치공학적 세력연합이 있었지만 그 또한 TV토론이라는 여론의 마당을 통해 공론화되었다. 당시 전국·지역방송에서 중계한 '빅3'(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 TV합동토론회는 45회 정도나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중 대한민국을 인터넷에 기반한 'IT강국'으로 이끌었다. 2002년은 그 기반 위에서 인터넷이 승부를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하우'라는 인명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할 만큼 일찍이 인터넷에 눈뜬 노무현 후보는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인터넷의 위력을 간파했다. 많은 시민들을 서울 광화문의 효순-미선 촛불시위로 이끈 것은 인터넷과 휴대폰 메시지로 조직화된 '공분'(公憤)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대선 다음날 이렇게 보도했다. "인터넷이 조중동을 눌렀다." 그렇다면 2007년 대선은? 많은 전문가들은 '포털'과 '동영상'이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공룡 포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미국에서도 정당토론회에서 약 1억 명이 UCC(사용자제작 콘텐츠)를 시청했다는 결과가 알려지면서 '유튜브 정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인터넷 때문에 졌다' 한나라당 피해의식... 포털·UCC 규제 강화로 이어져 실제로 보수진영과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때문에 졌다는 피해의식이 컸다. 그에 대한 반성은 보수성향의 인터넷 신문 창간과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로 이어졌다. 되짚어보면 그 규제에는 일관성과 역사성이 있다. 우선 지난 대선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가 이를 입증한다. 심지어 어떤 보수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활동의 수단으로 인터넷신문을 창간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인터넷 공간의 보수-진보 균형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당시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한나라당 참정치본부장이었던 유석춘 연세대 교수(현 이회창 후보 정무특보)조차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예상했었다. - 인터넷매체가 대선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인터넷은 좌우가 어느 정도 세력균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시장에서 <오마이뉴스> 등 좌파매체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거기다가 조중동의 영향력이 살아 있다. 그런데 포털이 진보에 가까운 것 같다. 포털은 여전히 진보가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솥뚜껑 보고 놀란 보수진영의 포털에 대한 피해의식은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조직화되었다. 당시 보수진영 인사들이 이끄는 자유언론인협회는 '2007 대선 포털이 결정'이라는 창립기념 토론회를 갖고 사실상 포털사이트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역시 보수논객인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또한 "현재의 포털은 규제 밖에 있는 권력과 같다"면서 법적 규제가 시급함을 역설했다. "포털이 사실상 2차적 언론 역할을 하면서도 아무런 법적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도 정권창출에 포털이 개입할 가능성이 커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시급하다. 포털이 책임성, 공정성을 져야 하고 '정언유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법적 제약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 "'친여매체' 편드는 포털은 가만 안두겠다" 포털 위협 보수진영 인사들의 이런 인식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매개로 한 포털과 UCC 동영상에 대한 집중 규제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팀인 여의도연구소(소장 임태희 의원)는 국회에서 '포털뉴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정책토론회를 주최해 '포털 뉴스사이트 규제'를 공론화했다. 당시 발제자로 나선 나경태 여의도연구소 연구원은 '공정성 없는 뉴스의 자의적 선정'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의 네이버 노출 비율이 <데일리안>과 <업코리아>의 노출 비율보다 무려 8.2 ː1로 압도적으로 높다"며 "포털뉴스가 특정 성향의 언론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친여매체'를 편드는 포털은 가만 안두겠다는 위협이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지난 10월 문화관광부 국정감사에 홍은택 NHN 부사장 등을 증인으로 출석케 해 규제 방안을 따짐으로써 정치권으로부터 한나라당의 '포털 길들이기'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한나라당의 지속적인 위협 때문인지는 몰라도 검색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는 네이버의 지나친 '부자 몸조심'과 보수화로 심지어 '조중동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선관위는 또 "선거일전 180일부터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ㆍ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인쇄물이나 녹음ㆍ녹취 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ㆍ첩부ㆍ살포ㆍ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규정한 이 공직선거법 93조 1항을 근거로 게시물을 삭제해왔다. 실제로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올 1월부터 개인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선거운동 개시일 11월 26일까지 선거법에 위배돼 삭제된 게시물은 6만4407건이다. 이 가운데 6월 22일 이후에 적발된 게시물은 4만4976건. 이는 1월부터 6월 21일까지 적발된 1만9431건보다 2배가 넘는 수치다. 네티즌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게 선거법" 이 때문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게 선거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조항의 입법취지는 후보들 간의 상호비방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침해한다는 이유로 현재 헌법소원 상태다. 그리고 이런 규제 덕분에 대선이 종반전으로 치닫는 현 시점에서 포털과 UCC동영상이 대선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는 성매매 단속현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시물 삭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문제의 법조항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국내 누리꾼들이 선관위의 규제를 피해 해외사이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미국의 유명한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의 주간 링크 순위로 1위에 오르는 등 누리꾼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른바 '박영선 동영상'이다. 12일 관련업계와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연루 의혹과 관련해 박영선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 MBC 기자 시절에 이 후보를 인터뷰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지난 5일 미국의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온 뒤 이날 현재까지 조회수 66만여 건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 네티즌까지 수사 대상에 넣은 것은 한나라당의 자충수?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나라당이 그토록 우려해 규제하려고 했던 UCC동영상이 '풍선효과' 때문에 미국을 통해 재수입된 것이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한나라당의 사후대책이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위원장 홍준표)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11일 BBK와 관련해 이명박 후보를 비방하는 소위 '박영선 동영상', '김경준 모친 동영상' 등을 무분별하게 인터넷에 불법 게재·유포한 ‘불똥닷컴’(www.blddong.com) 운영자 등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후보자 비방죄, 탈법방법에 의한 영상물 유포죄 등으로 서울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의뢰하였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사의뢰 대상자들은 이렇다. ① 문제 UCC 원본의 저작자(불똥닷컴 등) ② 이를 게시한 UCC 전문업체(판도라 티비, 앰엔케스트 등)와 위 UCC 전문업체의 동영상을 게시한 검색서비스제공업체(네이버, 다음 등) 등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③ 동영상을 첨부하거나 홈페이지 주소를 첨부하여 이를 기사화한 언론사 ④ 이를 다운로드한 일반 네티즌 등. 한나라당의 이같은 행태는 '박영선 동영상'의 확산을 막으려는 예방적 의지를 넘어서, 한 마디로 인터넷 사용자인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이다. 모든 네티즌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같은 행태는 국가보안법을 고수해온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이후 줄기차게 추구해온 포털과 UCC동영상 규제에 비추어 신종 국가보안법으로 '빅 브라더'를 꿈꾸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나라당은 <한겨레>, <경향신문>, MBC 등 이 후보의 BBK 및 부동산 의혹을 파헤쳐온 언론을 대상으로 한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 및 항의 방문으로 언론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박영선 동영상'을 다운로드한 일반 네티즌까지 수사의뢰한 것은 한나라당 최후의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나라당이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독주로 심심해진 인터넷 대선공간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을 장식할 마지막 구호는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만국의 네티즌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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