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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내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이란내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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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의 대표적인 사막중 하나인 카비르(Kabir-소금)사막.
▲ -- 이란의 대표적인 사막중 하나인 카비르(Kabir-소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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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간파했어야 했다. 큰 도시인 이스파한에서 빠져 나가는 50㎞는 그냥 고속도로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없는 도로를 그냥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무의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자전거로 선을 잇는다"는 것이 자전거 여행이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간혹 이런 바보스런 주행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정보를 잘 챙겨서 체력과 시간, 비용을 최대한 가치가 있는 루트에 쏟아 붓는 것이 가장 현명한 주행임을 알고 있다. 소모전인 걸 알면서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묵묵히 페달만 밟았다. 

사진 -  카비르 사막 주행 첫째날 만난 오스트레일리안 사이클리스트들.  그중 한 명은 현재 아내와 아이들이 영국에 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내가 필요한 물건을 공수해 주는 등 자신의 여행을  적극 후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 사진 - 카비르 사막 주행 첫째날 만난 오스트레일리안 사이클리스트들. 그중 한 명은 현재 아내와 아이들이 영국에 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내가 필요한 물건을 공수해 주는 등 자신의 여행을 적극 후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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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에서 너무 오래 쉬었던 건 아닌지…. 체력관리에 소홀했던 영아가 첫날부터 힘들어 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이 지루한 길을 하루 종일 달려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그 예감은 적중했다. 하지만 지루함 속에서도  언제나 즐거운 헤프닝은 있게 마련인데, 반대편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달려오는 오스트레일리안 사이클 리스트 두 명을 만난 일이다.

그 중 한 명은 현재 아내와 아이들이 영국에 있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내가 필요한 물건을 그때그때 공수해 주는 등 자신의 여행을 적극 후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도로 한 편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서로의 자전거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여행 중 자전거 수리는 어떻게 하는지, 하루에 평균 얼마씩 달리는지, 서로가 사용 중인 gps는 어떤지, 또 각자가 지나온 마을들에 대한 숙소는 어땠는지 등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들이 지금은 비록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럽을 향하고 있다니 길에서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연들을 스치게 된다. 때로는 며칠 밤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 몇 분만에 아쉬운 이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어김없이 "다시 보자(See you again)"는 얘기를 나누지만, 우리는 안다. 다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걸. 스치는 인연이란 걸. 우리는 이 두 명의 오스트레일리아인과도 어김없이 같은 인사를 나눴다. 굿럭. 씨유 어게인.

낙타 주의!  사막도로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교통 표지판
▲ 낙타 주의! 사막도로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교통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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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사막이다. 숙박시설이 전혀 없는 시골의 아주 작은 마을 구파에(Kuhpaye). 우여곡절 끝에 해가 기운 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렵사리 간이 숙소에 도착했다. 그것도 경찰의 손에 이끌려서 말이다. 구파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그마한 지역의 유일한 모스크(Mosque, 모슬렘 회당) 안으로 들어섰다.

모스크에 도착한 직후, 모스크를 관리하는 벙어리 할아버지가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맘씨 나쁜 늙은이 같으니라구.' 컴컴한 모스크의 지하 공간, 더럽고 초라한 카펫이 깔려 있는 넓은 공간의 귀퉁이에 짐을 풀었다. 이곳은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는 사람들 눈을 피해 돈도 달라고 했다.

몇 번을 거절했지만, 한 낭패를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잔돈에 해당하는 지폐 몇 장을(이란에서는 일반적으로 지폐만 사용을 한다) 손에 쥐어줬다. 하지만 금액이 적다는 표정을 짓는다. 시골사람 같지 않게 욕심 많고 심술궂은 이 영감을 보고 있자니 맘이 편치 않았다.

이스파한에서 2주일이나 머물렀던 아미르 카비르 호텔의 털복숭이 매니저가 오늘 이른 새벽 떠나는 우리와 자전거를 보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멋진 말(馬)이군요 !"
"이란에선 숙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모스크가 없는 마을이 없고, 어디에서건 당신을 형제로 맞아들일 테니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신이 함께 할 겁니다. 알라."

