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다는 우리들의 유산이며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바다는 우리들의 유산이며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공주에서 태안까지 두 시간 넘게 걸리니까 새벽부터 서둘러야 됩니다."
"이틀 동안 작업해야 하는디, 천천히 가시지…."
"아, 안돼요, 회원들하구 다 약속했는걸, 늦어도 공주에서 아침 일곱 시쯤에는 출발해야 돼요."

태안 기름유출 방제작업을 나서던 얼마 전부터 생명평화 마중물의 조주형 선생이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요즘 새벽 두세 시까지 잠 못 들어 아침 늦게 일어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던 터였다. 거기다가 아내의 목이 감기 기운으로 심하게 잠겨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늦춰 보려고 뺀들거리고 있었는데 출발 전날 장모님이 찾아 오셨다. 장모님은 우리 식구가 태안 자원봉사가 약속돼 있다는 것을 알고는 새벽에 함께 나서겠노라했지만 새벽 댓바람에 보내드릴 수 없었다. 적어도 아침밥은 챙겨드려야 했다.

1월 12일. 늦은 아침, 우리 네 식구는 장모님을 고속버스 터미널에 모셔드리고 공주에 사는 또 다른 마중물 회원 정한섭씨와 함께 눈비가 뒤섞여 내리는 길을 따라 태안으로 향했다.
    
마중물 식구들이 작업할 곳은 태안군 모항 근처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밀물처럼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동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금세 손이며 볼과 귀가 얼얼해졌다.

문규현 신부님을 비롯한 마중물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천주교 교우들과 뒤섞여 작업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작업해 왔던 회원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떨쳐 내면서 매서운 바닷바람을 피해 몸을 잔뜩 움츠리고 적당히 서거나 쪼그려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어떤 마중물 회원들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기름때 제거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기름때 제거작업 모항 주변의 한 해변가에 모인 자원봉사자들
▲ 기름때 제거작업 모항 주변의 한 해변가에 모인 자원봉사자들
ⓒ 정한섭

관련사진보기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서 나눠주는 방제복을 챙겨 입었다. 목도리를 목에 칭칭 두르고 마스크까지 쓰고 나니 추위가 한결 덜했다. 방파제 입구 쪽에는 기름때가 쉽게 눈에 띄질 않았다. 그동안 다녀간 수많은 자원봉사들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기름때로 범벅된 갯바위들이 즐비했다. 헌옷가지로 닦고 또 닦아 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갯바위에 기름때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태안군 모항 부근 바닷가에서 기도하듯 기름때를 닦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
 태안군 모항 부근 바닷가에서 기도하듯 기름때를 닦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
ⓒ 정한섭

관련사진보기


“돌 닦는 게 다들 도 닦는 것 같네요”

기름때 작업에 열중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던 정한섭씨 말대로였다. 오로지 기름때 묻은 돌에 집중하고 있는 자원봉자들의 모습이 마치 도를 닦는 것만 같았다. 자원봉사자들은 무한한 인내심으로 기름때가 묻은 돌을 닦아 내면서 자신들의 마음자리를 닦고 또 닦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기름때가 떡칠이 되어 있는 바위와 바위 사이 고인 물속에 더러 작은 새끼 고동들이 눈에 띄었다. 기름때가 흘러들까봐 닦아낸 돌로 슬쩍 건드려 보았다.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분명 살아 있었다. 시꺼먼 기름 덩어리에 고동들이 죽어갈 때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새끼들을 세상 밖으로 내놓은 듯 보였다. 기적 같은 번식 본능이었다. 고동들은 죽음을 앞두고 여전히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름 때 덕지덕지한 바위 틈에 기적처럼 살아 있는 새끼고동들
 기름 때 덕지덕지한 바위 틈에 기적처럼 살아 있는 새끼고동들
ⓒ 정한섭

관련사진보기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바다에 나선 자원봉사들 또한 그러해 보였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끝은 절망적인 바다 끝에 매달린 희망의 끈 같은 것이었다.     

저만치서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오후 작업을 마쳤다.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왔던 길로 떠나고 마중물 회원들은 숙소로 향했다. 기름 제거 작업을 할 때는 모두들 두 눈만 내놓고 방제복에 몸을 파묻고 있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는데 비로소 낯익은 마중물 회원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부천 부안 대전 공주 전주 정읍 등에서 찾아온 회원들이었다. 30여명의 회원들 중에는 처음 보는 회원들도 있었고 부모 따라 나선 아이들도 10명쯤 됐다. 대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숙소는 눈앞에 몽산포 해수욕장을 펼쳐 놓고 있는 ‘사랑이 머무는 곳’이라는 펜션이었는데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로 내주고 있었다.(다음날 숙소를 나올 때 회원들이 돈을 갹출해 얼마간의 사례를 했다)

