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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책 겉그림
〈왕의 투쟁〉책 겉그림 ⓒ 알라딘

조선시대 왕은 모든 권력의 원천이었다. 왕의 말 한 마디에 신하들의 목숨이 죽고 살았다. 하지만 권력투쟁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의 자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태어나 강보에 쌓이는 순간부터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죽음의 사선을 수도 없이 넘어야 한다. 왕이 된 후에도 신하들의 권력다툼과 정치 논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함규진의 〈왕의 투쟁〉은 조선시대 네 명의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의 투쟁사를 보여준다. 이른바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를 중심으로 그들 네 명의 왕이 신하들의 틈바구니를 어떻게 꿰뚫고 나가는지, 그들을 어떻게 중용하며 이끌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왕권과 신권의 투쟁사라 할 수 있다.

 

그 투쟁에는 매일처럼 하는 말싸움과 신경전이 있고, 밀고 당기는 사화(士禍)라든지, 옥사(獄事), 반정(反正) 등이 있었다. 또한 대신과 신진, 공신과 산림, 종친과 외척들의 끊임없는 다툼도 한몫했다. 그래서 왕이 어느 한쪽 편에 서려고 하면 반대쪽의 상소가 왕을 곤혹스럽게 했다. 물론 가장 튼튼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권력과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데에 달려 있었다.

 

요즘 텔레비전에 방영되고 있는 세종은 그야말로 문인 중의 문인이었다. 그 까닭에 그는 칼로 세운 조선에 피를 뿌리지 않고 성리학적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거대 프로젝트를 세웠다. 그를 위해 필수 요청사항이 있었다면 사대부 문인들을 포용하는 정책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동의와 공감을 얻는 공론정치야말로 그에게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다.

 

그 까닭에 일반 업무는 재상들에게 대폭 위임했고, 자신은 ‘혁신 프로젝트’에만 투자했다. 더욱이 그 프로젝트의 실무자로 관료사회의 중심부보다 밑바닥 관료들을 더 많이 기용했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로 하여금 혼천의나 자격루 같은 발명품을 만들게 한 것이나, 눈에 띄지 않았던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의 체계를 완성토록 한 예가 그것이다. 그런 일들은 관료 조직사회의 밑뿌리에서부터 더 신뢰를 끌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이 그렇듯 문화대국 프로젝트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기반은 관료들과 행한 경연에 있었다. 경연이란 왕과 신하 사이에 벌인 학술과 정치적 논쟁의 장을 뜻한다. 세종은 그를 위해 집현전까지 따로 세울 정도였다. 세종이 그곳에 무게를 둔 것은 단순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토대라 여겼던 까닭이다.

 

세종과 함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산 정조는 어떠한가? 정조는 세종보다 더 뛰어난 천재적인 학식과 재능을 가졌다. 젊은 나이에 이미 경학과 문장뿐만 아니라 의학이나 산학 등 실용학문에 밝았고, 무예도 뛰어났다. 그래서 정조의 경연은 신하들과 학술적인 논쟁을 벌였던 세종과는 달리 신하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꾸짖는 장이 되었다.

 

그 까닭에 정조 치세에는 언론과 학술의 활동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조보다 뛰어난 학자도 드문 탓에 있었지만, 정조와의 논쟁은 곧 관직을 내놓아야 하는 수순을 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조가 세운 규장각만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학술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보다는 과거를 통해 들어 온 초계문신들을 ‘왕의 남자’로 착실하게 육성한 곳이었다. 정조는 그만큼 권력유지의 비결을 그곳에서 찾았던 것이다.

 

“정조는 세종과 쌍벽을 이루는 학자 군주였다. 그러나 새로 개척하는 입장과 지키고 정리하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인지, 정조에게는 세종만한 여유가 없었다. 세종이 야심찬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통상적인 업무를 적절하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조는 모든 것을 자신이 장악하지 못하면 불안을 견딜 수 없었다.”(256쪽)

 

조선시대의 왕들은 분명 모든 권력과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그만큼 권력투쟁의 최고 정점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세종처럼 찬란한 문화대국을 이루고서도 모든 신료들로부터 오래토록 신뢰를 받은 왕도 있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권력과 권한을 얼마나 지혜롭게 나누고 위임해 주는지에 달려 있었다.

 

이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각료들에게 적정한 권력과 권한을 나누어주는 위임형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규장각과 같이 허울뿐인 그림자가 아닌 집현전과 같은 실체적 권력과 권한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각료들과 정치적 동반자들을  ‘대통령의 남자’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비록 그 앞에서는 순진한 양처럼 그들이 행세한다 하더라도 뒤에서는 이리처럼 돌변하여 암묵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까닭에서다. 그것이 왕권과 신권 사이에 벌인 역사적인 투쟁사요, 역사적인 교훈이다.


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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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권력투쟁#대통령의 권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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