맘을 달래며 하루의 피로를 명상으로 풀고자 고요히 앉아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와서 가만히 서 있는 게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모하메드라는 초등학교 5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궁금한 게 많은 이 꼬마는 가족과 함께 친척집에서 노루즈(Noruz)라 불리는 이란의 신년 맞이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내 앞에 조용히 서 있던 모하메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건네 왔다.

"지니(중국사람), 지니?"
대답이 없자, 계속해서 속삭이듯 물어보는 요 꼬마 녀석.
"지니(중국사람), 지니?"
"아니, 꼬레(한국사람)."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 되었다. 그리고 통성명이 끝나자 모하메드는 우리를 자신의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자리로 이끌었다. 우리는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또 이들의 손에 이끌려 그들의 이란식 저녁 식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보통 이란 사람들은 온 가족이 여행을 하는 경우엔  차 뒤 트렁크에 단지만한 프로판 가스통과 주전자, 냄비 등의 부엌용품, 데워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이란 사람에게는 필수인 차와 설탕을 싣고 다니는데, 이들의 식사 자리 한 켠의 가스통 위에서 찻주전자가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하메드의 아버지가 건네는 노란색 샤프란 얼음설탕을 혀 위에 올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우리의 대화는 시작 되었다.

오늘처럼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날은, 일전 시라즈에서 구입한 페르시아/영어 교재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페르시아어 서바이벌 단어장이 아주아주 큰 도움이 된다. 모하메드의 엄마는 아예 이 책을 끼고 앉아 책장을 넘기며 궁금한 표현을 찾았고, 그것을 보여주면서 이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을 우리에게 물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아까 우리를 이곳 모스크로 데리고 온 경찰과 한 무리의 청년들이 어두운 지하 모스크 아래로 떼 지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헤잡, 헤잡! 경찰이 온다."

모하메드는 영아에게 빨리 스카프를 쓰라고 재촉했다. 이곳에서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여성들이 헤잡을 하지 않으면 경찰에 잡혀가 곤경을 치르기 때문이다. 영아가 서둘러 스카프를 동여맬 즈음, 우리는 이들이 우리를 취조하러 온 게 아니라, 우리와 사진을 찍으러 온 아까 그 경찰과 그의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치'

피곤했지만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자전거를 배경으로 찰칵! 오늘 우리가 모하메드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 목록은 이랬다. 자, 초콜릿, 사탕, 뒷면에 모슬렘 성자의 그림이 붙어 있는 손거울, 볼펜, 건전지 한 개, 설탕 등등. 그리고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선물한 건, 한국의 100원 짜리 동전, 샤프펜슬과 샤프심 등.

이런 사소한 선물 교환을 통해서도 즐거움이 느껴지는 건, 세계 만국의 공통정서인가 보다. 별것 아닌데도 자꾸 피식하며 미소를 머금는 모하메드.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냥 눈만 마주쳐도 조용히 웃는 둘째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우리가 오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75㎞의 이 길을 달려온 건, 분명 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다. 누구나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이 이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는가? 어쩌면 오늘 우리의 운명은 이곳 구파에의 모스크에서 지내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닐는지.

사실 말하지만 오늘은 꽤 힘든 하루였다. 특히나 영아가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런 하루의 피로와 못된 모스크 문지기 할아버지에게 느꼈던 사소한 불쾌감 따위는  다정한 모하메드 가족을 만나면서 모두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 헤잡(Hejab): 무슬림 여성의 얼굴과 머리, 목 등을 스카프 등을 이용해 가리는 것

--    카비르 사막 주행 중, 모스크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된 연으로 만난 모하메드 가족.
▲ -- 카비르 사막 주행 중, 모스크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된 연으로 만난 모하메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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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의 한쪽에서 불편한 잠을 자는 영아. 이날 모스크를 지키는 못된 벙어리 할아버지가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넣었죠.
▲ -- 모스크의 한쪽에서 불편한 잠을 자는 영아. 이날 모스크를 지키는 못된 벙어리 할아버지가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넣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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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3년 10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자전거로 인도와 네팔,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여행한 후 작성한 기사입니다.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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