 기름으로 뒤섞인 태안 앞바다, 겉으로 들어난 몽산포 해변의 노을은 늘 그래왔듯이 평온하기만 하다.
 기름으로 뒤섞인 태안 앞바다, 겉으로 들어난 몽산포 해변의 노을은 늘 그래왔듯이 평온하기만 하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숙소 앞에 펼쳐진 바다는 말 그래도 아름다웠다. 기름 유출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늘 그래왔듯이 노을이 지고 있었다. 구름 띠에 가려 있었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보았던 바다의 노을과는 전혀 감회가 달랐다. 분명 바다에는 온갖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기름이 뒤섞여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추위를 잊은채 그 바닷가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회원들이 마련해 온 음식을 한자리에 풀어 놓고 식사를 했다. 어떤 회원은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겨울배추를 마련해 왔고 또 어떤 회원은 김치를 가져오고, 또 어떤 회원은 과일을 준비해 왔고 멸치 볶음이며 나물이며 국거리, 밥 등등을 각각 준비해 왔다.

여러 손들이 정성껏 마련한 식단이다 보니 먹을거리가 푸짐했다. 거기에는 숙소에 오면서 누군가가 태안 현지 할머니에게서 구입했다는 생굴까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군소리 없이 그 생굴을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태안 참여자치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정일씨로부터 ‘삼성중공업 예인선-허베이스피리트호 충돌 기름 유출 사고 피해 상황 및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기름 유출 사고에는 풀어내야 할 여러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사고 당시 항만당국과 예인선 그리고 부선간에 왜 교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왜 삼성중공업 예인선은 무리하게 경남 거제로 끌고 가려 했는지, 왜 선박 소유주는 소환하여 조사하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항해일지를 조작하려 했는지 등의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들은 나몰라라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낸 사고라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는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 언론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밥줄 때문일 것이었다. 삼성중공업과 같은 거대 자본들이 그들의 밥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이 광고를 통해 그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것일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까? 아직까지 삼성중공업 측에서는 사고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사고가 나자마자 잘나간다는 국내의 해양사고 전문변호사들을 죄 끌어 모았다고 한다.

태안참여자치연대의 이정일씨는 사고내용과 원인, 피해현황과 예상, 국가 방제시스템의 문제와 개선사항 등을 설명했다. 덧붙여 좀더 효과적인 방제 작업을 위해서는 피해 지역을 마을 단위로 나눠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인 봉사활동이 필요함을 당부했다. 현재 전교조 등을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에서 한 지역을 정해 놓고 집중적인 봉사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한다.

 임자가 따로 없는 방제 장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고 또 신었던 장화다.
 임자가 따로 없는 방제 장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고 또 신었던 장화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다음날, 마중물 식구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밥을 챙겨 먹고 다시 모항으로 출발했다. 전날 입었던 방제복을 다시 착용하고 또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천주교 자원봉사자들과 뒤섞여 작업을 시작했다. 전날 보다 바닷바람이 더 매서웠지만 아이들도 씩씩하게 기름때를 닦아 냈다.

간혹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기름유출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튀어 나오기도 했다. 여태껏 사과 한마디도 없는 인간들에 대한 무한한 인내심으로 돌을 닦고 또 닦아 내고 있었다.

점심을 챙겨 먹고 다시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작업 끝머리에 들어서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힘든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아빠 언제까지 해야 돼….”
“그만하면 안돼… 추워 죽겠어…”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은 설상가상으로 바위에 미끄러져 발목이 삐끗했다고 한다. 다행이 그리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힘들어하는 녀석들을 위해 일을 재밌는 놀이처럼 하기로 작정했다.

“야 유전 발견했다. 얘들아 이거 봐봐! 파고 또 파도 끊임없이 기름이 나오지 잉.”

돌 위에 달라붙은 기름때를 닦아 내다가 누군가 놓고 간 조개 캐는 호미로 바위 밑을 파기 시작했는데 검은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바위 틈 자갈밭을 20cm 가까이 팠는데도 여전히 시커먼 기름이 물과 뒤섞여 흘러 나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힘든 상황을 잠시 잊고 작은 구덩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유전처럼 땅 속에서 검은 기름이 흘러나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거 니들한티 유산으로 물려줄게 부지런히 파라 잉.”
“아이고, 애들한티 참 좋은 거 물려주십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놀이였다. 유출 기름이 제거되려면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기름때는 내가 감당해야 할 유산이면서 또한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줘야 할 어리석고 어리석은 유산인 것이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합당한 조처가 없는 한 태안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희망 없이 감당해 내야 할 추악한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오후 작업을 마치고 마중물 회원들은 세 번째 봉사활동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각자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집으로 돌아 온 우리 네 식구는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아른거리는 것이 있었다. 파고 또 파도 끊임없이 고이는 기름띠였다. 닦고 또 닦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위에 시꺼멓게 달라붙은 기름때였다. 그리고 거기 바위와 바위 틈 사이 고인 물에 고동 새끼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생명 몽산포 바닷가 작은 생명체가 존재감을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다.
▲ 생명 몽산포 바닷가 작은 생명체가 존재감을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태안 기름때 제거#태안기름유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